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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표절과 창작의 한계점에서
논단: 표절과 창작의 한계점에서
  • 김기현 세종대
  • 승인 2006.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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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적 표절 적용, 창작까지 도매금으로

한 과학자의 연구에 대한 성취와 성공이 온갖 뉴스 미디어의 1면을 장식하고,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제공하는 알찬 소재로 기능하였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그러한 소재의 주 컨텐츠가 상당 부분 조작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온갖 불신, 증오, 갈등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파생하였다.  또한 이러한 여파로 인해, 그 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든 대부분의 과학적 업적이나 행위들에 대해 여러 가지 각도에서 성찰과 검정이라는 칼날을 들이대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결과적으로 황박사의 논문조작 사건은 단순히 하나의 가십성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차원 또는 그 것을 벗어나 세계적 차원에서까지 과학계의 숨고르기를 유도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러한 사건의 여파로 과학계의 여러 가지 관행이나 학술활동에 대한 이면적 영역에 대해서도 마치 TV 드라마에서 자주 접하는 여러 가지 진실게임류와 같은 검정을 위한 시도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논문조작의 다음 순으로 표절관행 또는 공동저자의 자격 유무 등의 주제를 주요 뉴스매체들이 앞다투어 중요한 화두로 다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탄하는 표절은 타인이 발표한 논문을 그대로 또는 일부를 도용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에 대한 실질적인 사례는 대단히 다양하다. 중앙일보의 특집기사(3월14일)를 통해 표절사례로 제기된 사례의 유형들을 보면, 대략 10여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그 중 일부 사례를 예로 들어 보면, △외국서적 (또는 논문)을 번역해서 개인서적 (또는 논문)인양 출판, △동일한 논문을 중복게재, △타인의 석, 박사논문을 표절해 학위를 취득, △타인의 박사논문을 요약해 학술지에 게재, △표절 혐의가 있는 제자 논문에 공저자로 참가, △제자의 석사논문을 표절해 발표, △국내논문 여러 편을 짜깁기 해 석사학위 논문 작성, △학술지 논문 등을 표절해 책출판, △국내 저서 일부를 표절해 학술지에 게재 등등 그 유형은 대단히 다양하다. 막상 이와 같이 표절의 유형으로 제시한 사례들의 상당한 부분은 듣기에도 민망한 지적정보의 도용과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는 표절문제를 공격하는 양상을 보면, 실질적으로 창작으로 보아야 할 활동들까지 표절로 간주하거나 또는 그와 유사한 것으로 매도하려는 가능성이 상존하는 듯하여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타인이 창출한 지적재산을 거리낌없이 도용하는 것과 같이 객관적으로 표절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 기준이 뚜렷한 영역도 상당 부분 존재하지만, 반대로 단순히 유사함의 여부만으로 표절이라 속단하기에 애매한 부분들도 무수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보호받아야 할 영역과 비판받아야 할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한 노력도 상당 부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창작으로 인정받아야 할 부분조차 무분별하게 비판하거나 책임을 묻는 것과 같은 비능률적인 상황의 발생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준비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실제 이러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과학의 발전을 건전하게 유도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표절에 대해 가장 엄격한 잣대를 제시하는 구미지역의 학계에서도 이처럼 회색영역에 가까운 듯 하지만, 실제로 표절이라기 보다 연구의 영역으로 인정하는 학술행위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예를 들어, 대규모의 학술대회에 초록의 형식으로 연구결과를 선발표하므로서 학회초록이라는 가벼운 연구실적물을 생산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이를 다시 더 확장하여, 정식논문의 형태로 학술지에 게재하므로서 보다 가치있는 연구실적물을 생산하도록 권장한다. 또는 학술지에 발표한 여러 편의 논문을 모아서, 석사 또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발표하는 경우도 있다. 비록 동일한 소재를 다루어서 복수의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지만, 이러한 행위는 표절이 아닌 가장 일반적인 학술활동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본인이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을 모아서 다시 책의 형태로 간행하는 학술활동 또는 학술지에 발표한 자료들 (표나 그림) 또는 일부 내용들을 모아서 총설의 형태로 전환하여 논문이나 책으로 발간하는 행위들도 포괄적인 연구활동으로 인정해 주는 편이다. 물론 이처럼 중복성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정상적 연구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대부분은 타인의 지적재산을 허락도 받지 않고, 그대로 도용하는 사례들과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구미에서 정상적으로 인정하는 사례의 다수는 대개가 저자 본인이 연구한 내용을 인용의 주토대로 활용하여, 소규모의 연구결과를 대규모로 집대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실제로 타인의 정보를 활용할 때에도 명확하게 그 소재를 밝혀 주거나, 또는 활용하고자 하는 사람의 시각에서 타 연구자의 정보를 충분히 소화한 상태로 제시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국내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근무하는 이공학 계열의 과학기술자들도 가끔씩 이와 같이 창작과 표절의 영역에서 혼란스런 영역에 접하는 경험을 하곤 한다. 우리의 모국어가 비영어권의 언어이기 때문에, 국어 외에도 영어와 같은 국제어로 학술발표를 해야하는 원초적인 상황에 그런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상존한다고 볼 수 있다. 연구능력을 검정 받은 다수의 과기인들은 영문논문의 형태로 국제적 규모의 학회지에 발표함으로써, 세계를 상대로 본인의 존재를 각인하는 노력을 지속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국내학회를 상대로 하는 활동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에 해당한다. 따라서 실제 국내 및 국외 학계에서 동시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다수의 과학기술자들은 자기복제 또는 자가표절과 같은 문제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롭기 어려운 상황에 종종 빠져들기가 쉽다. 보다 구체적으로, 국내학술지를 대상으로 여러 논문들을 발표하고, 이런 논문 중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이 뛰어난 연구결과들은 다시 영문의 형태로 국제적인 학술지를 통해 발표하는 사례들이 있다. 물론 이와는 반대로 외국에서 호평받은 본인의 연구를 국내학계에 소개할 경우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모든 과학자들의 연구업적들을 인터넷을 통해 쉽게 검색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그런 유형의 사례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러한 연구결과물들의 내용을 보면, 사람에 따라 또는 발표한 형식이나 내용에 따라 유사성의 정도나 수준의 차이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례들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해서도 보기에 따라 아주 상반된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아주 단순한 시각에서 보면, 비록 타인의 지적 재산을 도용하지 않고 본인의 자료를 중복활용하였지만, 동일한 연구성과를 언어만 바꿔 복수의 연구실적으로 변환하였다는 식으로 비난을 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단순히 그렇게 일차원적으로 해석하여서는 곤란한 이유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국내학술지와 국제학술지는 엄연히 국어와 영어라는 언어의 차이에 의해 독자층의 분리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국내의 독자만을 대상으로 연구활동을 하는 것과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동일한 주제의 학술적인 내용을 국내외에 동시에 발표하는 활동을 표절의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면, 모든 연구자들은 앞으로 택일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면 국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할 기량을 갖춘 대다수의 우수한 과학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오해나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는 국내학술지는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오해를 받거나 논란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별달리 가치를 인정받기도 어려운 국내학술지는 쉽게 포기하는 방향으로 결정할 것이다. 그 대신 가치를 인정받는 국제학술지만을 대상으로 열심히 연구하고자 할 것이다.  

실제로 꼭 이러한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이공계열의 소재를 다루는 국내학술지들이 고사할 조짐은 여러 각도에서 서서히 체감할 수 있다. 필자가 속한 환경학 계열의 학술지들도 이러한 사례를 쉽게 예시할 수 있다(물론 이러한 현상이 이공계 전체의 경향이라고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참고로 명망이 높은 국제적인 저널들은 논문투고가 넘쳐서, 빠른 속도로 발행주기를 단축하고 있다. 과거에는 매월 또는 격월 단위로 발간하든 학술지들이 이제는 일주 또는 격주 단위로 논문을 발간하고 있다. 그럼에도 게재결정이 난 논문들이 수백 편씩 게재대기 논문이란 명명 하에 인터넷 상에서 먼저 공개되고 있다(예를 들어, Elsevier출판사의 Chemosphere). 이러한 적체 현상은 학술지의 명망에 상관없이 다수의 SCI 학술지들에서 비교적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Springer출판사에서 간행하는 저널(Environmental Monitoring & Assessment)의 경우, 모든 심사과정이 완료되고 게재만 남겨둔 상태에서 1년 정도를 대기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은 단순히 대한민국의 과학자들이 유도한 현상이라고 하기 보다는 SCI 학술지에 대한 가치가 강조되는 한·중·일과 같은 국가들의 과학자들이 집중적으로 투고하는 현상의 영향을 일부 반영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지 모르겠다.  이처럼 투고 재원이 넘치는 국제학술지들은 심사자들에게 가급적 게재불가를 권장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단순히 투고하는 것만으로 게재될 가능성이 높은 국내학술지에는 심각한 투고부족을 경험하고 있다. 필자가 속한 일부 환경관련 학회에서는 3~4년 전만 해도 항상 투고논문이 넘친다던 상황에서, 이제는 투고 부족을 심각하게 토로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국내저널들은 1년에 4~6회 수준으로 발간하는 것조차 제시간에 발행하기가 어려워서 허겁지겁 간신히 시간을 맞추거나 또는 게재논문의 편수를 줄여서라도 한 호를 발간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투고율을 향상하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동원하지만, 여전히 시원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고전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의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몇 가지 전제와 방향을 제시해 보았으면 한다. 먼저 이제는 국내논문이 어줍잖게 세계화하는 방식(예를 들어, 국영문 타이틀과 영문초록을 동시에 요구하는 관행)을 완전히 거두어들이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이공계열의 국내학술지들은 철저히 국문 중심으로 출간을 하는 것을 권장하였으면 한다. 따라서 단순히 국내학계에 국문으로 발표한 논문의 소재를 또 다시 국제적인 학술지에 발표한다는 인식이 들지 않게, 국문으로 발표하는 모든 과학적 논문들은 영문을 철저히 배제하고 토속화함으로써, 최소한 형식면에서는 영문논문들과 완전하게 차별화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까 한다. 그럼으로써 국내의 학계에 이미 소개한 성공적인 연구사례들도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지에 소개하기가 용이한 기본적인 토양을 제시해 주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만약 하나의 과학적인 소재를 가지고, 영어, 불어, 중국어, 일어, 이탈리아어 식으로 (단순히 언어만 바꾸어 줌으로써) 다수의 실적으로 뻥튀기하려는 의도를 지닌 연구자가 있다면, 그러한 시도를 정상적인 과학활동이라고 간주할 여지는 전혀 없다(물론 그 대상이 인기소설 같은 것이라면, 오히려 다국적 언어로 번역하는 것을 더 권장해야 할 사항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내학술지에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것에 비해 권위있는 SCI급 국제학술지에 발표하는 것이 고통스런 과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이러한 시도는 구미학계에서 초록을 정식논문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이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 볼 필요성도 충분하게 인정해 주어야 한다. 결국 이러한 작업은 국내와 국제학계에서 동시에 인정받을 수 있는 논문을 생산하는 창의적 연구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긍정적인 동기부여를 제시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김기현 / 세종대·대기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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