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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접경을 걷다
중세 접경을 걷다
  • 최승우
  • 승인 2022.09.30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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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구 지음 | 산처럼 | 240쪽

접경에서 만들어진 활기차고 역동적인 중세 이야기

접경은 역사가 피어나는 공간이었다. 이질적인 것들이 부딪치고 맞물리면서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고 지금까지는 없었던 삶과 문화가 솟아났다가 사라지며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는 공간이었다.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상충적인 가치들이 뒤섞이는 관용의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접경의 역사는 전승 과정에서 거짓과 오해의 그을음이 덧입혀져 조작되고 왜곡되었다. 역사적으로 접경지대의 사람들은 경계를 넘나들며 연대를 구축하고 지역 간 협력 공간을 확충했으며, 혼종화된 지역 정체성을 발판으로 위기 상황에 대처했다. 경계는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낙후된 주변부가 아니라 새로운 중심이 되는 해방의 공간, 창조의 공간, 생명의 공간이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지성 움베르토 에코가 2000년대 초반 어느 기자로부터 서양 예술사의 등장인물 중에서 식사를 같이하고 싶은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 즉석에서 추천했다는 우타! 이 책에서는 중세에 접경지대를 넘나들었던 우타를 비롯해 레글린디스, 테오파노, 기젤라, 힐데군트 등의 여성들과, 나움부르크 장인,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십자군 원정대, 엘시드 등 근대의 시각에서 볼 때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의 인물이라고 여겨지는 존재들과, 서고트족의 알라리크 1세, 프랑크족의 클로비스 1세, 헝가리를 세운 마자르족의 이슈트반 1세, 키예프 루스 공국의 대공비 올가 그리고 칸트에 이르기까지 접경지대에서 활약했던 인물들을 통해 중세가 얼마나 드라마틱한 시대였는지를 보여주며, 근대 민족주의 시각으로는 포착하지 못하는 모험과 도전으로 가득한 생생한 중세 이야기를 펼쳐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삶과 문화가 만나고 충돌하여 새로운 정체성이 꽃핀, 우리가 미처 주목하지 못했고, 미처 알지 못했던 중세 접경지대의 흥미로운 역사 여행을 한껏 즐길 수 있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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