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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논문_한경희 氏, ‘이공계 대학특성화의 기회와 제약’
화제의 논문_한경희 氏, ‘이공계 대학특성화의 기회와 제약’
  • 신정민 기자
  • 승인 2006.04.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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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 아닌 同形化 추동”

‘안전한 경쟁’이란 말처럼 경쟁체제에 돌입한 한국 대학의 현실을 잘 지적하는 말은 없을 것 같다. 이 말은 경쟁을 경쟁답게 제대로 못한다는 질책성 정의라기보다는, 한국 대학들의 경쟁이 갖는 근본적인 불모성을 지적하고 있어 그 뜻을 음미하다보면 섬뜩하기까지 할 정도다.

최근 한국사회학회가 발간한 ‘한국사회학’ 제40집 1호에 ‘이공계 대학특성화의 기회와 제약: 획일화된 다양성’이라는 글을 발표한 한경희 연세대 공학교육혁신센터 선임연구원은  ‘안전한 경쟁’의 본질을 사회학적으로 심층분석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먼저 한 연구원은 정부가 그토록 특성화를 강조하고, 그를 위한 경쟁을 독려함에도 불구하고 대학간 경쟁이 일정하게 제약되는 아주 희한한 현상을 지적한다. 그리고 전국 모든 이공계 대학의 교육과정과 평가요소들이 동질화되는 현상을 관찰한다.

지역에 따른, 전공에 따른, 교육에 따른 대학별 수평적 특성화를 이루기보다는 대학마다 비슷한 조직과 업무, 교육과 연구의 패러다임을 갖는 동형화의 곡선을 그리면서, 새로운 수직적 위계로 재편성되는 형국을 띤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연구원은 “동질성을 선호하는 환경의 선택”으로 간단히 치부할 일이 아니라면서 구조적 분석을 제안한다.

그는 먼저 ‘정당성’이라는 매우 상징적 개념을 제시한다. 대학이 자가분석과 그에 따른 경쟁모델을 개발하기보다는 정당성에서 나오는 사회적 승인을 더욱 중요시하면서 정부로부터 일정한 보상을 기대하는 낌새를 보인다는 것.

이 말을 구조화시켜보면 정부가 지난 1995년부터 대학개혁을 시작하면서 경쟁의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게임의 규칙은 항상 정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도 어느 정도 비판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정부가 2단계 BK21사업에서 높은 산학협력의 지표를 요구하고, 심지어 대학간 경쟁을 넘어 대학 내부에서도 학과간 경쟁을 하도록 유도할 정도로 게임의 규칙들을 세분화·강화하는 근본적 원인에 대한 분석은 빠져있었다.

여기에 대해 한 연구원은 정부와 대학의 독특한 의존관계를 말하고 있다. 즉, “정부에 대한 대학의 의존이 심화되어 상당한 권한이 정부에 집중되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 대학의 실패는 정부의 실패로 인식되기 때문에 정부가 지원한 대학이나 사업의 성패를 완전히 시장적 과정, 경쟁의 원리에 맡기지 못하고 오히려 다시 돌보게 되는 그런 종류의 상호의존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애초에 목적했던 효과를 내지 못함에도 사업을 중단하지 못하고 오히려 성과를 홍보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거나, 혹은 정책이 완전히 실패한 것임이 드러난 후에도 그것을 수습하기보다 그와 유사한 시스템을 도입해 실패한 시스템이 다시 살아나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바로 ‘벤처기업육성특별법’ 등에서 찾아진다고 한 연구원은 강조한다.

어쨌든 대학에 지원되는 자금의 70% 이상을 쥐고 있는 정부가 계속 게임규칙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서로 비슷한 덩치와 두뇌를 갖춘 대학들이 사업별로 그룹으로 묶여서 경쟁하게 되는 현상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제시하는 환경이 믿을만 하지 못하다는 것. “게임의 규칙을 결정하는 정부의 행위가 대학교육 및 연구에 대한 정권의 가치 지향성, 부처간 갈등과 협상 등의 정치적 의사결정과 관련되면서 불확실성을 키”우고 그에 따라 “대학으로서는 정부의 정책적 방향에 대응해 내부합의를 도출하거나 내부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치러지는 대학간 경쟁은 곧 ‘정량적 지표’를 물신화하는 구조를 불러온다는 것이 한 연구원의 계속된 주장이다. 눈에 띄는 것을 중요시하다보니 내부의 특성화와는 별 상관없이 연구가 진행되고, 연구업적에 대한 과도한 집중은 교육의 소홀을 부르고, 기업체들은 대학지원 연구과제가 나올 때마다 대학들 협약서 써주느라고 골머리를 앓게된다는 것.

게다가 대학마다 선진국을 벤치마킹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지만 “벤치마킹은 다른 한편으로는 조직의 수단과 목표간 관계가 불명확한 조직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한 연구원은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한 연구원은 현재 대학가에 떠도는 ‘아카데믹 캐피탈리즘’이 다소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대학의 연구기능을 강화하고 대학지원사업을 경쟁적 원리에 따라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실제로 아카데믹 캐피탈리즘은 “대학과 교수, 그리고 대학의 연구성과를 시장으로 통합시키는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또한 미국에서 아카데믹 캐피탈리즘이 처음 생긴 이유도 “정부의 지원축소에 따른 대학의 재원확보”라는 차원에서 이해되는데, 사실 그게 아니라 “가장 활발한 지원을 받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오히려 아카데믹 캐피탈리즘 도입이 활발한 것으로 볼 때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힘이 학문에 깊숙이 침투하여 변화를 주도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강하다.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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