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23:15 (목)
부산의 영어 상용화 정책을 반대하며 
부산의 영어 상용화 정책을 반대하며 
  • 김영환
  • 승인 2022.10.10 08:2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_ 김영환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박형준 부산시장과 하윤수 부산시 교육감이 손잡고 부산에서 영어 상용화 정책을 펴기로 했단다. ‘영어 사용에 불편함이 없는 도시’를 만든다고 한다. 공문서에서도 영어를 병기하고 영어에 능통한 사람을 더 채용하고 원어민 교사를 확보하리라 한다. 시민 영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영어 마을을 더 세우고 국제학교를 유치·설립하겠다고 했다.

이런 정책은 일부 외국인을 위해 일반 시민에게 영어 공부를 강제하는 행위이다. 여러모로 2008년 이명박 인수위의 ‘영어 공용화’를 연상시킨다. 영어가 경쟁력이라는 신화에서 출발한 이데올로기다. 이런 영어 상용화의 그늘은 곧 우리말과 문화에 대한 비하감이다. 

부산시는 지난 8월 9일, 제2차 부산미래혁신회의를 열고 부산시교육청과 함께 ‘글로벌 영어상용도시 및 영어교육도시 부산’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사진=부산시

뿌리 깊은 ‘오랑캐’ 벗어나기

그 역사적 뿌리는 아주 깊다. 이른바 유교적 화이의식에서는 우리 스스로가 ‘오랑캐’로 된다. 중국 문화를 이상으로 여기면서 ‘오랑캐’ 벗어나기를 큰 과제로 여겼다. 최만리의 표현에 따르면 ‘한결같이 중화의 제도를 따라’ 이제 ‘문물제도가 중화와 거의 같아지려는 때’를 맞았다. 우리가 오랑캐를 면하려면 중국의 제도와 문물을 따라야 하며 독자적 문물을 버려야 한다고 여겼다. 

한글 창제 이후 한글의 대중적 쓰임이 점차 늘어났지만 한글에 대한 편견도 여전하였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뛰어난 인물들도 한글 활용에는 눈을 뜨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약용은 방대한 책을 지었지만 끝내 한글을 외면했다. 혁신적인 생각을 가졌다는 박제가는 우리말글에 대해서는 최만리 못지않은 무지와 편견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우리말글을 버린다고 아까울 건 없고 그런 뒤에야 ‘오랑캐’를 면할 수 있다고 했다. 

구한 말 신문과 잡지에서도 낡은 생각을 대변하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당시 국문 애호를 부르짖은 선각자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말글은 식민지 원주민의 언어로 진학과 취직에 무관하였고 ‘학문’이나 ‘교육’과 무관한 격이 낮은 나날의 언어였다. 조선 왕조 시대에도 학문이나 교육은 곧 한문 공부였다. 

이런 역사적 뿌리는 1945년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한자 폐지에 거세게 반발한 한 유학자는 “언문이란 것은 여인네들이나 가르칠 것이지 당당한 남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서 무식장이를 만들자는 말인가”라고 말했다.(『한글의 투쟁』(최현배 지음, 1954) 「교육이란 무엇인가-현상윤 님에게의 공개장」, 123쪽)

영어, 구별 짓기의 수단은 변함이 없다

정작 한글의 ‘발견’은 서양 선교사들을 기다려야 했다. 1830년대에 충청도 서해안 섬에 이른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 귀츨라프는 한글이라는 빼어난 알파벳을 예찬하면서도, 조선 사람이 가진 책은 모두 한문책이라고 전하고 있다. 

『훈민정음』에서 발견되는 한글 예찬은 한자 문화 속에서 한글의 탄생과 생존이 얼마나 어려웠나를 잘 말해 준다. 근대적 국제 질서의 들머리인 강화도 조약 무렵에도 조선은 한문 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제3관에 “앞으로 두 나라 사이에 오가는 공문에 일본은 일본어를 쓰고 조선은 한문을 쓴다”고 규정하였다.

미 군정도 1945년 9월 남한을 점령하고 포고령 제1호 제5조에서 영어가 공용어임을 선포했다. 이웃 열강의 언어들과의 관계에서 조선어는 투명한 존재가 되어 증발함을 확인한다. 이렇게 보면 한자 폐지나 우리말 사랑 운동이 배타적 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관점은 옳지 않아 보인다. 자주성의 상실, 외세 의존이란 진단이 더 옳아 보인다. 

오늘날 우리는 한자에서 벗어나기를 이룬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점점 영어 숭배가 기승을 부림에 따라 우리말의 설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부산시와 부산시 교육위원회가 영어 상용화 정책을 추진하여 기름을 끼얹고 있다. 옛날의 한문처럼 영어는 새로운 문명어, 학문과 교육의 언어이며 개인 능력의 지표로 통한다.

영어는 이런 사회에서 과시와 구별 짓기의 수단이 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정치, 경제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부산시장이 말하는 ‘영어 사용에 불편함이 없는 도시’에서 ‘영어 사용’의 주체는 외국인(아마도 미국인 자본가)일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서구 계열의 자본가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우리가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말글을 ‘오랑캐’의 상징으로 본 것과 닮았다

오랜 우리말과 글에 대한 냉대에 비추어 보면 영어 상용 정책은 어쨌거나 상당한 대중적 기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말은 토씨에나 쓰고 영어 낱말로 가득한 글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정책에 대한 반대도 뜨거운 편은 아니다. 만약 이런 흐름으로 간다면 남북이 같은 언어를 쓴다는 말이 무색해질 수도 있다. 

남녘에서는 오랜 한글-한자 논쟁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 논쟁이 생산적인 것이 못 되었고 대립과 파쟁의 깊은 골을 남겼다. 영어가 ‘상용화’되는 현실에 대해, 묵은 대립과 반목을 넘어 함께 대응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또 영문학자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단순한 영어연구자나 영문학자를 넘어 주체적 관심과 고민이 필요한 곳이다. 영문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부산의 영어 상용화 정책 당국자에겐 영어는 선진 문명의 상징이다. 조선 지식인이 한자를 문명의 상징으로 숭배하고 우리말글을 ‘오랑캐’의 한 상징으로 본 것과 닮았다. 단순한 정책 비판을 넘어 낡은 우리말글 의식에 큰 전환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김영환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글철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글철학』이, 함께 지은 책으로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사무침』이 있다. 한글학회, 한국철학회 등에서 활동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바람 2022-10-12 13:07:04
사람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을 때, 누군가를 환대할 수 있다. 가령 자갈치 아지매가 사투리를 거침없이 구사할 때, 손님을 가장 잘 대할 수 있다. 외국에서 호텔종사자가 한국어로 대화하는 경우는 드물다. 반대로, 우리는 호텔종사자에게 영어, 일본어, 심지어 중국어 구사도 요구한다. 그 언어 속에 얼마나 환대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