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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지적 축복”…과거에 집착하는 한국학
“민족지적 축복”…과거에 집착하는 한국학
  • 강신표 인제대
  • 승인 2006.04.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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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故 이규태의 한국학

▲故 이규태 前 조선일보 논설고문 ©
   얼마 전 아프리카에서 들려오는 소식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한 사람의 노인이 돌아가실 적마다 하나의 박물관이 사라지고, 하나의 도서관이 살아진다.” 문자가 아닌 구전으로 지식과 지혜가 전수되는 아프리카의 문화전통에서는 오래토록 살아 온 한 노인은 그 사람 자체가 박물관이고 도서관이었다.

   얼마전 이 땅에서 돌아간 조선일보 이규태 기자의 비보는 아프리카에서 전해오는 소식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구전의 아프리카 노인과 달리 문자의 나라 한국인 기자 노인 이규태의 도서관은 살아지지 않았다. 이 나라의 축복이다.

   1983년 3월 1일부터 2006년 2월 23일까지 만 23년간 6천702회라는 “이규태 코너”를 이어온 이 노인의 노력은 한국 신문 역사상 하나의 역사적 기념탑을 세워 놓았다. “재야 한국학 박사”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그는 “한국” 이라는 자기조국에 관한 역사와 민속과 세상이야기를 동서고금으로 엮어 일관되게 다룬 대기자였다. 그러기에 우리가 잃은 이 대기자는 당분간 다시 어디에서도 만나보기 어렵다는 슬픔 때문에 더욱 가슴을 저미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할일이 생겼다. 그가 일생을 바쳐 작업한 노력이 무엇인가를 되돌아보는 작업이다. “이규태의 한국학”이 무엇인가를 검토해 보아야한다. 그의 글이 120권의 책으로 출판되어 나와 있다. 여기서 몇 권의 대표적인 저서만 소개해 보더라도 한때의 베스트셀러였던 것들을 기억할 것이다. 1968년 “개화백경”을 신문전면에 60회에 걸쳐 소개할 때부터 세상은 놀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1975년부터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연재하면서 한국인은 누구인가를 탐색하기시작하면서 우리들 자신을 되돌아보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1960년 4.19 학생혁명, 5.16 군사 구테타 그리고 이어진 30년간의 군사정권의 중화학공업 중심의 경제발전 지상주의는 많은 사회문화적 혼란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혼란기는 도리 없이 “우리의 오늘”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규태에게 그 출발이 어딘가가 개화백경을 살펴보아야만 했고, 당신이 살고 있는 “현장의 사회 고발”이 “한국인의 의식구조”였는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이러한 탐색과 고발은 엄청나게 이어져왔다. “600년 서울”, “한국의 인맥”, “서민 한국사” “민속한국사” “한국인의 조건” “서민의 의식구조” “선비의 의식구조” “서양인의 의식구조” “리더십의 한국학” “역사산책” “한국인의 생활구조” “한국인의 정서구조” “사랑방이야기” “뭣이 우리를 한국인이게 하는가” “의 환경학” “학국인 이래서 잘산다 이래서 못산다” “ 한국인의 음식문화” 그리고 한국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의 제목에는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첨부되어있다. 눈물, 배꼽, 배짱, 욕심, 웃음, 입술, 신바람, 아리랑, 싸움 등 등의 제목이 붙은 한국학이다.

   놀라운 작업들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이러한 이규태의 작업에 대한 한국학계의 논의가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규태의 한국학 연구”가 나올 것을 기대한다. 이미 이규태의 컬럼이 외국 대학의 한국학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그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1970년대 초의 일이다. 한국사회학회 전국학술대회에서 고영복 교수가 월간 신동아에 실린 글(“한국구조론”)을 가지고 논쟁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학술대회에서 논의할 대상의 글을 신문이나 월간 잡지에 실린 글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느냐가 큰 쟁점꺼리로 논쟁을 하다가 끝내 본론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이러한 학계의 분위기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고 보겠다. 신문 기자 “이규태의 한국학”이 학계의 논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러한 학계의 전통과 관계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규태의 한국학을 “재야 한국학”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신문에 실리고 있다. 그러나 어떤 분야는 신문에서만 논의되어야 학문으로 인정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이제 우리는 이규태의 한국학이 무엇인가를 짚고 넘어가야한다. 신문 기자로서 이규태는 거목이었다. 이 크나큰 나무는 보는 각도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리 보일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동시대인 우리가 읽는 이규태의 글은 다음 세대인 우리 후손들에게는 소중한 민족지(ethnography)적인 자료로 평가 될 것 같다. 나는 인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기에 인류학적인 현장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제공자인 인포먼트(informant)의 존재다. 이규태는 곧 이 시대를 반영하는 정보제공자이다. 무엇이 일상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생각을 식자로서 아니면 기자로서 어떻게 풀이하고 있는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인류학자는 자기의 연구 주제를 중심으로 정보제공자에게 설명을 요구한다면, 이규태는 스스로 설정한 주제에 대하여 한정된 지면에 한정된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름 하여 한국인은 누구인가이다. 

 
   이 주제에 대한 그의 민족지적인 자료는 120권의 저서가 말해주듯이 거의 백과사전식 자료 나열이다. 동서고금으로 관련 자료의 나열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역사와 민속에 대한 고증은 잊어져 가는 우리의 과거를 되살리는 작업만으로 크나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규태의 한국학은 박학다식함을 나타내는 것은 될 수 있어도 그 속에 일관하는 어떤 이론이 없다. 한국인은 누구인가를 다룬 한국인의 의식구조에는 그 책의 목차에 나타나는 제목만으로 그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열등의식, 서열의식, 상향의식, 집단의식, 은폐의식, 통찰의식, 금욕의식, 가족의식, 체면의식, 내향의식, 공공의식 등 등이다. 이는 상권에 나타나있는 제목에 한정된 것이다. 또 다른 책에서는 무슨 의식이라는 표현 대신 무슨 성향이라는 표현으로 열거되고 있다.

   어떤 한 개인이 처한 상항에서 가질 수 있는 생각을 한국인 전체의 의식구조로 너무나 크게 확대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점은 우리들 독자가 한때 그렇게 행동한 적이 있은 것을 한국인 전체의 행동성향으로 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뿐만 아니라 때로는 정반대되는 논의를 펼치기도 한다. 앞에서는 열등의식을 논하다가 뒤에 가서는 우월의식을 논하고 있다. 이는 일차적으로 신문 칼럼을 모은 글이라는 데서 비롯한다고 하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규태가 살아온 시대가 일제 식민지 잔재가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뿌리 깊게 남아있음을 반영하는 것 같다. 다시말해 한국인 스스로의 자기 비하가 은연중에 만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점은 구지 이규태 한 사람에게 한정된 자세도 아니고 이러한 종류의 글쓰기는 또 다른 필명을 날리던 사람들에게도 엿보이는 점이기도 하다.

   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의식구조 또한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문화는 지금 급속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처해있다. 한국학은 이 변화의 소용돌이를 올바로 진단해야한다. 그것은 한국사회와 문화의 내일을 위한 길잡이를 잡기위한 것이다. 이규태의 한국학은 과거에 너무 집착해 있다. 물론 과거가 없는 내일은 없다. 하지만 어떠한 과거를 문제 삼느냐하는 것은 내일을 어떻게 설정하느냐하는 근본 문제에 관련된다. 동어반복적인 논의나, 앞뒤가 모순되는 논의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외국의 사례를 단편적으로 우리와 비교한다든가, 과거의 어떤 단순한 사례를 침소봉대하는 해석은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않는다. 한국사회의 밑바닥에 관통하는 문화문법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요청되고 있다.

   이제 이규태의 한국인론은 접어야할 때가 되었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사람이 바뀌고 있다. 한국인의 정체성의 논의는 새로운 차원으로 펼쳐지게 될 것이다. 세계화 시대의 한국인은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규태의 한국학”은 이 시대의 중요한 증언으로 기록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필자는 미국 하와이대에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동아시아 문화와 이의 서구에서의 변모', '한국사회학의 반성',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과 한국학' 등이 있으며 한국문화인류학회장, 지역사회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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