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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할 자유
선택할 자유
  • 박구용
  • 승인 2022.10.25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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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대통령이 수상하다. 이미 선택 받은 대통령이 또다시 국민에게 선택을 종용한다.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 진실보도냐, 자막조작이냐? 표절이냐, 패러디냐? 풍자냐, 혐오냐? 

유엔에서 있었던 ‘날리면 쇼’는 악성 개그나 저질 예능으로 비춰질 단순 실수다. 개그나 예능 방식으로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예능 문제를 성난 다큐로 풀려고 한다. 쉬운 길 버리고 험한 길을 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윤석열차」는 스티브 브라이트가 영국 일간지 <The Sun>에 실은 「영국 총리 열차」의 예술적 패러디다. 브라이트의 평가에 따르면 「윤석열차」는 만평 능력이 돋보이는 매우 훌륭하고 뛰어난 작품이다. 이쯤 되었을 때 대통령이 나서 창작자인 학생을 위로하고 격려했다면 적어도 대통령에게는 해피엔딩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은 위엄과 권위를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잃었다. 이번에도 비단 길 외면하고 척박한 길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것은 대부분 두 가지 경우다. ①더 큰 이익이 있다고 믿는 경우와 ②어떤 신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다. 대통령(실)의 이익 관심과 타산성 계산은 알 수 없으니 ①을 제쳐두면 ②의 가능성이 남는다. 대통령의 신념이 그를 선택한 국민의 의지와 충돌하고 있다.    

대통령의 신념 안에 누가 숨어 있을까? 다수가 있겠지만 짐작뿐이다. 다만 한 사람은 분명하다.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M. Friedman)이다. 대통령이 읽은 경제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의 저자다. 프리드먼은 1974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 Hayek)와 더불어 신자유주의, 곧 자유지상주의를 이끌었던 학자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개인과 사회, 경제와 정치, 풍요와 복지, 자유방임과 국가개입, 민영화와 국가화 중 한쪽에 배타적 우선성을 부여하라고 압박한다. 물론 답은 정해져 있다. 전자를 앞세우면 자유인의 길이고, 후자를 앞세우면 노예의 길이다. 자유를 위한 선택에는 자유가 없다. 

“자유란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프리드먼의 이 말에 따르면 경제적 자유가 없으면 정치적 자유도 없다. 윤 대통령은 프리드먼보다 더 극단적인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자유의 뿌리가 그에겐 재정적 자유다. 이 신념에서 그의 거친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자유가 왜 개인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그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를 못합니다.” 

진영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현대 사상가들은 자유 개념을 매우 소중하게 다듬고 가꾸었다. 이 과정에서 자유는 사람이기 위한 조건이자 권리, 곧 인권이자 기본권이 되었다.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은 자유라는 권리들의 기둥으로 세워진 건축물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껏 자유를 느끼고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프리드먼이 내세우는 ‘선택할 자유’는 권리가 아니라 권력이다.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언제나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마치 “여린 초목”처럼 선택할 자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냘픈 희망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면 자유는 곧 폭력으로 둔갑한다. 늑대에겐 선택의 자유가 사슴에겐 죽음일 뿐이다.

선택의 자유라는 권력에 취한 대통령이 이젠 국운이 걸린 문제까지 국민을 끌고 간다. 한미일 군사훈련비판에 맞서 또 선택하란다. 북한이냐 일본이냐? 참 사나운 권력의 자유다.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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