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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정치를 우려한다
과잉 정치를 우려한다
  • 최재목
  • 승인 2022.11.07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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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최재목 논설위원 /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논설위원

“중국은 수천 년간 정체의 시대였으나 지금은 과잉시대이다.” 20세기가 막 시작된 1901년, 근대 중국의 저널리스트 양계초가 「과잉시대론」이란 논문에서 한 말이다.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당시 중국의 정치·학문·풍속 등 모든 것이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상황을 그는 이렇게 진단했다.

‘과잉시대’는 20세기 초반만이 아니라 격동의 근대, 나아가 현대에 이르는 중국의 전 역사를 짚어주는 말이라 해도 좋겠다. 욕망·자본·권력·정치·통제 등 모두 과잉이라 느껴지기 때문이다. 

‘과잉’이란 예정하거나 필요한 것을 초과하여 과도한, 과열된 상태를 말한다. 과잉은 임계점을 넘어서므로 이성적 판단과 심리적 안정선을 뭉개기 쉽다. 그래서 예측 불허의 불안감이 뒤따른다. 자의식 과잉, 과잉 친절, 과잉 섭취, 과잉 제스처가 그렇다. 대다수는 과잉보다는 적정선, 적당함을 원한다. 중용이나 중도의 위치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싶어 한다. 물론 이런 것을 체질적으로 거부하고 편파나 과격을 원하는 수도 있으리라.

앞서 중국의 과잉시대를 언급했지만, 사실 우리의 근현대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식민과 해방, 독재와 민주화, 개발과 억압, 성장과 분배, 보수와 진보 등 대항하는 양극 사이에서 번민, 투쟁하였다. 

그 와중에 이념, 교육, 정치, 문화 등 과잉을 체화해 버렸다. ‘빨리빨리’, ‘화병’, ‘막가파’, ‘아사리판’, ‘싹쓸이’, ‘판 뒤집기’, ‘대박’, ‘폭풍 성장’, ‘폭탄주’, ‘끝장토론’, ‘못 먹어도 고’, ‘밀어붙이기’, ‘영끌’, ‘떼창’ 같은 과잉 시대를 대변하는 말들이 허다하다.

물론 과잉 덕에 ‘K-팝/푸드/방역’ 등 국제무대에서 통하는 한국 문화 및 기술도 실현하였다. 3류나 2류에서 1류로, 선진국 대열로 들어설 실력을 쌓아온 것도 그 열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치만은 3류, 4류쯤 된다. 이에 종속된 교육은 당연히 K-교육의 큰 그림을 그려내지 못한 채 2류에 머물러 있다. 한 마디로 철학이 없다. 수준 낮은 과잉 정치 때문이다.

그럼 과잉 정치는 어디서 왔을까. 다수결, 포퓰리즘, 여론조사에 맡긴 채 진영의 승리를 위해 전진하는 저돌성에 연유한다. 저돌이란 멧돼지[猪]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맹목적으로 불쑥 뛰어나가는[突] 것을 말한다. 타협이나 후퇴 없이 무조건 이기고 보는 저돌성은 광적인 패거리에 매달린 팬덤 정치로 나타난다. 흑백 논리에 매몰된 정치에서는 ‘민주’의 ‘민’과 ‘주’가 무엇인지, 누구인지 모른다. 당과 정치인 자신들이 그 ‘민’과 ‘주’의 자리를 차지한다.

국민들은 자신들을 위한 방탄용 수단일 뿐이다. “민생, 민생!”하지만 당과 진영을 위한 선동이다. 국가도 민족도 없이 자신들의 존립을 위해 사생결단이다. 저급한 선동과 사기, 가짜뉴스, 유리한 판국을 조작하려는 가스라이팅은 기본이다. 헤이트스피치의 팻말을 들고, 뻔한 거짓 선동을 위해 떼 지어 몰려다니는 철면피 정치인들. 그 수사(修辭)는 고상하고 화려하다. 이런 과잉 정치의 평범한 언행에 묻힌 파시즘, 무사유, 악마성은 가히 두렵다.

최재목 논설위원
영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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