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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획] ‘해리포터’ 시리즈 열풍
[테마기획] ‘해리포터’ 시리즈 열풍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0.11.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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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보편적 공감 획득한 '진부함의 미덕'
이번 달에 원작 네 권의 번역, 출판이 완료된 ‘해리포터’가 세계 출판시장의 역사를 바꿔놓고 있다. 평범한 고아 소년이 어느날 자기가 마법사임을 알게 되고 마법학교에 입학해 환상적인 모험을 겪는다는 줄거리는 일견 황당하고 유치하다. 그러나 제4권 ‘해리포터와 불의 잔’의 미국초판 3백80만권이 순식간에 팔린 것을 비롯, ‘해리포터’ 시리즈는 지금까지 전세계 2백여개국에서 49개 언어로 번역되어 5천만부가 팔렸다. 작가가 시리즈를 완결지을 2003년까지 어떤 엄청난 기록을 세울지 지금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우리나라 역시 ‘해리포터’의 태풍권 안에 있는 것은 예외가 아니다. 출판사는 올해안에 3백만부, 2003년까지는 1천만부를 내다본다.

출판계 먹여 살리는 ‘해리포터’

그러니, 우리나라 출판시장이 ‘해리포터 세상’이라는 진단도 과장만은 아니다. 단군이래 최고의 불황이라는 문학시장.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신경숙의 ‘딸기밭’, 이문열의 ‘아가’ 등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소설들도 10만부를 넘기기 바쁘다. 이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세계적인 추세. 어느 나라든 오늘날의 디지털 키드는 고전을 읽기보다 컴퓨터게임을 즐긴다. 유럽의 종이책 시장은 지난해보다 4∼5% 늘었지만, “해리포터 시리즈의 인기에 편승한 반짝 경기상승”이라는 해석이다. 이렇듯 ‘해리포터’는 가난한 종이책 시장을 살려주며 종이책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의미에서 출판계로선 기념비적 상품이며, 따라서 출판계가 ‘해리포터’에 지극한 상찬을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학의 죽음’이 운운되는 시대에, 비평계가 대중을 흡인하는 동화적 내러티브에 지원사격을 하는 것도 납득할 만하다.
‘해리포터’에 대한 긍정적 비평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해리포터’는 아동문학, 추리문학, 환상문학 등 흥행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지만, 그런 장르적 특징 자체를 혁신적 문학성과 동일시하는 비평(“마법을 폄하하는 이성중심주의적 서구전통으로 ‘해리포터’의 문학성을 인정하지 못한다”)이나, 19세기적 인상비평에 머무는 찬양일변도의 평가(“끊임없는 반전하는 플롯의 힘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등은 자칫 문학비평을 출판사 홍보자료로 떨어뜨린다. 이 역시 우리나라 출판계의 문제만은 아니다.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히는 문학비평가 해럴드 블룸이 ‘월스트리트저널’에서 ‘해리포터’가 “진부함에 강하고 상상력에 약하다(long on cliches, short on imaginative vision)”고 비판한 이유도, 이 소설에 대한 평단의 찬사가 지나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리뷰는 ‘해리포터’의 문학성에 대한 혼란된 평가를 그대로 보여준다. “아무리 이 소설이 진짜 재미있는 소설이라 하더라도 제4권 ‘해리포터와 불의잔’을 환영하는 독자의 광기는 소설에 대한 이성적인 반응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와 “해리포터 시리즈의 인기는 너무나 단순한 한 가지 사실, 즉 좋은 책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라는 모순된 평가가 한 기사 안에 공존한다. 서평이 ‘해리포터’를 다루는 일차적인 이유는 경이적인 판매부수다. 그리고 작품의 인기와 작품의 가치가 최소한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해리포터’를 찬양하기 위해 독자의 반응을 거론하는 수많은 서평들은 그런 자명한 사실을 잊은 듯 하지만.
이 소설의 의미는 시비되는 문학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바로 그 사실에 있다. ‘진부함’이 시대가 공유하는 편견을 따르는 것이라 할 때, “진부함에 강하다”는 해럴드 불룸의 평가는 단순한 비판을 넘어선 문화분석 일반의 의의를 지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해리포터’가 ‘뜨는’ 현상은 우연일 수 있지만, 우연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은 필요하다. 뜰 만한 작품이 모두 뜨는 것은 아니지만, 뜰 만하지 않은 작품이 뜨는 법은 없으니까. 베스트셀러의 진부함에 주목하며 세계가 공유하는 욕망의 궤적을 추적할 징후를 확보한다.
많은 평자는 ‘해리포터’의 강점으로 아이의 소망을 포착하는 디테일을 꼽는다. 실제로 작품에서 아이들이 누리는 마법적 상품들, 경험들은 현재 가능한 테크놀러지를 살짝 넘어서며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러나 그런 식의 독법은 ‘해리포터’가 컴퓨터게임이나 영상판타지와 경쟁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작품의 서사적 특징을 중심으로 유행의 원인을 분석한 서평도 시도해볼 만하다. 이를테면, ‘해리포터’ 서사의 세계적 공감대 저변에는 상상적 세계지배세력에 대한 풍자라는 공통분모가 있으며, 풍자대상은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으로 집약된다. 해리를 부당하게 차별대우하는 이모 가족은 WASP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머글(어리석고 잔인하고 편협하고 자아도취적인 사람, 즉 마법의 세계를 모르는 보통 사람)이다.

안티와습, 세계인의 정서적 공감대

“더들리는 버논 삼촌을 빼닮았다. 커다란 얼굴은 핑크빛이고, 목은 짧고, 눈물고인 눈동자는 푸른빛이고, 굵은 금발이 두툼한 머리통을 덮고 있다. 페튜니아 이모는 더들리가 아기천사 같다고 하지만, 해리가 보기엔 가발 쓴 돼지 같다”. 독자가 이들의 일상화된 폭력에 시달리는 해리포터에 열광하는 것은 어린 해리의 영리한 적응력과 불가피한 고통과 침묵의 저항에 자기의 처세를 대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상상적 저항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은 특정 세대일 수도 있고 특정 계급일 수도 있지만, ‘해리포터’에서는 많은 경우 특정 인종으로 드러난다. 이는 백인중심의 인종주의적 편견에 대한 반발이라는 의미에서 독자의 정치적 무의식을 만족시킨다. 안티-와습은 바야흐로 세계적인 정서적 공감대가 되어있다. “머글 부모를 가진 마법사에게 ‘잡종’이라는 말이 굉장히 모욕적인 말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김정아 기자 anonio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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