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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선비문화는 왜 비극으로 끝났나
조선조 선비문화는 왜 비극으로 끝났나
  • 김경동
  • 승인 2022.11.02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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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선비문화의 빛과 그림자: 지식인 파워 엘리트의 사회학』 김경동 지음 | 700쪽 | 박영사

성리학·양명학 관점과 성인 군자 향한 수기치인
권력의 유혹에 빠져 붕당·갈등으로 비극 맞이해

현재 인류사회 전반에 닥친 급격한 대변환의 파도 속에서 맞이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딛고,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선비문화가 제시할 수 있다는 이 저서는 선비가 수기치인의 목표를 향해 유학이 그리는 안민의 이상세계를 꿈꾸며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한다. 인류 문명사의 끊임없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떠올리게 하기에 이 책은 ‘선비문화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명을 달았다.     

 

그러면 왜 이 시대에 선비문화인가? 우선, 근대화 과정에서 현대 과학기술 문명이 자아낸 전 지구적 생태계 교란과 겹친 정치경제적 위기의식의 저변에 깔린 도덕성의 마비를 서구의 지성이 자백하는 현실에서 세계의 학계가 유교를 주목하게 된 저간의 추세를 반영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그 해법을 우리가 제시하자는 생각이 따랐다. 그러자면 먼저 우리가 제공할 문화적 자원부터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도덕성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는 선비문화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선비론을 다루는 문헌이 대체로 선비문화를 칭송하고 이를 전승해야 한다는 논지를 주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면, 사회과학적 이해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객관적으로 해명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지식인 파워 엘리트의 사회학’이 라는 부제를 달았다. 거기에는 지식인이 권력을 직접 행사하는 아주 독특한 정치 문화를 가진 조선이라는 특수한 대상이 자리한다. 그런 관점에서 선비문화를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기 위해 그들의 철학적 교리인 성리학의 이론과 양명학의 관점 등을 먼저 파악하고, 수기의 목표인 이상적인 인간상의 이념형이 성인 군자임을 밝힌 다음, 수기의 구체적인 방법도 살펴본다, 나아가, 치인을 위한 경세의 처방을 정치, 경제, 사회의 삶의 현장에서 저들이 추구한 정책적 구상도 검토한다. 이 일에서는 역시 중·후기 조선의 새로운 이론적 지향인 실학의 노력이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이들이 제안한 주요 정책안들이 현실 역사 속에서 제대로 실현을 보지 못하게 된 한계를 뼈아프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강희언이 18세기에 그린 「사인삼경」. 선비들의 모습이 좀 더 근대적인 자유로움을 보인다. 그림=위키백과

한 발 더 나아가면 지식인으로서 선비가 국정운영에 참여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맥락을 발견하는데, 여기에서 선비의 딜레마가 극명하게 다가온다. 권력을 둘러싼 당쟁이다. 이상적으로는 자신의 철학에 충실하면서 국정에 임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 권력의 유혹과 맞닿는 순간 붕당이 생기고 갈등에 돌입하며 종래에는 권력독점의 극단에 이르러 망국이라는 비극으로 종착역을 만난다. 지식인 파워 엘리트인 선비에게 가장 까다로운 현실이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당쟁의 의미를 단순한 정치적 갈등으로만 보지 않고 그 이면에서 작동하여 조선조가 500년을 지탱하게 한 선비정치의 특수한 비결에 주목한다. 여기서 서구 사회학의 파워 엘리트 및 가산제적 정치와 관료제라는 이론 등이 밝혀내지 못한 한계를 지목케 하는 미묘한 상호견제 메커니즘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군주와 신하 사이의 권력대결에서 대간, 경연, 사관 등 제도에 의한 견제와, 대사헌, 홍문관, 어사 등의 엘리트 상호간의 견제와 감시의 제도가 이러한 특별한 기능을 발휘했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비장한 현실은 그러한 제도조차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권력전횡으로 결말을 지어야 했던 조선조 선비문화의 비극을 가슴 아프게 마주한다. 

마지막 두 장은 인류가 추구해야 할 미래사회의 모형으로 저자의 발전론의 핵심개념인 ‘문화적 교양으로 정화한 성숙한 선진 사회’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거기에 이르는 길목에 선비문화가 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되어 줄 수 있는지를 천착하면서, 오늘의 인류가 당면한 온갖 말세적인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길잡이로서 자연과 하나 되는 세상, 선비다운 인간의 수련, 선비문화와 공공성 복원, 선비문화와 사회혁신 과제를 제시함과 동시에 이를 성취하기 위한 선비와 정치와 권력의 조정, 그리고 선비문화의 미래지향적 실천과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하며 대미를 긋는다.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발전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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