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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 위협하는 초인공지능, 대안은 무엇인가
인간성 위협하는 초인공지능, 대안은 무엇인가
  • 최승우
  • 승인 2022.11.14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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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㉕ 이종관 성균관대 교수(철학)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 15일 이종관 성균관대 교수(철학)가 「디지털 문명과 인간의 자유」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26강은 이준이 부산대 교수(기후과학연구소)의 「기후 위기와 인류의 대응」, 제27강은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의 「불평등과 빈곤·기아·식량문제: 생물종 다양성」, 제28강은 김홍중 서울대 교수(사회학과)의 「팬데믹 시대의 개인과 사회」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아무리 현재의 정치가 실망스러워도, 또 설령 먼 훗날 초인공지능의 개발이 성공한다 해도, 우리는 정치를 초인공지능에게 이양할 수도 또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과학기술과 자유가 근대 문명이 전개되는 두 개의 중추인 이상 인간과 과학기술의 상호작용에서 자유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현대 철학, 나아가 현대 학문에서 핵심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자유는 어떻게 디지털 기술을 통해 연구될 수 있는가? 우선 인간 행동의 명령 기관을 확정하고 그 명령 기관이 자유롭게 명령을 내리는가를 연구하면, 일단 인간이 자유로운지의 여부가 판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두뇌의 생화학학적 작용으로 환원하고, 이를 다시 디지털 의공학적 장비를 동원해 미시물리학을 통해 설명하려는 시도에는 사실상 ‘존재는 곧 물질’이라는 형이상학이 전제되고 있는 셈이다. 

사회생물학과 ‘통섭’의 개념으로 명성을 떨친 에드워드 윌슨이나 뇌 과학의 진리 주장을 절대화하는 패트리샤 처칠랜드(Patricia Chuchland) 같은 제거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의미있는 행동이 물리적 두뇌의 지배를 받는 활동이라고 주장한다. 또 그들에 따르면 두뇌는 순전히 미세한 물리적 법칙의 복잡한 작용으로 기능하는 신경망에 불과하다. 

이종관 성균관대 교수(철학)는 “가상현실은 상호 의존과 책임의 관계를 거부하며, 그런 점에서 반사회적이고 반도덕적이 될 위험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인간은 두뇌를 연구한다. 그리고 자신을 뇌 과학의 연구 결과를 통해 해석한다. 최근에는 자신의 존재를 두뇌의 생화학적, 나아가 자신을 신경세포의 자기장 활동으로 환원해 해석한다. 

그러나 그럴 때조차 두뇌를 연구하는 인간은 뇌 과학의 연구 대상으로 존재하는 물질적 두뇌와는 다른 방식으로 두뇌를 사용하며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다르게 존재하기 때문에 물리적 인과율에 구속된 물체가 아니라 그 인과율로부터 자유로운 결단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 결단을 통해 물리적 인과율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불가능할 때, 도구와 기술을 개발해 그 자유를 실현하려는 도전을 감행한다. 이렇게 스스로 결단하는 존재로서 인간이 행하는 하나의 활동 방식이 뇌 과학이라는 지적 탐구활동이다. 

메타버스는 인공적 환경이란 점에서 장 보드리야르의 하이퍼리얼리티와 유사성을 갖는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아날로그 기술에 기초한 하이퍼리얼리티의 전형적 범례가 영화나 TV를 통해 제공되는 시청각적 대면 환경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디지털 기술을 존재 근거로 한 메타버스의 가상현실은 통합 감각의 3차원 입체 환경까지 제공한다. 

즉 하이퍼리얼리티의 환경에서 체험자는 여전히 하이퍼리얼리티와 대상적 거리를 유지하며 응시자로서 제3자의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하이퍼리얼리티와 체험자 사이에는 완전 몰입이 불가능한 소외의 간극이 잔존한다. 반면 메타버스는 완전 몰입 환경의 제공이 목적이다. 특히 메타버스의 중추기술 중의 하나인 가상현실은 그 체험자와 일말의 낯섦과 소외의 거리가 개입될 수 있는 틈새가 존재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가상현실의 거주자들이 결국 타자의 실질적 독립적 존재를 인정함으로써만 형성될 수 있는 상호 의존과 책임의 관계를 거부하며, 그런 점에서 반사회적이고 반도덕적이 될 위험이 크다고 단언한다. 

타자의 실종과 관계의 거부 그리고 정체성의 분열, 이것은 실로 인간의 윤리에 치명적인 것들이다. 타자를 직접 만나지 않으면 타자에 대한 우리의 책임감은 희박해지며 따라서 우리의 타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자유 시민 사회의 윤리는 퇴조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메타버스의 자유는 사실상 윤리적 무중력 상태로 전락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 

2008년 이후 파국의 위기를 경험한 디지털 자본주의는 실리콘밸리를 진원지로 본격화된 소위 파괴적 혁신을 통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파괴적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매출을 단기간에 달성하는 신화를 쓰면서 자본주의의 구원의 여신으로 찬양되고 있다. 그런데 이 기업들의 혁신은 거의 대부분 디지털 플랫폼이란 새로운 사업 모델을 구축함으로써 이뤄진다.

현재 인공지능, 빅데이터, 그리고 플랫폼을 구성하는 디지털 자본주의를 선도하는 기업은 아마존,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이다. 주요 디지털 경제 기업들의 경제 거래는 돈과 정보의 두 가지 다른 통화를 사용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계정은 사용자에게 무료로 제공되지만 사용자들은 사실상 회사의 주요 자본인 개인 활동의 디지털 흔적을 사용의 대가로 지불한다. 이들 기업들은 사용자들의 개인 활동의 디지털 흔적을 빅 데이터로 축적한다. 

이 빅데이터는 자사의 서비스 및 생산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알고리즘을 지속적으로 최적화해 이들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한다. 

수퍼인공지능은 인간을 둘러싼 환경의 복잡성과 그 복잡성이 야기하는 여러 가지 위협적인 문제들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 복잡성을 제어할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초인공지능에게는 인간의 명령에 따라 타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명령 이전에 그 인간이 원하는 것을 그 인간보다 먼저 파악해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초인공지능이 행동의 자율성을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면 할수록, 그리하여 모든 문제를 인간에 앞서 해결해주면 해줄수록, 인간은 자유로운 행위자로서의 존재 방식을 상실해갈 위험에 노출된다. 

아무리 현재의 정치가 실망스러워도 또 설령 먼 훗날 초인공지능의 개발이 성공한다 해도, 우리는 정치를 초인공지능에게 이양할 수도 또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주권적 존재로서 나와 타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한 그리고 인간이 주권적 존재로서 인권을 존중받는 미래 사회를 향해 발전해나가려고 하는 한, 정치 발전을 향한 인간의 정치적 지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연구와 교육은 더욱더 필연적인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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