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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X인자’로 팬데믹 극복?…성공에 대한 조바심인가
[글로컬 오디세이] ‘X인자’로 팬데믹 극복?…성공에 대한 조바심인가
  • 서동주
  • 승인 2022.10.20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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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서동주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2021년 3월 16일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예방접종을 받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한국과 일본 간의 무비자 여행이 재개됐다. 코로나 발생 이래 2년 이상 닫혔던 민간 교류의 문이 다시 열렸다. 이것은 일본 정부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을 국경에서부터 철저히 막겠다는 기존의 방역 정책을 더 이상 유지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코로나 팬데믹의 끝머리에서 다시 한번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일본은 코로나 방역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22년 9월 말 현재 일본의 코로나 치명률은 약 0.2%이다. 약 1.1%을 보이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약 0.8%의 수준에 있는 영국이나 이탈리아와 비교할 때 확실히 일본의 방역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0.4%대를 기록하고 있는 독일, 프랑스에 견준다면 그 성공이 압도적인 정도는 아니다. 분명 선진국 집단인 G7 안에서 일본은 가장 우수한 방역 성적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조금 시야를 돌려 일본보다 낮은 사망률을 보이고 있는 한국, 싱가포르, 호주, 대만과 비교한다면 일본의 성공을 특별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일본의 코로나 방역 성적은 국제적으로 우수한 편에는 속하지만 소위 일본식 모델을 주장할 만큼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지난 팬데믹 기간 동안 일본의 미디어에서는 ‘왜 일본은 서양에 비해 확진자와 사망자가 적은가’라는 질문이 꾸준히 등장했다. 특히 일본의 확진자 수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눈에 띄게 적은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이 질문이 미디어를 장식했고, 일본만의 성공 비결을 해명하려는 보도가 뒤따랐다.

예를 들어 2020년 5월 아베 수상이 수도권에 실시했던 긴급조치를 해제하자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일본 정부의 대책이 “성공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5월 초에는 <파이낸셜타임스>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제압한 일본모델’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는데, 7월에는 <BBC>도 ‘왜 일본은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의 사망자가 이상할 정도로 적은가’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해외의 평가는 당연히 일본인들에게 또 하나의 성공 신화를 썼다는 감격과 흥분을 안겨줬다.

이런 일본 예찬의 담론이 다시 미디어를 장식한 것은 2021년 하반기였다. 이때는 오미크론의 유행이 시작되면서 세계 각국에서 확진자가 다시 급증했지만, 유독 일본만은 확진자 수가 감소하는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당시 일본 언론이 이런 성공의 요인으로 주목한 것은 이른바 ‘X인자’였다. 당시 X인자는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키는 어떤 유전 타입으로 알려졌는데, 특히 공중파의 일부 보도프로그램은 일본이 다른 서구 선진국에 비해 사망자가 적은 것은 인구 중 X인자를 보유한 사람들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이것을 성공 비결로 주목했다.

이런 보도는 과학적 지식에 근거한 신뢰할 만한 설명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일본이 코로나 방역에 선방한 이유가 X인자 덕분인지는 여부는 좀 더 검증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일본이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전체 인구 중 X인자 보유자의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한국 등 아시아 국가와 비교했을 때는 그 격차가 결코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일본 언론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학설을 적절한 비교 대상을 설정함으로써 마치 확실한 과학적 지식인 것처럼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일본 사회는 여러 가지 문제를 노출했다. 소극적인 정보화 도입이 낳은 행정의 비효율성, 글로벌화에 역행하는 뿌리깊은 쇄국 마인드가 두드러졌는데, 여기에 성공에 대한 조바심을 하나 덧붙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태도는 지난 30여년 간 사회적 활력을 상실해 왔던 것에 대한 보상 심리일지도 모르겠다. 검증되지 않은 지식에 의존해서라도 일본의 성공 담론을 만들어 내려는 태도가 문제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타자를 대하는 편향적인 시각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기간 동안 일본 사회가 보여준 모습의 하나는 성공의 주변 아시아의 성공을 철저히 외면하는 편향성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과학적 지식은 일본이 아시아와 협력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예컨대 코로나 방역에 관한 국제비교를 다룬 여러 연구는 한국과 일본이 ‘도시봉쇄(lockdown)’라는 극단적 조치 없이 방역에 비교적 성공적인 결과를 얻은 케이스로 주목하고 있다. 즉 한국과 일본은 차이보다 성공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세계에 공헌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서양만을 유의미한 비교 대상으로 간주하며, 이웃의 성공을 애써 외면하는 일본의 소심한 우월의식에서 일본이 가야할 길이 열릴 리 없다.

 

서동주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일본 쓰쿠바대 인문사회과학연구과에서 문학박사를 받았다. 전공분야는 일본근현대문학이며, ‘냉전과 전후의 관계’에 관한 현대일본의 사상 및 문화표상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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