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3:45 (목)
忍耐의 가치
忍耐의 가치
  • 김재섭 KAIST
  • 승인 2006.04.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의 연구실

▲뒷줄 왼쪽부터 신진환, 현서강, 홍성태, 방선회, 백동기, 황승윤, 이희란, 이재정 / 앞줄 왼쪽부터 박중진, 이영석, 김재섭 교수, 전근혜, 박용원, 정상윤 ©


김재섭 / KAIST·생명과학과

성공적인 과학자가 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으라고 한다면 사람마다 각기 다른 요소를 들 것이다. 어떤 이는 지적 능력을, 어떤 이는 적극적이고 열심히 하는 태도를 꼽을것이다. 나는 내 연구실의 대학원생들에게 ‘가치 높은 연구 주제를 선택하는 것’과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노력하는 인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치 높은 연구 주제를 택하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 기본적으로는 논문들을 많이 읽어서 충분한 학문적 지식을 갖추라고 하면서도, 내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두 가지 더 있다.  첫째는 단순히 논문을 만들 목적으로 가치가 낮은 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종종 경험이 부족한 대학원생들은 자신이 하는 실험으로 얻어질 데이터의 중요성을 판단하지 않고 단순히 데이터를 만들 목적으로 연구를 수행한다. 이런 실험은 대개 수행하기는 쉽지만, 길게 보면 귀중한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할 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둘째는 가치 높은 연구라고 판단되어 시작한 연구라도 중간에 얻어진 실험결과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가치가 낮다면 주저 없이 그리고 과감하게 접으라는 것이다. 과거에 들인 노력이 아깝겠지만 지나간 시간보다는 앞으로의 시간이 더욱 소중한 법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시간을 높은 가치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런데 대부분 학문적 가치가 높은 연구는 수행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새롭고 창의적인 연구 주제 일수록 기존에 알려진 정보나 관련 논문이 없어서 연구 방향 설정에 필요한 참고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어떤 경우에는 아주 창의적인 아이디어만으로 쉽게 가치 높은 연구 결과를 얻어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끊임없는 도전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나는  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노력하면 거의 모든 일은 꼭 이루어진다”라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그리고 내 연구실에 합류한 학생들에게는 먼저 오랜 인내가 필요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하고 이를 통해 끈질기게 문제를 해결하는 근성을 기르도록 훈련시킨다. 이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에 대해서는 내가 조언을 하지만 세세한 연구 방업에 대해서는 스스로 논문이나 실험실 동료들과의 의견교환을 통해 찾아내도록 내버려둔다. 지나친 간섭은 하지 않아야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연구실 운영으로 인해 우리 실험실에서 발표하는 논문 수는 비슷한 규모의 다른 대학 연구실들에 비해 아주 적은 편이다. 연구결과의 학문적 가치에 더 중점을 두다보니 높은 질의 논문을 내기는 하지만 발표하는 논문 숫자는 크게 떨어졌다. 이러다보니 부작용도 종종 생긴다. 인내력이 적은 학생이나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는 똑똑한 학생들이 종종 다른 길을 택한다. 석사과정에 입학할 때는 박사과정까지 마치겠다던 학생이 종종 의대로 편입하거나 유학의 길을 택하기도 한다. 남아 있는 학생들도 일정 단계에 이르기 까지는 힘들어한다. 

나 역시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박사 졸업생들을 보면 그래도 위안이 된다. 아직까지 내 연구실을 거쳐 간 학생이 그리 많지 않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내 연구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거나 상당 기간의 포스닥 과정을 거친 사람들은 성공적인 과학자로 성장하는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고집이 다른 길을 택했던 학생들을 희생시킨 것 같아서 ‘내가 좋은 교육자는 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하고, 그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