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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의 不在 … 상업주의 오염 우려
한국성의 不在 … 상업주의 오염 우려
  • 김문덕 건국대 교수
  • 승인 2006.04.03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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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인 마을'

헤이리 예술인 마을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헤이리 예술인 마을’은 새로운 ‘문화예술공동체’를 지향하며 의미있는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건축박물관이나 건축전시장으로 불릴만큼 유명 건축가의 다채로운 건축물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곳 헤이리의 건축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서구적 지역성을 이식하는 시행착오를 또 한번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진지한 비평이 제기됐다. / 편집자주

헤이리 ! 헤이리 아트밸리 혹은 헤이리 예술마을로 알려진 장소는 이제는 더 이상 경기도 파주의 한 지역이 아니다. 이제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헤이리나 파주출판단지는 건축이나 실내디자인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은 가보아야 할 건축적 명소로서 베를린의 IBA 건축전 집합주택단지나 일본의 후쿠오카의 넥서스 월드, 구마모토 아트폴리스와도 비견할 수 있는 장소로 부각되고 있다.

헤이리나 파주출판단지를 소개하는 글에 최고의 건축가들의 작품이 모인 건축전시장이란 말처럼 분명 헤이리에는 디자인적으로 자극받을만한 그 무엇이 있다. 헤이리는 최근 인접하여 고전풍의 영어마을이 들어서면서 자연친화-헤이리, 휘황찬란-영어마을이라는 말처럼 건축적인 순도가 상업성에 의해 훼손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건축적인 시도와 실험이 헤이리나 파주출판단지만큼 많은 곳을 국내에서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헤이리 아트밸리와 영어마을 전경. 서구의 고전주의와 모더니즘이 공존하는 풍경이다 © 김문덕 건국대 교수

필자 역시 이 글을 쓰기 위해서 헤이리와 파주출판단지를 방문하였으며, 올해도 이 장소들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헤이리는 영국의 유명한 헌책방 마을인 헤이온와이를 모델로 하여 만든 책 마을로서 이제는 문화마을 내지는 예술마을로 변모하고 있다.

항상 헤이리에 오기 전에 형제마을이기도 한 파주출판단지를 들를 때면 출판단지의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모퉁이에 자리 잡은 한옥을 보게 된다. 왜 저곳에 한옥이 있을까. 한옥은 의연하지만 정보센터의 거대한 매스에 짓눌린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 모습은 헤이리와도 오버랩이 된다. 지역성과 장소성을 살린 지역이라고는 하나 그 모태가 영국의 한 지역이어서 그런지 전체적인 단지의 건축물들은 서구적인 모더니즘에 경도되어 있다.

▲열린책들 사옥의 필로티에서 바라본 아시아출판정보센터와 한옥 ©

분명 건축물의 곳곳에 르 꼬르뷔제나 미스, 혹은 안도 타다오 내지는 렘 콜하스에 이르는 서구건축의 흔적과 자취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으나 출판단지의 구석에 외로이 서 있는 한옥처럼 한국성의 자취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모방의 대명사격인 나라로 언급하고 있는 일본의 구마모토 아트폴리스에서는 이시이 카즈히로의 세이와 분락쿠 인형극장이나 안도 타다오의 구마모토 고분장식관에서 일본적인 공간과 형태의 기억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지역성을 읽고 해석하는 방법도 케네스 프램톤의 비판적 지역주의처럼 모더니즘과 지역성을 결합시키는 것이 있기는 하나 외국인들이 처음 헤이리에 온다면 서구의 예술마을과 어떻게 차별화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북하우스 전경. ©

▲북하우스의 실내공간은 공간적으로는 훌륭하나 지역성에 대한 성찰은 국지적이다. ©

물론 단순히 모더니즘에 경도되었던 건축가들이 기획한 예술마을 정도로만 치부한다면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헤이리에 있는 건축물만이 지역성을 살린 진정한 건축물처럼 전공자들에게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물론 헤이리에 있는 북하우스나 모아갤러리, 커뮤니티하우스 등의 공간은 공간 자체로만 본다면, 학생들에게는 하나의 공간적 텍스트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커뮤니티하우스의 안내판에서 보여지는 로지에의 원초적 오두막처럼, 그것이 지향하는 목표점은 서구적인 관점에서 지역성의 해석임을 보여주고 있다.

▲커뮤니티 하우수의 안내판은 로지에의 원초적 오두막의 사진으로 헤이리의 지향하는 목표가 서구적인 지역성의 해석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즉, 헤이리는 한국이라는 지역에 위치하였다는 장소성 내지는 경사지 패치, 플레이트만으로는 너무 국지적인 해석이라는 아쉬움이 있으며, 중요한 그 무엇의 정신이 결여된 단지라는 생각이다. 즉, 지역성을 반영한다고 하면서도 서구적 지역성을 이식하는 시행착오를 또 밟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며 그것이 우리 한국 건축계가 넘어야 할 산처럼 생각된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일본관 커미셔너는 후지모리 테루노브이다. 그는 일본의 유명한 건축평론가이면서 실제적으로 일본적인 건축을 전개, 홍보하는 전도사로서 필립 존슨의 글래스하우스(Glass House)를 빗대어 풀로 뒤덮인 자택 그래스하우스(Grass House)를 설계하여 서구건축에 대한 비판을 한 장본인이다. 후지모리가 커미셔너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나마 일본은 모더니즘과 일본의 전통적인 흐름을 연계하려는 건축의 사이에서 균형감을 취하고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필자가 이야기하는 한국성이 헤이리의 대부분 건축물에서는 부재중이라고 생각한다. 헤이리! 오늘도 우리 모두가 주시하고 무언가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헤이리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성을 치열하게 추구하는 모습도 필요하다. 그런 것이 없다보니 헤이리는 인접한 뒷산의 영어마을처럼 상업성이 지배하는 카페촌으로 변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다시 한번 헤이리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김문덕 / 건국대·실내디자인학과
필자는 홍익대에서 ‘한일현대건축의 표현경향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렘 콜하스와 네덜란드 근현대 건축’, ‘공간속의 디자인, 디자인 속의 공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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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표 2006-04-04 06:06:02
그러나 이정도의 이국적 건축 실험 작업도 있어야한다.

다만 앞으로 또 다른 "마을"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은 보다 창의적인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