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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을 앞둔 교수들이여
정년을 앞둔 교수들이여
  • 김병희
  • 승인 2022.09.26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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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절대로 동물원에 가지 말라!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까운 동물원에 가면 사자나 호랑이나 코끼리를 손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 동물들이 밀림에서 살고 있는 그런 모습인가? 조련사에게 길들여진 그들은 맹수라고 할지라도 이미 야생성을 상실한 길들여진 애완동물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자나 호랑이나 코끼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왔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뭔가를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비유적으로 표현했지만, 세상만사가 구체적으로 경험하지 않으면 추상에 불과하다.

교수들은 구체적인 경험을 하지 않고 추상적 관념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꽤 있는 듯하다. 머잖아 정년을 맞이할 선배 교수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은퇴 후에 딱히 할 일이 없다며 고민하는 경우가 뜻밖에도 많다. 은퇴 이후야말로 자신의 전공 영역을 넘어서서 구체적인 경험을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주로 자신을 위해 살았다면 정년 이후에는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가는 삶도 아름답다. 새로운 분야를 구체적으로 경험해보면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 세상을 보는 안목도 넓힐 수 있다. 이론에 갇혀있는 사고 체계에서 벗어나 실제를 확인해볼 기회도 된다. 

어떤 통신회사의 광고가 있었다. 복도에서 두리번거리며 옆에 책을 낀 노신사가 강의실에 나타나자, 학생들은 교수가 등장했다 생각해 부리나케 자리에 앉고 자세를 가다듬는다. 그런데 노신사는 학생 옆에 자리를 잡는다. 놀란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한 여학생은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설마 학생은 아니겠지?” 노신사는 학생들의 반응에 어색해하며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는다. 곧이어 젊은 청년 같은 교수가 강단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자 학생들은 다시 한 번 놀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노신사의 얼굴 배경에 이런 자막이 뜨며 광고가 끝난다. 

우리들은 걸핏하면 나이를 따지는 습성이 있다. “이 나이에 내가 하랴?” “나이가 그 정도는 돼야지.” “사람은 괜찮은데 나이가...” 이밖에도 나이를 따지는 사례는 많다. 나이로 재단하는 권위주의 사회는 생동감이 없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문단에 등단한 때는 40세가 넘어서였고, 미국의 사무엘 모스는 53세에 전신을 발명했으며, 벤저민 프랭클린은 81세 때 미합중국의 헌법 초안을 만들었다. 70~80세의 고령에 검정고시에 합격하거나 대학을 졸업하는 사례가 언론에 종종 소개되기도 한다.

나이나 현재의 위치를 까맣게 잊어야 한다. 은퇴한 교수들이 자신의 나이나 교수였다는 직위의 테두리를 만들어놓고 스스로를 거기에 가두려는 자세가 문제다. 어떤 조사 결과를 보면, 대다수의 은퇴자가 자신의 실제 나이보다 17세가량 젊다고 느끼며, 4명중 3명이 새로운 기술이나 학문을 배우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retire)란 물러나는 게 아니라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시기(re-tire)라는 말도 자주 들었기에 새롭지도 않지만, 은퇴 준비는 어쩌면 인생 후반전을 힘차게 달려 나갈 타이어를 교체하는 과정일 터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지금 준비하면 된다. 정년 이후에 자신이 몰랐던 어떤 잠재력을 발견할 기회가 새로 주어질 수 있다. 진리는 강의실 안에 있지 않고, 강의실 밖에서 겪는 구체적인 경험과 시행착오에 스며있을지도 모른다. 결국은 경험이다. 경험은 추상적인 사람을 구체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정년을 앞둔 교수라면 은퇴 이후에 시도할 경험의 가짓수를 준비해야 한다.

부모를 잘 만나 교수가 됐든, 스스로 노력해서 교수가 됐든, 어쨌든 교수라는 직함 하나로 사회에서 혜택을 누리며 비교적 편하게들 살아온 그대들이여! 코치 역할은 이제 그만 멈추고, 학생의 자세로 저잣거리의 경험 속으로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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