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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교수의 문화비평_건달 인간론
김영민 교수의 문화비평_건달 인간론
  • 김영민 한일장신대
  • 승인 2006.04.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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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폭마누라 중 한 장면 ©

 

한국의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약방의 감초같은 존재가 건달이다. 더불어 미인들이 쏠리는 곳도 한결같이 재벌(이라는 건달)과 건달(이라는 재벌)이니, 건달을 싸고 벌어지는 풍경은 영락없는 中世의 형식을 답습한다. 건달들은 시도 때도 주제도 없이 등장해서 주인공들의 행로를 바꾸거나, 혹은 스스로 그 행로를 바꾸는 주인공이 된다. 급기야 '마누라 건달'(조폭 마누라, 2001)의 탄생에 헐리우드조차 주목하지 않던가. 건달 이미지의 過用에는, 내러티브의 里程을 멋있게 포장하거나 자의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누아르 포퓰리즘(noir populism) 식의 잔꾀만 있는 게 아니다; 같은 동네의 조폭은 경원하면서도 영상 속의 건달에 그처럼 열광하는 짓은 사회심리학적 은유의 깊이를 지니기에 족해 보인다.

물론 그것은 자본주의적 삶과 더불어 공생하고 있는 중세적 유토피아 의식의 倒錯일 뿐 아니라 그것이 마른 오이처럼 졸아든 징후다. 요컨대 조폭과 건달은 중세가 자본의 틈사위에 끼여있는 도착된 쾌락의 흔적이다.

가령, 한국의 좌파가 그 지분에 비해 과도하게 표상되었다는 지적은 정확하지만, 사실 유토피아적 기운이란 워낙 그 과장된 假現性 속에서 그 변증법적 부정성을 유지하는 법이다. 유토피아는 워낙 재현이 아니라 표현이며, 표현은 그 최소치에서조차 부풀어 오르는 법이다. 유감스럽게도, 건달의 허구적 표상이 범람하는 영상문화적 현실 속에서도 어떤 유토피아적 기운, 집단적 환상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런 '부정성'이 없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드라마의 건달 이미지는 패러디도 아이러니에도 미치지 못하며, 심지어 그 흔한 寓意 하나 건지지 못한다. 건달-이미지를 향한 대중의 집단적 투사는 "현실에 무력한 형식의 한계, 다시 말해서 오직 노동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상징적 행위로만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이 악몽의 상황"(이택광)에서 생긴다는 지적과! 더불어, 그 후안무치한 스펙타클의 일차원성 역시 당연히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소비, 혹은 사치는 언제나 과시이자 티내기였고 자기정체의 결락을 메우려는 환유적 강박이었다. 엄밀히, 소비가 사용가치에 머무른 적은 없었고, 그리고 인간의(이라는) 소비는 언제나 사치일 수밖에 없다. 베블렌(T. Veblen)과 모스(M. Mauss), 좀바르트(W. Sombart)와 바타이유, 보드리야르와 부르디외 등은 이미 이같은 사실을 풍성하고 설득력 있게 서술해준 바 있다. 요컨대,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사치와 결부되었다; 이성적 동물(animal rationale)도 '존재의 목자(Hirt des Seins)'도 아닌 인간은 낭비와 잉여에서 스스로의 취향을 티내고 권력의지를 과시하고 노동과 축적의 세계에 결락한 존재감을 보충한다. 건달도 꼭 그런 것이다. 건달 역시 사치와 낭비의 특별한 한 방식이며, 특히 노동의 부재에 얹힌 집단적 환상의 이미지를 키우는 대중 욕망의 대상이다. 건달은 누구나처럼 축제와 폭력의 세계를 동경하는 고중세적 감수성에 기대지만, 다만 노동이라는 산업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으려는 판타지인 것이다.

문명 자체, 특히 근대의 자본제적 삶은 노동의 세계와 축제의 세계를 분리배치하려는 시스템화이다. 도시-시스템의 세계는 노동과 축제, 질서와 폭력, 생산과 휴식, 세속과 神聖, 그리고 전문성(vocation)과 카리스마(charisma)를 엄격히 구획한 탈공동체적 순환공간에 다름 아닌 것이다. 건달의 중세성은 이 이항대립의 근대적 체계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은 삶의 양식 속에서 도드라진다. 이 '깡패'들은 놀면서 벌고, 휴식이 곧 생산이며, 그 전문성과 카리스마는 뒤섞여 있다. (가령 조폭의 '공갈'이나 종교의 '협박'이라는 기법은 전문성이자 그 자체로 특이한 카리스마인 것!) 마찬가지로 폭력(축제)과 질서(노동)는 구별되지 않으며, 베블렌의 고전적 분석처럼 (특히 일본 야쿠자의 대중적 표상에서 현저한데) 그들의 세속은 중앙집권적이며 심지어 가히 '종교적'이다. 건달-이미지에 얹힌 판타지, 그것은 실로 종교나 정치만큼 집요하고 영구적일 것이다.

김영민 / 한일장신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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