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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그녀의 개를 만났어”…서로가 응답하다
“그녀가 그녀의 개를 만났어”…서로가 응답하다
  • 최유미
  • 승인 2022.09.30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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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종과 종이 만날 때』 도나 해러웨이 지음 | 최유미 옮김 | 갈무리 | 464쪽

만짐은 쌍방의 접촉이기에 주체·대상의 이중성 지녀
‘함께 되기’는 반려종 파트너의 응답-능력 키우는 일

도나 해러웨이 캘리포니아대(산타크루스 캠퍼스) 의식사학과 석좌교수의 『종과 종이 만날 때(When Species Meet)』는 2003년의 『반려종 선언(Companion Manifesto)』 이후 학술지에 발표되었거나 발표될 글들을 수정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다. 해러웨이는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살아왔거나 최근에 인간과 엮이게 된 동물들과 인간의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만남을 진지하게 다루면서 과학학과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윤리와 정치를 다시 묻는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 제목은 ‘우리는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이다. 이 제목은 다소간 포트휴머니즘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휴머니즘은 테크노사이언스가 어떻게 유기체적 인간을 해체하는가에 주목하면서 휴머니즘이 말해온 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시도이다. 이는 일찍이 해러웨이가 테크노사이언스의 사이보그 형상을 기묘하게 만들면서 여성의 경계를 다시 물었던 것과 맥이 닿아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해러웨이는 인간이 테크노사이언스에 의해 비로소 그 경계가 위태로워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인간이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내가 나의 개를 만질 때 나는 도대체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만지고 있는 것일까?”, “함께 되기는 어떤 의미에서 세속적이게 되는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물음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만짐은 쌍방이 접촉하는 것이기에 만짐과 동시에 만져지는 상호적인 사태이다. 그래서 해러웨이는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이라고 쓴다. 주체와 대상 사이의 일방적인 비대칭성이 일상의 만짐을 통해 주체인 동시에 대상이 되는 이중성으로 드러남을 포착한 것이다. 해러웨이는 이를 두 명 이상의 파트너가 패턴을 주고받는 실뜨기(cat’s cradle) 놀이로 비유한다. 이 책은 이런 이중성에 관한 작업이다. 

“함께 되기”는 들뢰즈·과타리의 “되기(becoming)”와는 다르다. “함께 되기”는 변칙적 존재에 대한 감응적 이끌림에 의한 되기가 아니라 누구와 무엇이 반드시 문제가 되는 관계에 들어가게 되는 세속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이 책이 다루는 실험실 동물과 실험실 노동자 사이의 돌보기와 고통나누기, 순혈종 개 세계의 사랑과 지식 실천들, 하반신 마비의 해러웨이 아버지와 그의 목발, 어질리티(사람과 개가 함께 정해진 장애물 코스를 완주하는 경기)견과 그들을 훈련하고 돌보는 사람들, 떠돌이 고양이와 그를 돌보는 사람, 멸종위기에 놓인 북쪽털코웜벳과 예술가의 실천들, 멧돼지 사냥과 비건 실천 등이 그것이다. 이런 실천들 어떤 것도 무구하지 않고 최종적인 평화를 주는 것도 아니다. 복수종이 함께 만들고 사는 세계에서 “함께 되기”는 유한한 풍요를 위해 협력하는 반려종을 만드는 실천이고 반려종 파트너에 대한 응답-능력(response-ability)을 키우는 실천이다. 

 

동물과 인간은 파트너로서 서로 응답하고 반응하는 능력을 배워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동물과 인간은 오랜 시간 세계를 함께 만들어온 파트너이자, 함께 식탁에 앉는 파트너이고, 함께 번영하는 법을 배워야할 반려종들이다. 지금 같은 기후격변의 시대에 가장 취약해 진 것은 포유류들이고 특히 인간과 연계된 포유류들의 상황은 심각하다. “동물은 야생으로”라는 슬로건은 여러 가능한 응답 중의 하나이지 절대적인 응답이 아니다. 야생에 사는 동물들의 서식지를 복원하고 종 다양성을 높이는 실천들은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가축들,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번성의 가능성이 더 많은 존재들에게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 응답은 하나가 아닐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해러웨이가 듣고 싶어 하는 어질리티계 사람들의 칭찬, “그녀가 그녀의 개를 만났어” 같은 만남이 필요하다. 이런 만남에서 일과 놀이의 시계(視界)가 열리고, 고통만이 아니라 기쁨이 중요한 문제가 되고, 서로에 대한 응답이 복수종의 근본적인 프로토콜이 된다면,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통상적인 물음들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세라는 파괴적 국면을 빠져나오기 위해 우리에게는 함께 세상을 만들어 온 동물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유미
수유너머104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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