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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동지중해 문명과 미학의 정수, 튀르키예 카펫
[글로컬 오디세이] 동지중해 문명과 미학의 정수, 튀르키예 카펫
  • 양민지
  • 승인 2022.11.04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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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양민지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교수
15세기 오스만제국 궁정 스타일을 대표하는 별 문양 우샥지역 카펫이다. 사진=메트로 폴리탄 박물관

인류의 역사만큼 역사가 오래된 직조 기술은 자연환경과 기후, 의복에 대한 인식과 취향, 전통에 따라 수 세기에 걸쳐 다양한 발전과 변화를 보여 왔다. 인류 최초의 집단 거주지인 아나톨리아 반도(현 튀르키예)에 위치한 차탈회육(Catalhoyuk)에서는 최소 9천년 된 신석기 시대에 속하는 가장 오래된 직물 조각이 발견돼 직조술이 아나톨리아 반도 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초기 직조물의 흔적은 오랜 기간 마모로 인해 찾기 어려우나 벽화나 무덤 등에서 출토된 유물, 신화나 설화 등의 구전문학, 여행기나 역사서 등의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튀르키예 카펫의 역사는 튀르크 카펫의 전통을 계승했으며 이는 튀르크의 조상인 흉노의 직조술에 이른다. 흉노는 단일 민족이 아닌 튀르크를 포함한 여러 계통의 유목 부족들이 정치 사회적으로 결합한 형태의 연합체였다. 

각 하위 부족 간에 문화적 예술적 차이가 점차 사라지고 흉노 공동의 사회 시스템 안에서 중심 문화가 공유됨에 따라 점차 통일성을 보이게 된다. 또한, 흉노는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며 문화적 교류를 하는데, 이를 통해 실크를 이용한 견직물과 직조기술을 접한다. 이후 실크로드를 장악한 흉노는 페르시아-중국의 교역에도 영향를 끼쳤다. 

이는 흉노의 쿠르간(Kurgan, 튀르크어로 무덤, 봉분을 지칭)의 부장품에서 중국 직조물이 발견된 것과도 연관이 있다. 대부분 튀르크 쿠르간에는 펠트가 발견되는데 이는 중앙아시아 스텝지역에서 생활하던 튀르크인들의 양모를 이용한 직조술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견된 펠트의 대부분은 보통 양모 색실을 이용한 아플리케 장식이 나타난다. 

중앙아시아 스텝지역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흉노의 후예 튀르크인들은 펠트(kece 케체) 및 납작한 짠 매트의 일종인 킬림(kilim), 지짐(cicim), 질리 (zili), 수막(sumak) 등과 파일 직조형 카펫인 할르(halı)를 직조했다. 아마도 이들 중 가장 원시적인 펠트가 먼저 생겨났고 보다 수준 높은 기술이 필요한 평면직조형의 킬림이 직조됐으며, 이후에 파일 직조형 할르를 만들어 냈을 것으로 추측한다.

 11세기 중앙아시아 스텝지역에서 펠트는 보통 천막의 외·내부의 벽면 및 천장 덮개와 바닥 깔개, 의류 재료로도 사용했다. 또한, 할르, 킬림, 펠트는 벽면 장식용으로도 사용됐는데,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 아나톨리아 시골에도 이어지고 있다. 튀르크 하칸(지배자, 통치자) 즉위식에서는 펠트로 만든 카펫을 바닥에 깔고 왕위 승계를 받았기 때문에 카펫은 국가(권력 혹은 지배자)의 상징으로도 인식됐다. 

현대의 아나톨리아 튀르크 카펫, 할르와 평면 직조형 깔개(킬림)는 중앙아시아 튀르크 직조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오늘날 아나톨리아의 시골에서는 할르를 칼른(kalın)으로 부르기도 한다. 칼른은 결혼 전 신부와 신랑집에서 장만하는 모든 것을 이르는 이름이다. 이는 튀르키예 민속에서 체이즈(ceyiz, 혼수)로도 부르는데 혼수로 마련하는 것 중에는 반드시 카펫도 빠지지 않는 물품 가운데 하나이다.

 아나톨리아 셀주크 시기와 오스만제국 시기의 할르, 현대의 아나톨리아 할르의 문양과 디자인은 중앙아시아 튀르크 할르의 전통에 의거해 발전해왔다. 후크(갈고리)형 문양 혹은 기하학 문양의 아나톨리아 할르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카펫인 파지릭 카펫에서 시작돼 셀주크 제국, 베이릭 시기(공국 시기), 오스만제국 시기를 거쳐 현대에까지 이르고 있다. 

튀르키예 카펫은 샤머니즘과 천신신앙을 바탕으로 고대부터 직조되기 시작해 중세에는 이슬람과 수피사상을 바탕으로 하던 셀주크 제국과 오스만제국을 거치며 발달 됐다. 특히, 중앙아시아 스텝 문화와 페르시아 문명, 비잔틴 문명 등 다문화 환경 속에서 꽃을 피운 튀르크 카펫은 튀르크 문화가 접한 다양한 문명과 문명의 고리로 매듭지어 왔다. 

특히, 튀르키예 카펫에는 구전 문화가 발달했던 튀르크 유목문화에서 글과 글자를 대신해 다양한 문양과 디자인으로 표현됐다. 튀르크 카펫은 개인의 감정과 욕망을 담아내는 소통의 창이자 지배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신의 권능과 자비를 찬양하는 마음을 담는 종교적 상징물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와 정반대로 튀르크 카펫은 유럽 궁정과 귀족들의 취향을 고려해 화려하고 과시적인 모습으로 세속적인 형태로 발달했다. 이처럼 우리는 튀르크 카펫을 통해 당시 동지중해 문명 간 교류의 흔적을 살필 수 있다. 

 

양민지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교수
튀르키예 국립 에르지예스대에서 투르크 민속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로는 투르크 민속, 터키 문화콘텐츠, 다문화 사회가 있다. 대표 저서로 『투르크 지역연구』(공저, 2018), 『터키를 가다』(공저, 2019), 『지중해문명교류사전』(공저, 2020), 『7인의 전문가가 본 시칠리아의 문명교류』(공저,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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