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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터뷰] [조선후기 궁중화원연구] 펴낸 강관식 한성대 교수
[저자인터뷰] [조선후기 궁중화원연구] 펴낸 강관식 한성대 교수
  • 김재환 기자
  • 승인 2001.07.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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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24 15:46:25

강관식 한성대 교수가 펴낸 ‘조선후기 궁중화원연구’는 1천2백50쪽에 육박하는 방대한 저작이다. 이 책은 규장각의 근무일지인 ‘內閣日曆’에 기록된 ‘祿取才’자료를 바탕을 하고 있다. 녹취재란 녹봉을 추가로 지급하기 위해 화원·기술관료들에게 치렀던 시험. 현대적으로 풀이하자면 정부주관의 승진 실기시험이다. 여기에는 정조이후 고종대까지 약 1백여년 동안의 시험문제와 성적이 기록돼 있다.


출제된 문제는 주자학의 경전에서부터 중국의 고사, 당대의 풍속 등 다양하다. 강 교수는 출제된 문제의 원전을 찾아 서울대 규장각의 방대한 고문헌들을 뒤졌다. 그러기를 7년, 이제야 비로소 손을 털게 됐다. 이 시험문제들이 바로 조선후기를 주도했던 궁중화원 출신 화가들, 김홍도, 신윤복, 신안평, 김득신, 이인문 등이 그린 그림의 주제이다. 이 책은 당대의 회화사를 정치와 경제, 문화, 풍속과의 연관속에서 회화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왕이 출제한 문제와 문신이 출제한 문제가 다릅니다. 예컨대 정조는 ‘漕船點檢’(조선점검:조운 선박의 점검) ‘稻田午’(도전오엽:논밭의 새참) 같은 문제를 내고 문신들은 중국역사나 경전에서 출제합니다. 통계를 내보니 정조는 산수화, 인물화 등 8개 畵門 중에서 풍속화를 가장 많이 출제했더군요. 백성의 현실을 알고자 했던 정조의 인식이 잘 나타납니다. 세도정치로 국정이 문란했을 때는 백성의 현실과 무관한 ‘含哺鼓腹’(함포고복) 같은 문제가 출제되죠. 그런 시대에는 백성의 현실을 호도하는 그림이 나옵니다.”‘皆以看卽者畵之’(개이관지갹갹자화지 : 모두가 보자마자 껄걸 웃을만한 그림을 그려라)라는 정조의 畵題를 보고 강 교수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러한 녹취재 자료의 내용은 조선후기 회화사를 다시 써야할 만한 폭발력을 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의 풍속화는 국왕에 의해 촉발됐다는 것, 따라서 근대적 시민의식의 성장으로 조선후기 예술을 말하는 것은 편향된 해석이라는 결론을 얻었던 것이다. 단원의 해학적인 풍속도도, 신윤복의 흐드러진 감성도 자비령대화원의 화풍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었을까.


“19세기 풍속화가들의 역량은 어느 시기의 화가보다 뛰어납니다. 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 심사정, 능호관 이인상 등 조선 전기가 문인화가의 시기였다면, 후기에는 정조가 키워낸 화가들이 화단을 주도합니다. 중인출신인 이들은 기본적으로 국가에 종속된 도구적 지식인들입니다. 이들에 의한 풍속화에 서민의식, 시민적 자의식이 표현돼 있다고 보는 것은 부분적 해석에 불과합니다.”이 책을 집필하면서 그는 그에게 오랫동안 역사적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게 했던 서구 중심의 근대사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통설이 되다시피했던 자본주의 맹아론, 내재적 발전론이라는 역사학계의 시각은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깨달음에 이른 것. 조선의 역사는 서구적 잣대로 재단하기에는 “훨씬 복합적”이라는 것이다. 진경산수화나 풍속화를 성리학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실학의식의 대두에 따른 결과로 해석하는 것은 단견이다. 조선후기의 ‘민화’조차도 민중의 소박한 의식이 담겨진 ‘민중의 그림’인 것이 아니라, 왕실과 상류층의 감상품이 민간으로 내려온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조선후기의 회화사는 대단히 복합적으로 왜곡돼 있습니다. 우리는 중심을 주변화시키고, 주변을 중심화시켜 중심을 두 번 잃었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바라볼 때 늘 상처를 안고 있었습니다. 자갈밭이라도 좋으니 내 밭 하나를 가져보겠다는 생각으로 이 지겨운 1천2백42책과 참고문헌을 다 뒤졌습니다.” 간송 미술관의 연구위원이기도 한 그는 그곳의 최완수 연구실장에게 조선후기 회화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얻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그를 사료더미속에서 헤매게 했던 이 책을 끝낸 지금, 그는 자신의 “영원한 화두인 추사 김정희”에 관한 또 다른 연구서를 준비하고 있다.
김재환 기자 weibli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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