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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생활의 ‘더킷 리스트’
교수 생활의 ‘더킷 리스트’
  • 김병희
  • 승인 2022.11.01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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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나 반드시 하고 싶은 것을 적은 버킷리스트(bucket list)는 모두에게 익숙하다. 이 말에 대비되는 ‘더킷리스트(duck-it list)’도 있다. 피해야 하거나 절대로 하지 말아야할 것을 적은 목록이다. 버킷리스트가 소망 목록이라면 더킷리스트는 회피 목록이다. 교수 생활의 더킷리스트에는 뭐가 있을까?

나는 정치적 또는 도덕적 올바름 같은 지키지도 못할 것을 더킷리스트로 삼고 싶지는 않다. 기회 있을 때마다 성인군자처럼 말씀하신 분들이 실제로는 언행일치를 못하는 사례를 우리는 자주 목도했다. 예컨대, 절대 어떤 직책은 맡지 않겠다거나 절대로 부정한 일은 저지르지 않겠다거나 같은 주장은 지키지도 못할 허언의 더킷리스트가 되기 쉽다. 대학 교수로서 꼭 피하고 싶은 더킷리스트는 다음 네 가지다.

첫째, 관습적으로 해오던 불필요한 일들을 제거해야 한다. 교수들이 자꾸 새 일을 만들기보다 습관적으로 해오던 불필요한 일을 안 해야, 꼭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완성하던 날, 어떤 방법을 썼기에 모두가 포기한 대리석으로 이토록 훌륭한 조각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느냐고 사람들이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돌 속에 갇혀 있는 다비드만 보고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했을 뿐입니다.” 불필요한 일을 걸러내는 사람이 꼭 필요한 일을 제대로 해낼 것이다.

둘째, 약자에게 절대로 희망고문을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교수들은 강의하러 나오는 시간강사나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넌지시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느낌을 제시하며 자신에게 잘 보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시간강사에게 좋은 일이란 언젠가 전임교수의 자리를 만들어주겠다는 뜻이 되겠다. 교수가 석·박사과정의 학생들에게는 넌지시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는 학위 취득이다. 그런데 무언의 희망은 공수표가 되는 경우도 많으니, 지키지도 못할 희망을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된다.  

셋째, 여건이 안 되면 논문심사를 맡지 말아야 한다. 논문을 읽어보지도 않고 심사장에 들어오는 교수 때문에 난감할 때가 있다. “연구방법이 엉성하니 보완해라.” “실무적 시사점이 부족해.” 이처럼 추상적으로 지적하면 학생은 읽지 않고 왔다는 걸 금방 눈치 챈다. “연구방법을 어떻게 보완할까요?” “실무적 시사점을 네 쪽 썼는데 어떤 부분을 더 쓸까요?” 학생이 이렇게 반문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곁에 있는 사람이 더 조마조마해진다. 다행히 약자의 처지인 학생 답변은 오직 한 마디뿐이다. “네, 알겠습니다.” 최소한 두 번 정도 읽을 시간이 없다면 논문 심사를 사양해야 한다.

넷째, 학과 일은 안 하고 바깥일만 신경 쓰려 하면 곤란하다. 연구, 교육, 사회봉사는 모두 교수 생활에 중요하다. 교수들의 외부 활동이 사회봉사다. 각자가 전문 분야에서 자문 활동을 할 수 있지만, 학과 일을 등한시하고 외부 활동에만 치중한다면 문제다. 학과 교수와 친하게 지내는 것도 중요하다. 학과 교수와는 소원하게 지내면서도 학회 활동에서 만난 교수들의 친교에만 치중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란 말처럼 수신제과(修身齊科) 다음에 학회가 있다.

무엇을 하느냐에 앞서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자세는 중요하다. 몽골 제국의 초대 재상이자 칭기즈칸의 책사였던 야율초재(耶律楚材, 1190~1244)의 조언은 지금도 가치 있게 다가온다. 유비에게 제갈량이란 책사가 있었다면 칭기즈칸에게는 야율초재가 있어 대업을 이뤘는데, 야율초재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한 가지 이익을 얻는 것이 한 가지 손해를 제거함만 못하고, 한 가지 일을 시도하는 것이 한 가지 일을 줄이는 것만 못하다(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즉, 무엇을 하지 않을지 아는 것이 핵심이란 뜻이다. 앞서의 네 가지 더킷리스트만 지켜도 속이 알찬 교수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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