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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다보면 꽃 핀다
기다리다보면 꽃 핀다
  • 맹문재 안양대
  • 승인 2006.04.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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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임교수 시절

진달래와 개나리가 교정의 곳곳을 밝히고 있는 요즘,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 또한 밝다. 새 학기의 강의에 대한 기대감으로 서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학과 모꼬지를 다녀온 뒤 친밀감이 붙어 보다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중간고사가 다가와 학생들은 나의 강의에 한층 더 관심을 보이고 있고, 나 또한 학생들의 그 눈빛을 보고 있자니 즐겁다. 새 학기를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세월의 빠름을 느끼는데, 중간 점검의 차원에서 학기 초에 공지한 나의 강의 계획서를 살펴본다.

강의 계획서의 ‘수강생 유의·참고사항’에는 “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세요. 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씌어 있다. 그렇다. 학생들은 믿음을 주면 줄수록 잘한다는 사실을 신임교수들께 들려주고 싶다. 잘못한 점을 가지고 야단치는 것보다 잘한 점을 발견해 칭찬해주면 학생들은 그 마음을 이해하고 스스로 고쳐나가고, 그리고 자신감을 갖는다.

내가 학생들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데에 있다. 그동안 강의를 해오면서 깨달은 사실은 나의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학생들 스스로 찾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탈무드의 가르침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를 늘 고민하는데,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학생들을 믿고 맡기는 것이 대학생다운 공부를 시키는 방법이라고 여기고 있다.

내가 읽은 책이 소중하다고 학생들에게 추천할 수야 있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여기고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내가 근거로 삼는 기준들(가령 좋은 문학 작품에 대한 기준)이 있지만, 그것을 유일한 잣대로 여기고 학생들에게 따르도록 요구하는 것도 좋지 않다. 그보다는 학생들 스스로 연구할 과제를 선택하고, 선택한 과제를 착실히 준비해서 발표하고, 그리고 발표한 것을 보충하도록 최대한 도와주는 일이 필요하다. 결국 학생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될 텐데, 그 앞에서 당황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설 수 있는 자신감을 갖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사실 학생들이 이끄는 수업 방식이 성공을 거두기는 쉽지 않다. 학생들의 수업 수준이란 당연히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강의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은 학기 초에는 논의가 주제에 집중되지 못하고 흐트러지기도 하고 진정성이 약해 우려가 된다.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조급함을 억제하고 학생들을 믿고 있으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학생들이 발표와 질문에 적극성을 띠고 참여하고 그러면서 자신감을 갖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신임 교수들은 더욱 그렇겠지만 나 역시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싶다. 그렇지만 그것이 쉽지 않아 때로는 고민하다가 방기하거나 포기한다. 심지어 학생들의 수준이 안 된다고 실망하고 감정적으로 대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행동은 절대 금물이다. 꾸지람을 들은 학생은 자신의 잘못을 고치기보다 반감을 갖고, 설령 고친다고 할지라도 임시방편적인 것이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므로 참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조건 칭찬할 것이 아니라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책임을 묻되 학생들을 믿어보는 것이다. 잘하는 학생들은 자만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하도록 이끌고, 못하는 학생들은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어느 정도 하는 학생들은 더욱 분발하도록 적당한 칭찬과 자극을 준다. 학생들에게 자신이 맡은 일이 소중한 가치가 있으므로 성실해야 됨을 일러주는 것이다.

교수 또한 학생들에게 인정받으려면 성실해야 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학생들의 과제를 예리하게 파악하고 보충해야 될 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는 것은 기본으로 책임져야 할 사항이다. 그렇게 하면서 기다리다보면 봄이 오듯 학생들의 공부에 꽃이 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교정의 곳곳에 피어 있는 이 봄날,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이 오늘 따라 더욱 예쁘고, 고맙다.

맹문재 / 안양대·국문학

※‘한국 노동시의 문학사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집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시론집 ‘한국 민중시 문학사’, ‘현대시의 성숙과 지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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