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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19세기 러시아 문학’ 1세기만에 서구 앞질러
늦깎이 ‘19세기 러시아 문학’ 1세기만에 서구 앞질러
  • 이영범
  • 승인 2022.10.14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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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러시아 문학과 사상: 푸시킨 고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이영범 지음 | 보고사 | 370쪽

러시아 문학, 민중의 분노·양심의 외침을 전달
유럽의 비판자로서 독자적 발전 방향을 이끌다

러시아 문학의 기원은 동슬라브족(러시아 민족, 우크라이나 민족, 벨라루스 민족)에게 문자 문학이 생기기 오래전의 전설, 민담, 속담, 설화 등 다양한 구비문학적인 소재들이 10세기경 출현한 키릴문자(현재 러시아어 알파벳)로 표현됐을 때부터다.

러시아는 르네상스 단계를 거치지도 못했고, 서구에 비해 상당히 늦게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표트르 대제(표트르 1세의 별명. 1672∼1725년. 재위: 1682∼1725년)의 서구화 정책으로 인해 문화와 예술, 과학기술, 관습과 종교 등 거의 전 영역에서 그 이전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크게 변화됨과 동시에 비약적인 수준의 진화와 발전이 이루어졌다.

한편, 러시아 문학자들과 사상가들은 서구의 문화와 사상 등을 비판적으로 수용해 러시아만의 특수한 독자적 발전 방향을 추구하려 노력했다. 예를 들어, 1840년대에 벌어진 서구주의자와 슬라브주의자 간의 치열한 논쟁이 이에 해당한다. 19세기 초 ‘러시아 시의 황금기 최고 시인’이자 ‘러시아 국민 시인’으로 불리는 푸시킨은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러시아는 그 지리적 위치, 정치적 상태 등으로 유럽을 재판하는 법정이며, 러시아인은 유럽의 비판자다.”

 

이 책에 소개되는 러시아 대문호들은 각 작가의 작품 속에서 훌륭한 러시아 여성의 형상을 창조했다. 예를 들어, 푸시킨의 운문 형식의 산문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의 여주인공 타티야나, 톨스토이의 장편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 카레니나 등이 그러한 형상이다.

러시아 문학 비평 및 철학과 사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위대한 사상가이자 혁명가였던 게르첸이 말했듯이, 러시아 문학은 어떤 정치적 자유조차 없던 민중의 분노를 전달하고, 러시아 지성인의 양심의 외침을 전달하는 연단으로서 그 역할과 사명을 감당했다. 이처럼 러시아 문학은 민중의 열악한 삶의 상태와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는 길이자 도구로서 커다란 역할을 했다. 특히 푸시킨을 비롯한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와 같은 19세기의 위대한 러시아 문학의 거장들은 그 당시 서구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 러시아 사회를 개선하고, 인간과 인권을 중시하는 휴머니즘과 이의 토대가 되는 인문 정신 및 사회사상의 탐구 등에 있어서 커다란 역할을 했다. 또한, 그들은 국민적 의의를 지닌 중대한 문제를 국민(민중)의 편에서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해석하려는 입장을 취했다. (참고로 이 책은 19세기 러시아 전제주의 체제하의 민중을 염두에 두었으므로, 여기서 ‘국민’이란 ‘민중’을 의미함.)

19세기 러시아는 전제주의 제도와 농노제도 등 여러 영역에서 후진적인 정치·경제 체제 등 비민주적인 사회 환경에 있었다. 이처럼 열악한 사회적 환경과 조건 속에서 19세기 러시아 문학은 1세기라는 매우 짧은 기간에 서구 문학을 앞지를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러시아 국민 문학의 아버지’, ‘러시아 민중성의 최고 표현자’, ‘다양한 문학 장르의 천재 작가’ 등으로 불리는 푸시킨(1799∼1837)이 낸 ‘비판적 사실주의의 길’을 고골(1809∼1852), 투르게네프(1818∼1883), 도스토옙스키(1821∼1881), 톨스토이(1828∼1910), 체호프(1860∼1904) 등 대문호들은 따라가면서, 그리고 그 길을 더 단단히 다져가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통해 사실주의 문학을 번영하게 했다.

 

러시아의 위대한 시인이자 소설가 푸시킨(1799∼1837). 이미지=위키백과

17세기 말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정책과 더불어 진행된 러시아 근대문학은 18세기 초부터 프랑스를 비롯한 영국 등의 영향을 받아 19세기에 이르러 러시아만의 고유한 특징을 지닌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즉, 서구(유럽)의 관점에서 러시아 문학이 세계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전성기는 19세기였다. 따라서 19세기 러시아 근대문학의 대문호들(푸시킨,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등)은 셰익스피어, 괴테, 세르반테스 등에 비견되는 작가들이다. 러시아 사상과 철학, 심리, 정치, 종교, 역사, 문화와 예술, 사랑, 젠더, 결혼과 이혼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한 자료로 쓴 이 책은 러시아 문학과 문화 및 예술에 대한 이해와 러시아인의 정체성 탐구 등에 유용하리라 본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푸시킨 등 작가별로 작품을 분석한 책을 쓸 계획이다. 독자가 이 책의 내용을 정확히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글에 텍스트로 사용한 작가의 작품을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영범
청주대 교수·러시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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