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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광기 직전까지 쓴 마지막 책
니체, 광기 직전까지 쓴 마지막 책
  • 박찬국
  • 승인 2022.11.11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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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이 사람을 보라』 니체 지음 | 박찬국 옮김 | 아카넷 | 312쪽

오역과 번역투 문장들로 점철된 니체의 책들
재번역으로 오류 고치고 해제와 역주 덧붙여

서양철학자 중에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갖는 사상가는 단연코 니체다. 이는 니체의 대표작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번역본이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30개가 넘으며, 다른 나라들에서도 수많은 번역본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높기 때문에 수많은 출판사가 이 책을 번역 출간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뿐 아니라 니체의 다른 책들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청하출판사와 책세상 출판사에서 간행한 니체 전집의 형태로 이미 번역본들이 나와 있으며 또한 이것들 이외에도 여러 번역본이 나와 있다. 예를 들어 『비극의 탄생』만 해도 본인이 번역하기 전에 8개의 번역본이 있었고, 『선악의 저편』에 대해서는 6개의 번역본이, 『도덕의 계보』에 대해서는 7개의 번역본이, 『이 사람을 보라』에 대해서도 이미 9개의 번역본이 존재했다. 

니체에 대한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으로 인해 이렇게 많은 번역본이 존재함에도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나온 번역본들은 상당히 문제가 많다. 번역이 거듭될수록 그 전 번역들의 문제점을 극복하면서 더 나은 번역들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동안 출간된 번역본들 대부분에서 오역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며, 많은 번역본이 부자연스러운 번역투의 문장들로 이루어져 가독성이 크게 떨어진다. 또한 번역이 비교적 정확한 몇몇 번역본들의 경우에는 상세한 해제와 역주가 없어서 니체 철학과 서양철학사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대부분의 독자는 원문과 번역본을 대조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독자들은 자신들이 번역본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번역자의 능력 부족보다는 독자 자신의 소양 부족에서 찾게 된다. 하여 내가 보기에는 조악하기 그지없는 번역인데도 인터넷 서점들의 독자평을 보면 좋은 번역으로 평가받곤 한다. 니체는 헤겔이나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들에 비하면 자신의 사상을 명료하게 개진한 철학자다. 흔히 니체 번역서들을 읽고서 사람들이 니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고 불평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니체의 책임이라기보다는 번역서의 책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동안 출간된 니체 번역본들이 이러한 문제점들을 갖고 있었기에 나는 20여 년 전부터 니체가 생전에 출간한 저작들을 재번역하고 있다. 그동안 니체의 『비극의 탄생』(2004), 『안티크리스트』(2013), 『우상의 황혼』(2015), 『선악의 저편』(2018), 『도덕의 계보』(2021)를 번역하여 아카넷 출판사에서 출간했으며, 금년 10월 7일에는 『이 사람을 보라』를 번역 출간했다. 

『이 사람을 보라』는 니체가 자신의 가족과 삶 그리고 자신의 사상과 작품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니체는 이 책을 1888년 마흔네 번째 생일을 맞아 쓰기 시작해서 그 해 11월 4일 초고의 형태로 완성했지만, 광기에 빠지기 직전인 1889년 1월 초까지 계속해서 수정 보완했다. 니체의 마지막 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니체가 최후에 가졌던 사상을 알 수 있는 책이다.

 

니체(1844~1900)가 바젤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던 당시 1869년 모습이다. 사진=위키백과

이 책은 일종의 자서전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흔히 니체의 책 중에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할 니체에 대한 입문서로 추천되어 왔다. 그러나 『이 사람을 보라』를 조금이라도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곧 깨닫겠지만, 이 책 역시 니체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니체의 사상을 어느 정도라도 알고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니체가 자신이 출간한 책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라는 부분은 그 책들을 이미 읽은 독자가 아니라면 이해하기가 극히 어렵다. 

따라서 본인은 니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제에서 ‘니체의 삶과 사상’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에 대해서는 상세한 역주를 붙였다. 또한 정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번역함으로써 원서와 대조하지 않고서도 니체가 말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했다. 해제를 읽은 후 역주를 참고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 니체 철학뿐 아니라 서양철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큰 무리 없이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조만간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상세한 해제와 역주를 붙여서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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