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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_독일 루만 체계이론의 전성시대
해외동향_독일 루만 체계이론의 전성시대
  • 정광진 독일통신원
  • 승인 2006.04.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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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출간 유고, 해설서 봇물…경험연구와의 친화성 갖춰야

바야흐로 ‘루만의 전성시대’다. 니클라스 루만(1928~1998)은 생전에 6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와 30여년에 걸쳐 쌓아올린 체계이론으로 하버마스와 함께 독일의 대표 사회이론가로 명성을 누렸지만, 체계이론에 기초한 사회학 연구는 타계후 더 화려하게 만개하고 있다.

루만과 체계이론에 대한 반향을 최근 출간된 서적과 논문으로 살피면 크게 다섯 줄기로 볼 수 있다. 우선 루만의 유고출간이다. 10여권 정도 나왔는데, 최근 것으론 ‘교육학 논문집’(2004)과 강의녹취록인 ‘사회이론입문’(2005)이 있다.

둘째, 이론 소개서들이다. ‘체계이론 입문서 시장’이라 할 정도로 루만이론을 쉽게 소개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삽화와 도식을 곁들인 ‘쉽게 이해하는 루만’(2003)이 인기다. 셋째, 루만이론의 각론을 다른 학문·이론과 비교하는 것이다. 가령 루만의 정치이론에 관해 지난 3년간 발간된 연구서만 6권에 달한다.

넷째, 체계이론 자체를 발전시킨 연구들이다. 루만은 ‘루만학파’를 만들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스스로를 한명의 체계이론가로 여겼던 것. 제자그룹이 있긴 하나 루만을 교조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체계이론을 심화·발전시키고 있다. 대표주자로 D. 배커, R. 슈티히베, P. 푹스, A. 나세히를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루만과 다른 접근법으로 혹은 그가 자세히 다루지 못했던 영역에 대한 연구서들을 꾸준히 펴내고 있다. 끝으로, 구체적 사회학 연구에 체계이론을 적용시키는 경우다.

 이에 해당하는 문헌은 워낙 다양한데, 특기할만한 점은 경험적 연구의 부재라는 체계이론에 대한 대표적 비판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릴만한 연구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연구는 대부분 ‘조직’이나 ‘상호작용’을 분석단위로 삼고 해석학적 방법론을 사용한다. 루만은 사회에 대한 분명한 이론없이 데이터를 모으고 해석하는 경험적 사회학과 고전의 뼈다귀만을 갉아먹고 있는 이론사회학 모두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이에 필생의 과제를 사회에 대한 새로운 통합적 이론을 세우는 것으로 삼았다.

루만과 후학들의 노력으로 체계이론은 어느때보다 정교해졌지만 경험적 연구와 친화성을 갖추는 일은 여전히 중요과제로 남아있다. 이를 해결 못한다면 루만의 전성시대는 체계이론가들만의 파티로 끝나고 말 것이다. 이밖에 체계이론가들은 독립된 논의의 지면도 확보하고 있는데, 체계이론적 사회 이론지를 표방하며 1995년 창간된 ‘Soziale Systeme’가 그것이다. 현재 편집장은 스위스 루체른 대학의 루돌프 슈티히베 교수가 맡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도 체계이론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http://www.listserv.dfn.de/cgi-bin/waA0=luhmannhttp://groups.yahoo.com/group/sociocybernetics/)

이같은 체계이론 전성시대의 도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거시 사회이론에 대한 회의적 분위기가 지배적인 이 시대에 사회학도들을 끌어당기는 루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우선 체계이론이 ‘세계사회’에서 ‘조직’, ‘상호작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현상을 하나의 이론틀로 설명하려는 드문 ‘슈퍼이론’이기 때문이다. 사회학 연구전통에서 오랫동안 사회는 국가와 동일시됐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심화된 지구화는 이러한 사회학의 전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이에 대한 사회학의 반응은 지구화를 하나의 현상으로 기술하거나, 조직, 네트워크 등 더 미시적인 차원에 시야를 고정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루만은 이미 1971년에 발표한 ‘세계사회’라는 논문에서 국가는 정치체계의 자기서술일 뿐이고 기능적으로 분화된 현대에는 유일한 하나의 ‘세계사회’가 있을 뿐이라는 테제를 제시했다. 그리고 기능적 분화, 지역적 분화, 사회, 조직 등 다양한 차원의 체계와 그들 간의 관계를 하나의 이론틀 안에서 연결시키려 한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시도가 매끄럽게 진행된 건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야심찬 기획임엔 틀림없다.

또 다른 이유로 체계이론의 개방성을 들 수 있다. 체계이론에서 사용하는 개념들은 기존 사회학도들에게 생소하고 난해하기로 악명높다. 하지만 일단 그 패러다임 속에 들어가 복잡한 개념들의 연결고리를 찾기만 하면 쉽게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석을 덧붙일 수 있기도 하다. 체계이론은 루만에 의해 완성된 이론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사회에 대한 이론작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매우 괴로운 정독의 시기를 거쳐야만 한다. 또한 독일어를 모르면 깊이 이해하기 어렵다. 극히 일부만 번역됐기 때문. 외국인의 경우 설령 독일어를 익혔더라도 루만이 전제하고 있는 철학적, 사회과학적 전통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소화하려면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제약 때문에 체계이론이 갖는 장점에도 불구, 비독일어권에서 루만의 전성시대가 도래하리라고 예측하기는 힘들다.

한국에서도 루만과 체계이론에 대해 소개된 내용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최근 연구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고, 루만의 저서 두 권과 한 권의 입문서가 번역됐을 따름이다. 하지만 예정대로 올 상반기에 루만의 주저로 꼽히는 ‘사회체계’(1984)가 박여성 제주대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된다면, 그것이 루만에 대한 본격적 논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루만과 체계이론 소개를 또 다른 서구 이론의 ‘수입’으로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문닫아 걸고 한국어로만 학문할 수는 없는 이상 말이다. 그 보다는 한국 학문 생태계의 건강 유지와 자생력을 키워나가기 위한 ‘이론 다양성’의 자원으로 이해하는 게 나을 것이다. 편식은 건강에 해롭지 않은가.

정광진 / 독일통신원·빌레펠트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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