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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조심해라
차 조심해라
  • 김소영
  • 승인 2022.11.07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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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이태원 압사 사고를 접하고 어릴 때 등교할 때마다 부모님이 당부하던 말이 생각났다. ‘차 조심해라.’ 초등학교 때 유급될 뻔할 정도로 공부는 안 하고 골목대장 노릇하며 뛰어다녔는데 부모님은 공부하라는 말보다 차 조심하라는 말을 더 많이 했다. 상급학교 진학 후 공부를 더 잘하게 되었어도 공부 얘기보다 그저 차 조심하라는 말만 했다. 

부모가 되니 나도 똑같이 차 조심하라는 말을 더 많이 한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면 좋겠지만 못하더라도 살 길이 있다. 근데 차 조심 안 했다가는 정말 큰일 난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잘못해 사고가 나도 걱정이지만 아무 잘못도 없이 그냥 사고를 당한다면 오죽하겠는가.

이태원 참사가 특히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 20대 젊은이들이 어처구니없게 스러졌기 때문이다. 이 중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세월호 참사를 겪은 97년생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큰애가 97년생이어서 당시 큰애도 큰 충격이었고 나 역시 같은 학년 부모로서 그 아픔을 상상하기가 너무 괴로웠다. 

사고의 맥락이나 원인, 과정은 다르겠지만 최근에 이렇게 집단적으로 20대가 사고를 당하는 것이 분명 정상이 아니다. 3년 만의 노마스크 축제인데다가 중간고사 직후라 젊은이들이 많이 몰릴 수밖에 없었어도, 멀쩡한 길을 건너다 차에 치인 것처럼 아무 잘못 없이 이렇게 떼죽음을 당하다니 허망할 뿐이다.

스트레스가 인간만이 아니라 위계질서가 있는 무리 생활을 하는 영장류의 공통된 현상이라는 사실을 규명한 스탠포드대 로버트 새폴스키(Sapolsky) 교수는 최근 진화학과 신경생물학, 심리학 등의 연구를 집대성한 책 『Behave』에서 20대는 성장하면서 가장 죽기 쉬운(?) 10대를 갓 지나 어른으로 진입하는 단계로 보았다. 10대에 가장 죽기 쉬운 이유는 10대가 가장 모험적이기 때문인데, 무엇보다 인간의 뇌에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행동을 계획하며 의사결정을 하는 능력에 관여된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이 가장 느리게 발달하기 때문이다. 

물론 생물학적 원인 외에도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요컨대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을 때 스스로에게 가장 위험한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스스로를 가장 조심해야 하는 10대를 넘어 20대는 신체적, 정신적, 윤리적 감각과 역량의 균형을 키우면서 드디어 사회적 인간으로서 자립의 첫발을 모색할 수 있는 시기다. 

2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이제 애들에게 조심하라 일러줄 것은 바퀴달린 차만이 아니다. 길거리도 조심하고 사람들도 조심하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가눌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걸 조심하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젊은 세대는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이지만 부모 세대보다 어렵게 사는 첫 세대라 한다. 이들이 스스로를 가눌 수 없는 상황은 비단 4미터 폭 좁은 골목길만이 아니어서 마음이 더 무겁다.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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