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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비평: 음모론, 뒤집어 보기
담론비평: 음모론, 뒤집어 보기
  • 최내현 미디어몹
  • 승인 2006.04.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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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대의 물타기…비판적 상상력은 인정해야

▲황우석 사태를 음모론적 시각에서 접근한 딴지일보 사이트. 이 사이트는 음모론이 정확한 실증과 논리를 갖추면 문제될 것이 업다고 강조했다. ©

필자는 음모론을 좋아한다. TV 시리즈 X-파일을 보면서 각 에피소드의 배경이 되는  갖가지 음모론이나 과학적 근거들을 찾아 인터넷을 헤매고 다닐 때의 흥분과, 1969년 인류의 달착륙이 사실은 미국 네바다 주 사막에서 연출된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정교한 논증을 담은 책을 밤새워 읽을 때 발가락까지 찌릿거리던 쾌감과, 세계를 움직이는 그림자 정부의 실체를 폭로하는 글을 읽을 때의 암울하면서도 묘하던 기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9.11 테러가 미국의 전쟁 기획 자작극이라는 수많은 논거들을 끌어모아서 읽을거리로 쓴 적도 있고, 또 그 때 펜타곤을 들이박은 비행기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책도 국내 번역 출간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비록 선수를 빼앗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음모론은 지적 쾌감을 준다. 우리가 알던 익숙한 세상, 우리가 아는 팩트가 사실은 전혀 다른 맥락이라는 주장을 접했을 때 느끼는 지적인 낯설음은 그 자체로 존재의 의의가 있다. 지성이라는 것은 익숙한 것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음모론은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기도 하다. 겉으로 보이는, 표면에 내세워지는 그 이면의 ‘진짜 시스템’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굳이 음모론이 아니더라도 사회과학의 오랜 탐구 주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설픈 음모론은 지적 담론이 아니라 사회적 폐해가 된다. 요컨대 그것은 방부제와 비슷한 종류의 것이다. 음식을 보존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사용은 불가피하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암을 유발할 뿐 아니라, (농담으로 하는 얘기지만) 나중에 죽어도 시체가 썩지도 않는다.


가식의 표면 아래에 숨어있는 진짜 본질을 밝혀낸다는 음모론의 이상과 달리, 많은 경우의 음모론은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는 수단으로 애용된다.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이 특허권을 둘러싼 미국 의료산업 마피아의 기획 작품이며 순진한 황 박사가 덫에 걸린 것이라는 음모론을 따라가다 보면, 논문을 조작한다는 행위에 대한 비판 의식은 사라지고 만다. 최근 검찰의 현대자동차 비자금 수사에 대해 ‘김대중 정부 핵심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함으로써 다가오는 5.31 지방선거에서 호남 표심을 끌어오기 위한 여권의 음모’라고 규정짓는 음모론도 마찬가지다. 이 논리를 받아들이게 되면, 횡령과 비자금 조성, 불법 로비, 편법 경영권 승계, 주주 손실 등등이 모두 잊혀지고 수사 대상자들은 가해자에서 어느 순간 불쌍한 희생자로 바뀌고 만다.


즉 음모론적 시각이 사안에 대한 가치 판단을 흐리고 사회 정의나 정당성을 흔드는 좋은 도구가 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사학법 개정이 ‘전교조가 학교를 접수하게 하기 위한 음모’라는 이론도 마찬가지로, 사안에 대한 가치 판단의 문제를 정치 게임의 문제로, 누구를 먹고 누구에게 먹히느냐 하는 문제로 전환시켜 버린다. 얼마 전 문화재청이 광화문을 이전 복원하는 등 ‘서울 역사도시화’ 프로젝트를 발표했을 때 모 신문은 ‘여당이 차기 대선에서 이슈를 선점하려는 정치적 계산’이라고 몰아붙였다. 서울을 역사도시로 만들겠다는 문화재청의 계획이 어느 순간 다음 정권을 잡기 위한 여론 조작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음모론 앞에서는 논거를 동원한 이성적인 토론이 설 자리는 없어지고 만다. 야당 뿐 아니라 청와대도 신문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 ‘개혁 정부를 흠집내려는 보수 세력의 음모’로 보는 일이 비일비재한다는 점에서 음모론에 기대는 것은 여야를 넘어서는 일종의 트랜드가 되어 버린 느낌마저 있다.


이렇듯, 현상에 숨겨진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안의 본질을 가리고 가치 판단의 기준을 모호하게 하는 것이 음모론이 가진 위험성이다. 정치권에서 이를 애용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런가하면 음모론은 인식론적인 측면에서도 위험성을 가지는데, 모든 것을 총괄하고 관장하는 특정인 혹은 특정 그룹이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경우가 많다. 즉 다양한 집단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사회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전제함으로써 상당히 단순화된 세계관을 가질 우려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때 대중은 그 조종자의 의도와 입맛에 따라 마음대로 휘둘리는 존재로 가정된다.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자리를 여당에게 넘겨준 후 이명박 시장의 실정을 드러내서 비판적인 여론을 조성한 후 차기 대선에서 이명박 시장을 낙마시킨다는 ‘야당 수뇌부 음모론’에서도 대중은 언제나 조작 가능한 상대로 설정되어 있다.


사회의 숨겨진 이면을 폭로하고 ‘진짜’ 작동 시스템을 까발린다는 음모론. 지적 상상력의 측면에서나 혹은 사회 비판적 측면에서의 의의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자칫 잘못하면 단순화된 세계관을 심어주고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 판단을 호도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특히나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는 엘리트 그룹이 자신들의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들고 유포하는 음모론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음모론이 횡행하는 최근 한국사회이지만, 상상력과 통찰을 제공하는 진짜 제대로 된 음모론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


/최내현(미디어몹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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