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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수업은 지식 전수 아닌 생산의 시간"
"미네르바 수업은 지식 전수 아닌 생산의 시간"
  • 정두희
  • 승인 2022.11.09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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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최고의 강의⑮ 정두희 한동대 ICT창업학부 교수
정두희 한동대 교수(ICT창업학부 )

운이 좋게도 3년 전 세계적인 혁신 대학으로 유명한 미네르바 스쿨의 객원교수(Minerva Trained Fully Active Learning Professor)로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이 학교의 능동적인 학습(Fully Active Learning) 모델을 전수받았다. 미네르바의 경험은 특별했다. 그동안 내가 해오던 교육방식과 많이 달랐다. 그러나 탁월한 교육효과를 직접 수업을 통해 경험하고 나서는 이 방식에 대한 팬이 됐다. 지금은 나의 본교 수업 전체에 미네르바의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학습과학(Learning Science)은 수십 년 전부터 발전을 해왔지만, 교육현장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많은 수업들이 이미 중세시기부터 개발된 오래된 교육방식을 따르고 있다. 미네르바 스쿨은 교육 커리큘럼의 모든 측면에서 학습과학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는 교육기관이다. 

미네르바는 수업에 대한 개념부터 다르게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수업은 교수가 준비된 지식을 강의를 통해 전달하고 학생은 듣고 흡수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미네르바에서 수업은 지식전달이 아닌 학생이 지식을 생산하는 시간이다. 수업의 주체는 교수가 아닌 학생이며, 지식을 주고받는 게 아닌 생산한다. 지식의 생산을 강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강의(teaching)가 배움(learning)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교수는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준비를 많이 하지만 교수의 노력이 학생들의 효과적 배움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강의는 종종 학생의 배움을 이끄는 방법이 아닌 교수에게 편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연구가 말해주듯, 강의는 학생 입장에서는 가장 효과가 적은 방식이라는 점이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미네르바는 ‘교수는 강사(Lecture)가 아닌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네르바의 교육은 100% 온라인을 통해 이뤄진다. 미네르바 자체 온라인 수업 플랫폼 ‘포럼’이 온라인 수업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포럼’을 통해 학생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수업에 참여할 수 있어 공유 오피스나 기숙사, 카페에서도 수업을 받을 수 있다. 미네르바의 온라인 수업이 교수가 서서 강의하고 카메라로 찍어서 올리는 수업정도를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아니다.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카메라로 찍어서 올리는 방식은 과학적인 연구결과를 통해서도 학생들의 배움에 효과적이지 않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미네르바에서는 교수의 주입식이 아니라 플랫폼 포럼을 통해 소통하고 협업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포럼은 학교 밖 교실이라고 이해해도 좋다. 19명 이하의 수업으로 모든 학생들에게 최대한 많은 발언의 기회가 가도록 한다. 수업 전에는 많은 양의 과제를 준비해야 한다. 교수는 어떤 학생이 어떤 옵션의 투표(수업 중 즉석 설문조사)를 했는지 다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왜 이 선택지를 택했는지?” 설명하도록 한다. 발표량이 적은 학생들은 화면에 빨간색 표시가 떠 교수가 따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모든 수업이 녹화돼 교수는 수업 끝나고 이를 보면서 구체적이고 질적인 피드백을 준다.

소그룹으로 나눠 토론을 가능케 하는 기능도 미네르바 포럼의 장점이다. 미네르바 시스템에서는 토론, 분반, 자료제시 등 모든 활동이 자동으로 이뤄지도록 정비돼 있다. 이외에도 포럼에는 50여 가지의 다양한 기능이 더 있다. 일반 대학에서는 교수와 학생 개개인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적다. 수업 종료 후 교수 사무실로 찾아갈 수는 있었으나 많은 학생들 가운데 약속을 잡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포럼을 기반으로 학생들과 교수는 높은 유대감을 쌓을 수 있고, 24시간 안에 무조건 답변해주고 있다. 

‘파괴적 혁신’ 가르쳐야 하는 수업에 능동학습 적용

미네르바의 방식을 한동대 수업에 도입해 운영했다. ‘기술창업론’은 2~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한동대 ICT창업학부 수업이다. AI와 같은 신기술을 응용해 창업 아이템으로 개발하는 방법론을 배운다.

학습 목적은 미래에 시장에 변화를 줄 ‘파괴적 혁신기술’을 이해하고, 기술 기반 스타트업 비즈니스를 개발하는 방법론을 익히며, 기존 비즈니스 기술을 이용해 혁신하는 방법도 배운다. 이러한 학습의 결과물로 학생들은 파괴적인 기술의 잠재력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해석하는 문헌을 정리하고, 신기술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 아이템 개발하도록 한다.

교과목의 특성상 기술의 기본적인 원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시장에서 상업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발하기 위해 창의적 사고를 필요로 한다. 신기술 기반의 스타트업 아이템을 개발하는 것이 팀 프로젝트이며 이를 위해 그룹 토론 활동을 많이 한다.

미네르바가 100% 온라인으로 하는 것과 유사하게 이 수업은 온라인 중심이되 교수와 학생 간 관계 형성을 고려해 일부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했다. 오프라인에서의 온라인 채널은 학생들이 가장 많이 쓰는 카카오톡을 이용했다. 의견 개진과 즉석 설문·투표 등의 활동도 카카오톡으로 했다. 또한, Z세대들이 유튜브 등 동영상을 선호하는 것을 고려해 상당수의 케이스스터디는 유튜브 영상을 활용한다. 

이 수업의 운영에는 미네르바의 ‘완전 능동적 학습’ 모델을 적용했다. ‘완전 능동적 학습’은 적어도 수업시간의 75%를 학습 내용에 대해 보다 깊이 파고들어 학습을 보강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방법이 잘 작동하려면, 학생들은 수업 전에 특정한 정보를 흡수해야 한다.

150분 수업은 사전 리딩자료로 수업 내용을 학습한 학생들이 정보를 생산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학생들이 수업 전 과제를 통해 얻은 정보로 문제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적용하거나, 토론, 다른 맥락에서 개념을 적용하는 역할극 등을 해야하며 교수는 이 같은 진행이 원활할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해야 한다.

미네르바에서 교수는 학생들이 정보를 생산적이고 새로운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을 배우도록 돕는다. ‘기술창업론’ 수업 때도 학생들의 능동적 학습을 유도하는 데 힘을 쏟았다.

수업의 모든 과정은 질문! 질문! 질문!

수업이 무리없이 진행될 수 있게 수업 자료와 질문 등은 준비돼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습득해야 할 수업 자료, 자료를 본 후 물어볼 질문, 질문에 답한 학생 외에 다른 학생에게 물어볼 보완 질문, 토론 시 서로에게 물어볼 질문과 내용, 함께 풀어볼 문제, 토론 이후 정리를 위해 묻는 질문, 이해를 못하는 학생이 동료를 통해 이해하도록 우수 학생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등을 사전에 정해놓는다. 미네르바 스쿨에서는 이를 LP(Learning Plan)라 부른다. 각 LP에는 “왜”와 “사용하라”라는 문구가 많다. ‘기술창업론’에서는 이러한 LP를 수업내용과 한국 학생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 맞춰 적용했다.

수업 시간에는 학습 효과를 촉진시키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즉석 설문조사, 찬반 투표, 토론, 상대 학생의 내용에 보완 혹은 반론, 역할극 등 다양한 활동으로 구성된다. 모든 활동은 학습 목표가 분명하고 수업은 목표로 하는 학습 결과와 보조를 맞춘다. 학습활동은 도입, 활동 그리고 활동 종료 순간으로 구성된다. 교수는 활동이 종료되는 순간까지 학생이 학습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초점 질문을 한다. 이 질문들은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깊이 있게 이해하고 참여와 토론을 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룹별 공동지식 생산하고, 타 그룹과 공유

‘기술창업론’ 수업에서 중요한 활동 중 하나는 ‘그룹활동’으로 학생들이 그룹원과 토론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문제에 대한 상황과 문제정의가 주어지면 학생들은 자신의 논리를 만들기 위해 그룹 토론을 시작한다. 그룹 활동은 줌의 소그룹 기능을 활용했다. 3~4명으로 이뤄진 그룹에서 학생들은 실용적인 문제해결을 중심으로 토론한다. 또한, 그룹 활동은 사전에 준비된 구글독스(Google Docs) 기반의 템플릿을 사용한다. 학생들은 각 그룹에서 토론을 하는 동시에 공통의 문서를 작성한다. 여러 학생이 하나의 문서에 공동으로 작성하기에 미네르바의 공동지식생산 기능이 구현되는 것이다.

조별토론이 생산성 없이 수다 시간으로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이유에 대해 정두희 교수는 '생각에 대한 정리가 없고 확장이 없다는 점'을 짚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학생들이 공동으로 문서를 작성(위 사진)하도록 하고 카카오톡의 투표와 같은 기능을 통해 학생들이 계속 토론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고 말했다. 사진=정두희

토론이 끝나면 다 같이 학생들이 모여 자신의 그룹에서 나눈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타 그룹 아이디어와 비교한다. 이때 교수는 각 그룹의 아이디어에 보완 혹은 비평을 할 수 있도록 다른 그룹의 학생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러한 방식이 반복되면, 다른 그룹 발표 시 한눈파는 일이 생기지 않고, 서로의 아이디어가 상호 보완되는 방향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무기명 질문, 학습 도움 안 돼…이름 불러야

미네르바 스쿨 방식의 적극적 학습은 학생들이 그 대상에 참여해야만 성공적이다. 여기서 교유가 해야 할 일은 학생들이 주의를 기울이고, 그들이 수업에 잘 참여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기술창업론’에서는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몇 가지 도구를 활용했다. 

첫째는 카카오톡의 설문 기능이다. 특정 주제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주관식·객관식 설문 혹은 찬반 설문 등을 실시한다. 이 같은 방식은 토론 전에는 학생들이 토론 내용에 대한 나름의 논리를 정립하는 데 도움을 줬고 토론 후에는 학생들이 토론에서 공유한 내용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 

또 다른 도구는 지정질문(Cold call)이다. “질문 있는 사람?” 혹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등의 방식은 집중하는 데 도움도 되지 않으며 학생들도 손을 들지 않는다. 미네르바에서도 이 같은 무기명 질문은 학습에 도움이 안 된다고 언급한다. 이름을 거명하며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수업 전반에 걸쳐 할 때 학생들은 모든 수업 내용에 집중하게 된다. 한 사람이 발표 및 토론을 독점하지 않도록 학생들의 발표 시간에 제한을 두는 것도 집중도를 유지하면서 균형 있는 참여를 유도하는 요인 중 하나다. 

학습은 수동적 강의가 아닌, 능동적 학습

2014년 스콧 프리먼 워싱턴대 교수(생물학)는 강의와 능동학습 세미나에 따라 학생의 변화를 비교하는 225개의 메타분석 연구를 했다. 과학·기술·공학·수학(STEM)수업으로 제한된 이 연구에 따르면 능동학습 결과 평균 성적을 50%나 올릴 만큼 시험성적이 향상되고, 전통적 강의 하에서의 실패율은 능동학습 하에서 관찰된 비율보다 55% 높았다. 반복된 연구를 통해 비STEM 과정에도 동일한 결과가 보고됐다. 

스콧 프리먼 워싱턴대 교수(생물학)
스콧 프리먼 워싱턴대 교수(생물학과)

대부분 대학에서 수업의 방법으로 강의가 주된 이유는, 교수들이 학습과학의 이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미네르바는 보고 있다. 하지만 학습은 의문의 여지없이 수동적으로 강의를 듣는 것보다, 능동적으로 경험하는 것임을 미네르바는 강조한다.

미네르바의 방식을 채택한 ‘기술창업론’ 수업에서도 학생 학습 성취 및 강의 만족도 면에서 눈에 띄는 향상이 있었다. 능동학습이 적용되지 않은 수업(2018. 2학기)에 비해 적용된 수업(2019. 1학기)의 학생 시험 성적이 23% 향상되었으며, 학생들의 강의 만족도를 나타내는 강의평가 또한 15% 향상됐다. 미네르바 스쿨의 능동적인 학습 방법이 한동대의 일반 수업에도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이 결과는 보여준다. 

미네르바 스쿨의 방식이 모든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역시 나름대로의 한계점을 갖는다. 대부분 학생들이 수업에 몰입하게 만들고 낙오하는 학생을 만들지 않는 효과적 방식이지만, 특출난 소수의 학생을 더욱 심도있게 지도하는 방식은 되지 못한다. 심도있는 지도에는 교수의 적극적 개입, 심도 있는 지식의 전달 등이 필요하다. 미네르바 스쿨의 방식을 만능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잘 적용될 수 있는 영역에 선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한국 교육현장에도 꽤 잘 적용되는 방향이지만 더 잘 적용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맞춤화 과정은 필요하다고 본다. 여기에 한국 교수들의 내공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정두희 한동대 교수(ICT창업학부) 
한동대 ICT창업학부 조교수이자 AI 솔루션 기업인 임팩티브AI의 대표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 편집장을 맡았으며, 『넥스트 빌리언 달러』, 『한권으로 끝내는 AI 비즈니스 모델』, 『3년후 AI 초격차 시대가 온다』, 『TQ 기술지능』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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