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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俗'의 문제 아닌 '불공정 경쟁'의 유산
'習俗'의 문제 아닌 '불공정 경쟁'의 유산
  • 이주희 이화여대
  • 승인 2006.04.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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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송호근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160쪽, 2006)

불평등에 대한 감도(感度)는 사람마다, 사회마다 다를 수 있다.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에서 저자가 주는 -보다 정확하게는 평자가 받은- 가장 강한 메시지이다.

그 이유는 바로 저자가 한국인의 평등지향적 심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거론한 사례들에서 평자는 불평등지향적 심성의 반향만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대 아파트와 호화스러운 대형 민간 아파트가 같은 단지 내에 건축되는 것도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공공임대주택비중이 겨우 3% 남짓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20%가 넘는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의 경우 중산층이 이들 임대주택에 섞여 거주하는 것은 이미 너무나 당연시되고 있다. “판자촌 내지 슬럼 지역을 방치하고 있는 한국의 도시는 없다. 그랬다가는 특히 빈자에게 너그러운 평등 지향적 심성의 맹렬한 공격을 받는다.” 판자촌 철거는 재개발사업을 위해 철거민의 주거권을 침해하며 상당히 무자비하게 진행되지 않았던가? “택시기사도 손님의 짐을 집 문 앞까지 날라주는 것이 관례이다. 한국의 택시기사에게 짐 들어줄 것을 요구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외국의 짐 날라주는 택시기사는 팁을 받는다.

물론 저자가 복지국가발전의 지체, 비리와 부패로 이룬 부의 축적 등 한국인의 평등주의적 심성을 악화시킨 요인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심지어는 “평등지향적 심성은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복지제도의 발전이 미약해서 오랫동안 형성되어온 평등주의적 심성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는, 지금까지의 주장과는 약간 상반된 논지를 전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의 독자라면 저자의 간략하고 유려한 문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설득력에 압도되어 이렇게 전도된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

한국인의 평등주의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비판적인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평등주의가 높은 성취동기와 경쟁의식을 통해 빠른 경제발전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제고시킨 점을 높이 평가한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이러한 평등주의는 마이클 왈쩌(Michael Walzer)의 다원적 평등이론을 통해 좀 더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 즉, 하나의 가치 체제에서의 불평등을 최소화하며, 각각의 가치 체계들의 불평등이 다른 영역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으면 되는 것이다.

부의 소유가 권력의 소유를 결정해서는 안 되는 복합적 다원주의의 세계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저자가 사회적 합의와 협약 정치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상의 천착을 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나의 가치가 다른 가치로 전환되지 않기 위해서는 각각의 가치의 영역에 모두 순응하는 일관된 제도의 기획과 사회적 실천이 요구된다. 그러나 사회적 제도와 실천은 다양한 가치를 가지고 갈등하는 개인과 집단의 긴 상호작용의 결과 만들어지는 예측 불가능한 역사적 구성물이다. 왈쩌는 중첩적 지배를 방지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왈쩌의 논의에 내재한 문제점을 지적함에 앞서, 저자의 평등주의가 과연 한국을 대표하는 심성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피력한 평등주의가 가장 만연한 집단은 상층계급이다. 강남 아파트값의 상승에 가장 분개하는 사람들은 강남 이외의 지역에 사는 중산층이지, 비닐하우스촌이나 반 지하 전세방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한국의 상층부에는 일종의 ‘의사(pseudo-) 사회주의’가 존재한다. 공정하고 치열한 자본주의적 경쟁을 통해 효율성과 생산성이 가장 많이 제고될 수 있는 영역에서는 만연한 연고주의와 기득권에 의해 일자리도, 부도, 권력도 나누어진다. 혹은 적어도 순환된다. 학벌에 의해, 그리고 출신과 같은 귀속적 요인으로 이러한 네트워크에서 간발의 차이로 배제된 육두품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리란 점은 쉽게 이해가 가는 사실이다. 한편, 보다 관대한 분배와 복지의 안전망이 필요한 사회의 하층에는 자본주의적 효율성 제고와는 무관한 생존만을 위한 격심한(cutthroat) 경쟁만이 존재할 뿐이다.

사회의 상층부에서 나타나는 견제의식과 질시가 하층부의 보다 평등한 분배에 대한 욕구와 분석적으로 분리되지 못한 오류가 시정된 이후, 분배와 효율성이 균형을 이루는 사회제도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를 보다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주희 / 이화여대·사회학

필자는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미시조합주의적 계급타협과 민주주의의 안정성: 한국사례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21세기 한국노동운동의 현실과 전망’, ‘단체교섭 구조의 국제비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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