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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의 빈곤…"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자료의 빈곤…"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 이상철 성공회대
  • 승인 2006.04.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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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 『박정희와 한강의 기적』(이완범 지음, 선인, 243쪽, 2006)

과거 박정희정부에서 시행되었던 대외지향적 성장정책의 공과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한 원인(遠因)이라는 주장에서부터 경제발전을 통해 이후의 민주발전에 간접적으로 이바지하였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은 넓다.


이처럼 상반된 평가가 세간에 난무하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첫째는 이 시기의 경제정책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고 둘째는 이 시기가 현재와 너무도 가까운 과거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이루어진 한국현대사 연구가 새로운 자료의 발굴을 통해 그 연구의 폭과 깊이를 더해가고 있지만, 박정희정부 시기의 경제정책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1차자료, 특히 정부측에서 생산한 자료에 대한 연구자의 접근은 여전히 제약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 시기 경제정책을 둘러싼 상반된 주장들은 넘쳐나지만, 이러한 주장들의 시시비비를 가려줄 수 있는 객관적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이다.


나아가 이러한 논쟁의 직접적 대상이 되는 당시의 정책결정자들 상당수가 엄연히 두 눈을 부릅뜨고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박정희의 딸이 제1야당의 당수로서 현실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이유로 인해 이 시기는 여전히 역사적 연구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도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는 과거이다. 그 결과 이 시기에 대한 평가 역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논자마다 많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처럼 상이한 각각의 주장 및 평가 곳곳에 현실정치의 논리가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이완범 교수의 저서 ‘박정희와 한강의 기적 - 1차5개년계획과 무역입국’은 박정희정부 초기시기를 대상으로 하여 경제정책의 결정과정을 살펴보는 본격적인 학술연구서라는 점에서 향후 다양한 관점에 입각한 관련 후속연구를 촉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본서의 주된 테마는 ‘박정희 시대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 입안과정’과 ‘입안과정에 미친 미국의 역할’(28쪽)이다. 저자는 이러한 연구테마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쟁점을 부각시키고, 이를 해명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1950년대의 수입대체산업화에서 1960년대의 수출지향적 산업화로의 정책적 변동이 언제 이루어졌으며 그 변동은 얼마나 급격하였던가? 나아가 박정희·기업가·미국이라는 당시 정책 결정과정에서의 필수적 인자들 중 어떤 인자가 주도적이었는가? 그리고 이러한 정책 변화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특히 저자는 ‘사료의 분석을 통한 실증적 고증’이 주요 방법인 역사적 접근법(30쪽)을 연구방법으로 채용했다고 한다.


저자는 본문을 주로 사건의 전개 순서에 따라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 이전의 경제개발계획(2장),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작성배경(3장), 박정희의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 입안과 추진(4장), 1차계획을 둘러싼 한·미 갈등과 수정안 마련(5장), 수출드라이브 추진(6장)으로 배열해 놓고 있지만, 앞서의 쟁점과 관련한 저자 자신의 답변이 적극적으로 개진되고 있는 곳은 주로 5장과 6장이다.


저자의 결론은 1964년 2월에 발표되었던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 수정안이 작성되는 과정에서 대외지향적 성격이 많이 포함되고 1964~65년 기간동안에 이루어진 환율개혁 및 수출지원정책확충에 힘입어 수출지향산업화로의 정책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정책의 변화가 미국의 압력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 도달한 정책을 한국이 내어놓고 미국이 이를 수용하는 식의 한·미간의 적당한 양해와 타협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나아가 기존계획과 구조에 편승했던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 시작 시점과 달리 이 시기에 이르면 박정희 리더쉽이 주요한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사실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수정, 그리고 1964-65년의 환율개혁 및 수출지원정책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저자 역시 기미야 교수 등 기존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흡수한 위에 몇 가지 새로운 자료를 추가함으로써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수정과정에 관해 보다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저자 자신이 주요한 연구테마로 설정한 ‘입안과정에 미친 미국의 역할’이라는 항목에 들어가게 되면, 저자의 주장이 ‘역사적 접근법’에 의해 충분히 뒷받침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 초안에 대한 미국측의 전반적인 인식에 관해서는 상세히 서술하고 있지만,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 수정안 마련과정에서 미국측이 수행한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어떠한 새로운 자료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수출지원정책에 관한 서술 부분에서도 이와 유사한 대목이 발견된다. 본문에서는 1964-65년도 수출지원정책에 관한 김광석 교수 등 기존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연구는 어디까지나 국내에서 수출지원정책이 어떻게 확충되었는가 하는 것에 관한 것이지, ‘입안과정에 미친 미국의 역할’을 직접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저자가 서론에서 본서의 핵심 테마로 제시하고 있는 ‘제1차경제개발계획 입안과정에 미친 미국의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직접적 자료는 본문 내에서 적절히 제시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본서가 제기하고 있는 ‘1960년대의 정책적 변동에 있어서 박정희·기업가·미국이라는 당시 정책 결정과정에서의 필수적 인자들 중 어떤 인자가 주도적’이었는가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료의 분석을 통한 실증적 고증’에 입각한 충분한 근거는 여전히 확보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수행한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없다면, 비록 나머지 인자들의 정확한 크기를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상대적으로 비교·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부터 저자의 주장은 비약하기 시작한다. 수출지원정책 확충과정에서 미국의 직접적 압력이 없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당시 한국정부의 비교적 독자적 결정에 의해 수출지원정책의 확충과 정책전환이 이루어졌다는 결론으로 연결되고, 이는 다시 수출지원정책이 확충되기 시작하는 시기부터 박정희 리더쉽이 주요한 요소로 작용했다는 최종 결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군사쿠데타 이후 1966년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 종료시점까지를 연구의 주된 대상 시기로 설정하고 있으며, 대외지향적 방향으로의 정책전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회담 및 외자도입 문제는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으므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역사상(歷史像)만으로는 이 시기 박정희정부 경제정책이 갖는 전체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원안이 수정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당초 의도했던 방식으로의 재원조달이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므로, 이 문제 역시 본문의 내용 속에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후속작업을 통해 보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테마는 매우 자극적이다. 따라서 향후 추가적인 자료의 발굴을 통해 이 분야의 연구는 더욱 더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서의 곳곳에서 언뜻언뜻 발견되는 비약 속에 충전(充塡)되어 있는 현실정치의 논리에 대한 염려는 평자의 기우(杞憂)에 불과한 것인가?

이상철 / 성공회대·경제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한국화학섬유산업의 전개과정(1961-1979)- 산업정책의 일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 ‘새로운 한국경제발전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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