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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09] 마을·길드·아나키스트 vs 성직자·군부·국가주의자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09] 마을·길드·아나키스트 vs 성직자·군부·국가주의자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2.10.0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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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부조론』

 

크로포트킨은 아나키즘의 첫째 경향으로 인민의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힘이라 봤다.

크로포트킨은 아나키즘에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근대과학과 아나키즘』이라는 1900년의 글이다. 그는 인간 사회 내부의 사상과 행동에는 두 가지 조류가 있다고 했다. 그 하나가 인민의 창조적 정신에 의해 만들어진 아나키즘이라고 하면서, 이를 민중을 지배한 소수의 권위와 구별한다.  그래서 초기의 원시인 부락, 마을 커뮤니티, 중세 자유도시공화국의 산업 길드, 그러한 도시들이 초기의 상호관계를 조정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국제법의 초기형태와 같은 수많은 제도는 입법가가 아니라 인민의 창조력에 의해 정비되었다.

반면 어느 시대나 인민에 대한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고 강화하고자 하는 마법사, 예언자, 성직자, 군대 우두머리도 있어서 인민을 지배하고 그들을 복종하게 하며 주인을 위해 노동을 강요하기 위해 서로를 지지하고 동맹을 맺었다. 

아나키즘은 첫째 경향인 인민 자신의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힘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민은 권력을 추구하는 소수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관습법 제도를 발전시키려고 했다. 현대의 과학과 기술에 근거한 마찬가지 인민의 창조력과 건설적 활동에 의해, 아나키즘은 사회의 자유로운 진화를 보장할 제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므로 아나키스트와 국가주의자는 언제나 대립했다.

크로포트킨이 발견한 그리스·로마의 아나키즘

크로포트킨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나 기독교 초기에도 아나키즘이 대두했다. “아우구스투스 지배하의 유대에서 시작된 로마법, 로마 정부, 로마 도덕(아니 부도덕)에 대항한 기독교운동에는 분명히 본질적으로 아나키적인 요소가 존재했다” 그러나 그 뒤에 유대교회와 로마제국을 모방한 교회운동으로 타락하면서 아나키적인 요소는 없어졌고, 기독교회에 로마정부 형태가 더해져서 국가권력, 노예제, 억압의 지주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종교개혁기에도 반복되었다. 

이어 크로포트킨은 17-19세기에 과학자들이 중세의 스콜라철학이나 형이상학을 완전히 포기하고 과학적 방법인 연역법과 귀납법으로 새로운 과학을 수립했고, 아나키즘은 그 속에서 나왔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칸트, 헤겔, 셸링 등의 형이상학도, 로마법학이나 교회법학이나 국가법학도, 그가 형이상학적 경제학이라고 보는 마르크스주의도 과학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한다. 자신의 사회주의를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하면서 오언 등을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비난한 마르크스를 도리어 과학적이지 않다고 본 것이다. 18세기말의 프랑스혁명이 곧 반동에 의해 좌절된 것을 본 아나키스트들은 그러한 좌절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의 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크로포트킨은 마르크스 주의도 과학적이지 않다고 봤다. 사진=위키미디어

『상호부조론』에서 그는 다윈의 적자생존 개념에도 불구하고 갈등보다는 협력이 종의 진화의 주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즉 인간에게 경쟁적 충동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을 역사의 원동력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는 갈등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창조성을 억누르고 협력을 향한 인간의 본능적 추진력을 방해하는 것으로 본 국가나 교회와 같은 부당하고 권위주의적인 제도를 파괴하려는 시도에서만 사회적으로 이득이 된다고 믿었다. 

크로포트킨은 고대, 봉건시대, 현대사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상호협력적 성향을 관찰한 결과, 모든 인간사회가 산업화된 유럽의 사회처럼 경쟁에 근거한 것은 아니며, 많은 사회가 개인과 집단 간의 협력을 표준으로 제시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는 또한 대부분의 산업화 이전과 권위주의 이전의 사회(지도층, 중앙정부,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곳)는 그가 사망했을 때 한 개인의 재산을 지역사회 내에서 균등하게 분배하거나 선물을 팔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유 재산의 축적을 적극적으로 방어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대사는 권력자가 아닌 협동적인 사회로 나간다

풍부한 예를 제시하면서 그는 사교성이 동물 세계의 모든 수준에서 지배적인 특징이고, 인간들 사이에서도 상호협조가 예외가 아니라 규칙임을 발견했다. 그는 원시 부족, 소작농 마을, 중세 코뮌에서 강제적인 관료 국가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상호협조를 계속해온 다양한 현대 단체(노동조합, 학술사회, 적십자)에 이르기까지 자발적 협력의 진화를 추적했다. 그는 현대사의 추세가 통치자, 성직자 또는 군인의 간섭 없이 사람들이 창조적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분권화되고 비정치적이며 협동적인 사회로 나아간다고 믿었다.

크로포트킨은 봉건주의와 자본주의의 경제체제의 오류로 간주하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그것들이 가난과 인위적인 희소성을 만들고 특권을 증진시킨다고 믿었다. 대신 그는 상호협조, 상호지원, 자발적 협력에 기초한 보다 분산된 경제체제를 제시했다. 그는 이런 종류의 조직에 대한 경향은 이미 진화와 인간사회 양쪽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행된 일과 상품 가격 사이에 필요한 연계가 없다고 믿으면서 가치 노동 이론을 포함한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인 비판에 동의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의 임금 노동 체제에 대한 공격은 고용주들이 그들의 노동에서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것보다 종업원들에게 가한 힘에 더 근거했다. 크로포트킨은 이 권력이 생산 자원의 개인 소유권을 국가가 보호함으로써 가능해졌다고 주장했다. 

프란시스 골튼. 사진=위키미디어
프란시스 골튼. 사진=위키미디어

당시 프란시스 골튼(Francis Galton)과 같은 사회적 다윈주의자들은 대인관계의 경쟁과 자연계 위계 이론을 제시했다. 그러나 크로포트킨은 "인간을 포함한 종의 성공을 위해 만든 다윈적 의미에서의 경쟁 대신에 협력을 진화적으로 강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 장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동물 세계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종들이 사회에 살고 있고, 그들은 함께 삶의 투쟁을 위한 최고의 무기를 발견한다는 것을 보아왔다. 물론, 그 넓은 다윈적 의미에서는 순수한 존재 수단을 위한 투쟁으로서가 아니라, 종들에게 불리한 모든 자연 조건들에 대한 투쟁으로 이해되었다. 개별적인 투쟁의 폭이 가장 좁은 한계로 축소되고[중략] 상호협조의 실천이 가장 큰 발전을 이룬 동물[중략]은 예외 없이 가장 많고 가장 번창하며 더욱 발전하기 쉬운 종이다. 이 경우 얻어지는 상호 보호, 노령화와 축적된 경험의 가능성, 높은 지적 발달, 그리고 사회적 습관의 추가 성장, 종의 유지, 그 연장, 그리고 더욱 진보적인 진화를 확보한다. 그와는 반대로 비사교적인 종은 썩게 마련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없다

 

크로포트킨은 삶에서 상호협력을 필수적인 것이라 주장했다. 사진=위키미디어

크로포트킨의 미완성 유작인 『윤리학』에서도 『상호부조론』의 주장은 계속된다. 그는 본래 두 권으로 『윤리학』을 완성할 계획이었다. 제1권은 윤리의 기원과 발달, 제2권은 도덕의 목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었다. 결국 제1권으로 끝나버렸으나, 그 한 권에도 크로포트킨의 이론가로서의 자질은 충분히 인정된다. 그러나 내용은 『상호부조론』과 중복되는 부분도 많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상호협력 과정을 철학의 학설사와 함께 논의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처럼 자연은 인간 최초의 윤리 교사로서 용인되어야 한다. 인간과 모든 사회적 동물에 내재하는 사회적 본능, 그것이 모든 윤리 관념의 기원이고, 또한 윤리적 발전의 기원이다”라고 했다. 

크로포트킨에 의하면 자연의 상호협력은 상태(常態)이고 그것이 우리를 포함한 자연의 윤리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도, 식물도 그렇다고 하면서 이는 본능이고 욕구이기도 하다고 하면서 그는 삶에서 상호협력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윤리라는 것이 있다면 거기에는 상호협력이 언제나 있다. 따라서 크로포트킨은 홉스를 비판하면서 그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자연 상태는 있을 수 없다고 부정한다. 나아가 프루동이 윤리나 도덕은 법률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이라고 한 점도 비판한다. 즉 크로포트킨에게 윤리란 욕구이고, 자연의 삶 그 자체이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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