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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다시 묻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다시 묻다
  • 김소영
  • 승인 2022.10.03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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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유학 시절 읽고 충격을 받은 논문이 있다. 맨서 올슨(Mancur Olson)이라는 학자가 1993년 미국정치학회보에 실은 「독재,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논문이다. 올슨은 대규모 집단일수록 무임승차가 심해서 오히려 집단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집단행동의 딜레마’로 유명한 경제학자이자 정치학자이다.

아울러 미국정치학회보는 한 편만 실어도 아이비리그 대학 조교수로 갈 수 있다고 하는 최고 권위의 저널이다. 수없이 많은 논문을 읽었지만 이 논문의 서두만큼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건 없었다.

사실 서두가 무슨 이론이나 개념이 아니라 올슨이 학생 시절 이태리 남부를 방문했을 때 에피소드다. 알다시피 이태리에서 가장 낙후한 남부 지역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곳이다. 그곳에서 올슨이 우연히 만나게 된 농민이 군주제가 최상의 정치체제라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댔다.

군주는 그 나라가 자기 것이기 때문에 집 주인이 자기 집 관리하듯 나라를 잘 살핀다는 것이다. 창문이 부서지거나 배관에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집 주인은 그걸 고칠 것이다. 군주 역시 자기 나라에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발 벗고 나서 고칠 것이다. 

군사정권 하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1987년 민주화 항쟁 직후 대학에 들어간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럼 이렇게 애써 쟁취한 민주주의란 무엇이란 말인가? 

최근 엘리자베스 2세 장례식을 접하면서 그때 기억이 되살아났다. 군주제 폐지 논쟁이 있지만 엘리자베스 2세 서거에 영국인들이 보여준 태도는 이태리 남부 농민의 확신을 반증하는 듯했다. 70년을 재위하면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어쩌면 단순한 의무감이 아니라 정말 영국이라는 나라의 주인으로 나랏일을 집안일처럼 걱정하지 않았을까.

요즘처럼 정치가 극단적 진영 대립으로 디지털화된, 즉 내 편이면 전부(1), 다른 편이면 아무 것도 아닌(0) 세상에서 모두가 무언가를 같이 논의하고 결정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최근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윤비 교수가 소개한 플라톤의 대화 『프로타고라스』편에서 반전의 단초를 발견했다. 이 대화편에는 정치공동체의 탄생에 대한 그리스 신화가 나온다. 프로메테우스가 신들만이 다루었던 불을 훔쳐 인간에게 넘겨줬지만 인간들은 여전히 서로 싸우고 죽였다. 그 이유는 인간이 불을 얻었지만 정치공동체를 이루는 능력, 즉 정치적 기예(techne politike)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제우스는 불을 훔친 댓가로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산에 묶어 매일 독수리한테 간을 물어뜯기게 했지만, 인간들이 상생할 수 있도록 정의(dike)와 상호존중(aidos)을 내려주기로 한다. 이 선물을 전달하게 된 헤르메스는 제우스한테 똑똑한 한 사람에게 나눠줄지 아니면 전부에게 골고루 나눠줄지 묻는다. 제우스의 답은 후자였다. 즉, 정의와 상호존중은 모두가 나눠 가질 때에만 정치공동체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군주제보다 우월한 것은 단순히 한 명이 아니라 다수가 결정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서로 나라의 주인, 즉 모두가 나라를 자기 집처럼 아끼고 챙기는 군주라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같이 구속력이 있는 결정을 내리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작금의 우리 민주주의는 군주제보다 나은가?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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