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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08] 문어는 배고플 때 자기 다리도 먹는다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08] 문어는 배고플 때 자기 다리도 먹는다
  • 권오길
  • 승인 2022.10.26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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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문어

 

문어는 몸통 다음에 머리가 있고, 거기에 다리가 붙어있다. 몸통→머리→다리 순서로 붙어있어 참 이상한 몸 구조다. 사진=위키미디어

KBS 「6시 내고향」을 보니, 고성 어부들이 저도어장(楮島漁場)에서 커다란 대왕문어(大王文魚)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여덟 가랑이 대문어같이 멀끔하다”란 말은 무엇이 미끈미끈하고 번지르르하거나 생김생김이 훤함에 빗댄 것이며, ‘문어 제 다리 뜯어먹는 격’이란 제 패거리끼리 서로 헐뜯고 비방하거나 자기의 밑천, 재산을 차츰차츰 까먹음을 비유하며, 또 ‘문어발식 경영’이란 사업을 여러 갈래로 확장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문어는 거의 24시간 동안 먹을 게 없으면 자신의 다리를 끊어 먹으니 이런 걸 자식(自食, autophagy)이라고 한다. 모든 다리가 아닌 1~2개 정도를 정해서 먹는다고 하고, 다리는 일종의 영양을 비축해 두는 저장소와 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그리고 그 다리는 새로 재생한다.

그리고 ‘文魚’란 ‘글을 쓰는 고기’라는 뜻이나 문어가 글을 쓴다는 게 아니고, 문어 먹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이렷다. 또한 “먹물을 먹는다”란 말은 책을 읽어 글공부함을 의미하니 ‘먹물(잉크)’ 하면 배움이 많은 사람이나 글을 잘 쓰는 이를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문어(octopus)는 두족류(頭足類, cephalopod)로 괴이하게도 ‘머리에 발이 붙은 동물’이다. 그리고 몸통이 둥그스름하게 사람 머리를 닮았다 하여 흔히 ‘문어 머리’라 부르는데, 그것은 결코 머리가 아니라 먹통(ink sac) 따위의 내장이 든 몸통이다. 문어는 몸통 다음에 머리가 있고, 거기에 여덟 개의 다리가 잇따라 붙었으니 몸통, 머리, 발(다리)의 순서로 다른 동물들에 비하면 참 이상야릇한 몸의 구조이다.

문어(Enteroctopus dofleini)는 문어과에 딸리고, 추운 바다에 나는 연체동물(軟體動物, mollusc)로, 몸무게가 10㎏ 이상의 것을 대문어(大文魚) 또는 대왕문어(大王文魚)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입때껏(여태껏) 잡힌 놈 중에서 가장 큰 것은 50㎏인데, 그놈들도 강원도 동해 어로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에 있는 저도어장에서 주로 잡힌다. 

그런데 두족류 중에서 문어․주꾸미․낙지는 다리(foot)가 여덟인 팔완류(八腕類, octopus)이고, 오징어․갑오징어․꼴뚜기들은 팔(arm)이 열 개인 십완류(十腕類, decapod)이다. 문어는 주로 암초 지대에 살고, 말 그대로 뼈가 없는 말랑말랑한 연체동물이라 몸을 유연하게 비틀고 오그려 좁은 틈새에도 쉽게 기어든다. 또한 키틴(chitin)질의 날카로운 부리가 팔의 중앙부에 있다.

문어는 제가 있는 환경에 따라 몸 빛깔(體色)을 잘 바꾸기에 ‘바다의 카멜레온(sea chameleon)’이라 불린다. 살갗의 색소세포에는 노랑․빨강․갈색․귤색․흑색 등의 색소가 있어서 주변 환경변화에 따라 붉으락푸르락 제 맘대로 몸 색깔을 바꾼다. 또한 근육을 자유자재로 또르르 말거나 주르르 펴서 가시돌기나 해초, 울툭불툭한 바위 모양을 만들어내며, 너부시 엎드려 다른 동물이 죄 무서워하는 바다뱀이나 장어 흉내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 문어는 물고기나 조개(어패류), 새우나 게(갑각류)를 먹는데, 먹이를 잡으면 집으로 가져가는 습성이 있어서 집 앞에는 까먹고 버린 조개껍데기가 잔뜩 널려 있다. 문어는 다리로 스멀스멀 기어가기도 하고, 깔때기(funnel)에서 내뿜는 물의 분사운동(噴射運動, 제트운동)으로 헤엄친다. 위장(僞裝)하여 숨고, 경계색(警戒色)으로 겁주며, 죽은 시늉(feign death)도 하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검은 멜라닌(melanin) 먹물을 홱 뿜어 천적의 후각기를 마비시켜버린다. 

문어는 발(다리)에 붙은 빨판(suction cup)으로 다른 물체에 쩍쩍 달라붙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맛도 본다고 한다. 사람들은 빨판을 흉내 내어 주방 기구인 ‘흡착(빨판) 걸이’를 만들었다. 또 문어는 무척추동물 중에서 뇌/몸집이 가장 커서 지능이 제일 높고, 신경도 지름이 1mm나 되어 신경생리학실험에 단골로 쓰인다. 따라서 눈도 아주 크게 발달하였으며, 두족류의 종류에 따라 눈동자의 모양이 다르다. 문어는 직사각형, 갑오징어는 W자형이고 오징어는 둥글다.

뭄어 수컷은 교미하고 얼마 뒤 죽지만, 암컷은 알이 부화할 때까지 지키면서 서서히 죽는다. 사진=위키미디어

문어 몸은 좌우대칭이고, 다리들 사이에 질긴 막이 있으며, 오른쪽 셋째 다리를 짝짓기에 쓰며, 그 끝에다 정자 덩어리(정포, 精包)를 얹어 암컷의 몸 안에 넣어준다. 수컷은 교접(교미)하고 얼마 뒤에 죽지만 암컷은 교미 40일 후에 1만여 개의 수정란을 바위 밑에 달라 붙인다. 그 뒤 암컷 어미는 5개월 동안(부화할 때까지) 알을 지키면서 기다란 발을 설렁설렁 흔들어 산소가 많은 깨끗한 물을 흘려주면서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간단히 말해서 문어의 끔찍한 자식 사랑이다! 이렇게 오래 새끼를 보살피다 보면 지칠 대로 지친 어미는 눈까지 거슴츠레해지면서 알의 부화와 동시에 시나브로 죽고 만다. 

문어잡이는 주로 ‘통발’로 하지만 ‘항아리’도 쓰니 이는 문어가 은신처를 찾는 본성을 이용한 것이다. 바다 깊게 항아리(요새는 플라스틱 항아리를 씀)를 내려 하루 이틀을 둔 후에 끌어 올린다. 속의 물고기들은 항아리가 움직이면 도망치나 문어는 그럴수록 옹송그리고 벽에 찰싹 붙으니 항아리에 들었다면 백발백중으로 잡힌다. 그런데 단지가 아무리 커도 딴 놈은 얼씬도 못 하게 하기에 딱 한 마리씩만 든다. 

문어를 살짝 데쳐 어슷썰기 하여, 하얗고 넓적한 살점을 초고추장이나 기름소금에 찍어 먹는 문어숙회(文魚熟膾)는 그야말로 별미다. 그것 말고도 문어 요리에는 문어 죽․초무침․연포탕․초밥 등 다양하다.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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