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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08] "경제공황, 노동 일탈로 발생하는 것"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108] "경제공황, 노동 일탈로 발생하는 것"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2.09.2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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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의 쟁취(La conquête du pain)』
《빵의 쟁취》는 정치이론과 아나키즘 사상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책으로 크로포트킨의 대표적인 저작 중 하나이다. 사진=위키미디어
『빵의 쟁취(La conquête du pain)』는 정치이론과 아나키즘 사상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책으로 크로포트킨의 대표적인 저작 중 하나이다. 사진=위키미디어

1892년 저서 『빵의 쟁취(La conquête du pain)』는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스트 사회사상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에밀 졸라가 '진정한 시'라고 할 정도로 잘 썼다고 한 그 책은 인류의 재산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것이므로 집단적으로 향유되어야 한다는 프루동의 가정에서 출발하여 불평등과 사유재산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뒤의 사회는 자본주의적 개인주의를 대체하는 권위주의적 사회주의에 의한 속박된 국가 소유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협동의 제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본주의의 부정과 경제공황은 과잉생산 때문이 아니라 과소소비와 비생산적인 일에 노동이 일탈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보았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각 개인의 노동을 측정하는 것으로 가정하는 임금 체계를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보상 체계를 위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유 재산과 소득 불평등이 상품과 서비스의 자유로운 분배로 대체되는 아나키스트 코뮌주의 시스템을 제안했다. 

아나키스트 사회에서는 누구도 강제로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그는 노동은 "심리적 필요성, 축적된 신체 에너지를 소비하는 필요성, 건강과 삶 그 자체인 필요성이다. 많은 유용한 일들을 지금 마지못해 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과로를 의미하기 때문이거나 그들이 부적절하게 조직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임금의 원칙을 필요의 원칙으로 대체하다

『빵의 정복』에서 크로포트킨은 자발적인 협력 체제에서 이루어진 상호 교류에 기초한 경제 체제를 제안했다. 그는 필요한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을 만큼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산업적으로 발전된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사회상품에서 필요한 것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는 특혜분배나 가격, 화폐교환 같은 장애는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결국 돈과 재화와 용역의 교환권을 폐지하는 것을 지지했다. 

크로포트킨은 경제공황이 과잉생산 때문이 아니라 과소소비와 비생산적인 일에서 노동이 일탈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보았다. 사진=위키미디어

크로포트킨은 바쿠닌의 집산주의적 경제 모델은 단지 다른 이름의 임금 체계일 뿐이며, 그러한 제도는 자본주의 임금 체계와 같은 형태의 중앙집중화와 불평등을 낳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사회적 노동의 산물에 대한 개인의 기여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고, 그러한 결정을 하려고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결정한 임금에 대해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유 재산과 불평등한 소득이 상품과 서비스의 자유로운 분배로 대체될 것이라는 그의 아나키스트 공산주의 이론으로 크로포트킨은 아나키즘 경제 사상의 발전에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임금의 원칙을 필요의 원칙으로 대체한 그는 각자가 노동의 몫을 얼마나 기여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공동 창고에서 가져와서 자신의 요구를 충족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산업과 농업 모두에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함께 하는 사회를 상상한 그는 각 협동조합 공동체의 구성원은 20대부터 40대까지 하루 4~5시간씩 일을 하여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분업을 통해 다양한 즐거운 직업을 갖게 되리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예술적 성향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쾌적한 상황이라면 노동을 찾는다

그리고 크로포트킨은 인간의 노동 생활이 협동하여 일하는 조직으로 편성되는 것과 똑같이 여가는 상호 이익사회가 확대됨으로써 풍요롭게 된다고 보았다. 이 상호 이익사회는 우리가 오늘날 매니아라고 부르는 열정적인 아마추어로 구성된다.

크로포트킨은 푸리에가 주장한 ‘매력적인 노동(travail attrayant)’, 곧 노동이 소외되고 천박해진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하지 않고 기생 생활을 하는 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노동의 조건과 모리스가 말한 “유용한 노동”을 자유로운 사회를 성공시키는 열쇠로 보았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사람들은 노동을 혐오하여 도피한다. 이는 인간이 태만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본능적으로 노동을 즐기며, 자유롭고 쾌적한 상황에서라면 노동에서 만족을 찾는다. 

샤를 푸리에. 사진=위키미디어
샤를 푸리에. 사진=위키미디어

따라서 과도한 분업 체계와 열악한 환경이 아니면 노동은 매력을 준다. 그 매력은 자신이 만인을 위해 일하는 자유인이라고 자각하는 정신적 만족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사회는 정부와 달리 자연의 현상이고, 정부의 인위적 제한이 제거되면 인간은 그 본성에 따라 사회적으로 행동한다.

 

직접 체험하고 관탈찰하는 교육

크로포트킨은 교육시스템ㅇ을 ‘게으름의 대학’으로 묘사하며 이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피상성, 앵무새 같은 반복, 노예와 마음의 관성 교육의 결과이고 아이들에게 배우도록 가르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크로포트킨은 아나키스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을 완전히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우리 안에 있는 반역의 정신을 죽이고 권위에 복종하는 정신을 키우려고 하는 교육으로 인해 매우 왜곡되어 있으며, 삶의 모든 사건을 규제하는 법의 테두리 아래 있는 이 존재로 인해 매우 왜곡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출생, 우리의 교육, 우리의 발달, 우리의 사랑, 우리의 우정 - 이 상태가 계속되면 우리는 모든 주도권과 모든 생각의 습관을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대의 정부에 의해 정교화되고 소수의 통치자에 의해 관리되는 법치하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 우리 모두가 학교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 국가로부터 받는 교육은 우리의 마음을 왜곡시켜 자유는 상실되고 노예 상태로 변장함으로써 끝난다."

크로토포트킨은 교육시스템ㅇ을 ‘게으름의 대학’으로 묘사하며 이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사진=위키미디어

사람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해 크로포트킨은 청소년 교육에 희망을 걸었다. 그는 통합 사회를 달성하기 위해 정신적 능력과 육체 능력을 동시에 배양할 수 있는 교육을 요구했다. 인문·수학·과학을 적절히 강조하되 책으로만 가르치는 대신 아이들에게 적극적인 야외 교육을 실시하고 직접 체험하고 관찰하며 배우도록 했다. 크로포트킨은 "직접 체험하고 관찰함으로써 능동적인 야외 교육과 학습"을 주장한 최초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농촌공동체와 자유노동조합으로 이뤄진 공동체

크로포트킨은 감옥 생활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벌 제도의 철저한 수정도 주장했다. 그는 교도소는 범죄자를 개혁하기는커녕 잔인한 처벌을 가하고 범죄 방식을 강화하는 "범죄의 학교"라고 말했다. 미래의 아나키즘 세계에서 반사회적 행동은 법과 감옥이 아니라 인간의 이해와 공동체의 도덕적 압력에 의해 다루어질 것이다.

지배계급이 가지고 있는 특권을 없애라고 요구한 크로포트킨은 특권을 배제하기 위하여, 자유와 평등에 근거한 사회 발전을 방해하는 가장 심각한 장애물인 국가 그 자체와 통치기구를 개혁하고, 새로운 사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코뮌(농촌공동체)과 자유노동조합 등의 사회 단위로부터 출발하여 새로운 연합 형식의 창조를 주장했다. 새로운 연합은 이러한 집합체로 이뤄진 결사인 자유연합을 말한다. 그것은 민주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고 자율성에 근거하여 시민들이 자유롭게 스스로를 조직화할 수 있도록 해준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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