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8:45 (금)
독신, 즐거운 ‘마이너리티’
독신, 즐거운 ‘마이너리티’
  • 박수진 기자
  • 승인 2006.03.2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상의 편견은 여전 … 신경 끄고 내 멋에 산다

현진건의 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에서부터였을까. 독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소실점은 ‘여선생 혹은 교수’에서 멈출 때가 많다. 그 전형은 신경질적인데다 학생들로부터 “불쌍”하게 여겨지는 캐릭터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독신 가구는 총 2백22만 가구로 전체의 15.5%를 차지하고 있다. 1985년의 66만 가구에서 15년 간 독신 가구가 3배 이상 증가했지만 이 ‘B사감’ 잣대는 여전히 낡은 그대로 우리 사회에 작동하고 있다. 

김다은 추계예대 교수(문예창작)는 “최근 대학에 간 조카가 올라와 같이 살자, 혼자 살 때 사람들이 보였던 호기심의 눈빛이 무관심 혹은 이해로 대체됨을 느꼈다”며 “사람들은 독신을 싱글맘보다 훨씬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청주대 A교수는 “나도 몰랐는데 알고보니 학생들, 동료교수들, 직원들 사이에서 ‘내 싱글 라이프’가 끊임없는 안줏감이었다”고 돌아본다. 

독신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호기심’을 넘어 결핍의 시선이 크다. A 교수는 “10년 전, 천리안 통신을 통해 친구를 사귀어 1년쯤 통신상으로만 얘기하다 직접 만나게 됐는데 내가 사지육신 멀쩡한 미모의 여교수인걸 알고는 깜짝놀라더라”며 “독신이면 성격적 결함이 있거나 매우 비만이거나 병이 있을 거라는 등 흠결을 찾는 후진적 사고가 아직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B 교수는 “지방대 한 친구는 교수들끼리 간 골프 모임에서 미혼 여교수가 남교수가 잘못 휘두른 골프채에 맞을 뻔하자 ‘다치면 내가 데리고 살면 되지 뭐’ 라고 말해 친구가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한데, 이 농담 속에 독신 여성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결혼해야 할 미완의 존재’로 보는 시선이 깔려있다.

이화여대 C 교수는 “우리 사회는 집단 문화가 강해서 ‘결혼’ 이라는 정형성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부정적 시선을 받게 된다”며 “그래서 나는 굳이 독신임을 밝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말하지 않으면 나를 어느 집 맏며느리쯤으로 보고, 말하면 이상하게 보는데, 굳이 밝혀서 불편함의 주인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시선 못지 않게 기혼자 중심의 사회 문화도 문제다. 많은 교수들이 ‘경조금 지급’에서 문제를 꼽는다. 교수들에게서 마치 계처럼 매달 1~2만원씩 걷어가는데 이 돈은 결혼, 출산, 자녀 돌, 자녀 입학 때 지급된다. 당연히 미혼의 독신 교수들은 돈만 내고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것.

또한 입양도 불가능하다. 입양 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의 시행규칙에는 양부모가 될 조건으로 ‘혼인중일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영희 한양대 연구교수(관광지리)는 “내가 지금 입양을 고려해본 것은 아니지만, 독신인 여교수의 경우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데 입양의 길이 막혀 있어, ‘해외입양아수출국’의 오명을 띠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불합리한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화제에서도 종종 자연스럽게 소외되곤 한다. 한명희 강원대 교수(스토리텔링)는 “사람들을 만나면 ‘애가 몇이냐?’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그 때 내가 ‘결혼을 안 했다’고 대답하면 대화가 단절된다”며 “교수들도 대체로 자녀이야기가 주요 화젯거리가 되는데 그럴 때마다 그 화제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그다지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김경원 명지대 겸임교수(가족관계)는 “종종 성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소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가장 불편하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고기도 먹어본 사람들이 맛을 아는 것처럼 성적인 쾌락을 애시당초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그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세상의 이런 ‘마이너리티’로서의 편견 부여와 관계없이 이들은 즐겁다. 강진옥 이화여대 교수(구비문학)는 “흔히 ‘외롭지 않느냐’고 하는데 선실에 나가 참선을 하거나, 구비문학 전공이다보니 답사다니면서 할머니 얘기를 들으며 여성의 삶을 나누는 등 결혼하지 않아도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다”고 말한다. 또한 “‘쓸쓸한 마음이야 언제 어디서나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것이다’라는 노래 가사를 들은 적이 있다”며 “내게는 간간이 찾아드는 외로움의 시간, 해질 녘 혼자만의 방에서 있는 경계의 시간이 영적인 휴식처이자 성찰의 시간이다”라고 외로움의 승화를 얘기한다.

이영희 연구교수는 “나는 산에 가서 들풀 등을 그리는 일이 취미다”라며 “결혼 말고도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정말 많다”고 말한다. 명절이면, 가르치는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명절을 즐기며 일종의 또 다른 가족을 형성하기도 한다. 김다은 교수는 “요즘은 라틴댄스를 배운다”며 “역사연구모임, 토론 모임 등 내 전공분야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모임 등을 통해 앎을 넓혀가고 새로운 것을 배우느라 재밌다”고 말한다.

이들은 굳이 결혼을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직업적 특성상 ‘일 중독’이 필요하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현재의 학문적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영희 교수는 “‘절대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이 길을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아침에 일어나 한밤중까지, 책 읽고 연구만 하는데도 정신이 없다”며 “내가 가정과 일 두 가지 다를 선택했다면 과연 잘 해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강진옥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자유’에 관심이 많아 자유롭고 싶었고 결혼 안 하는 것도 자유로워지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결혼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어느새 살다보니 내가 ‘집’과 ‘학교’만을 오고가고 있더라”며 웃음을 보였다. 김미경 계명대 교수(음악)도 “독신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학문적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한다. 결혼한 사람이라고 학문적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가 둘 다 잘할 수 없다면 ‘일’ 하나만 잘하자고 결심한 것.

독신 교수들이 꼽는 독신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만을 위해 온 시간을 다 쓸 수 있는 것”이다. 고갑희 한신대 교수(여성학)는 “주변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자기 스케줄을 자녀나 가족 등에 의해 조정하지 않아도 되는 점은 큰 장점이다”라고 말한다. 고 교수는 “대체로 가족 단위로 움직이는 한국 사회에서 ‘나’가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많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과연 이들은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사랑관을 묻자 강진옥 교수는 “사랑하면 우물곁에 목말라 죽는 그녀 된다”는 김남조의 시를 읊는다. 사랑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랑에 대한 기대가 많은 편은 아니고, 남자한테 매달리는 형도 아니어서 자신은 독신에 적합한 형이라고 말한다. 또, 그가 생각하는 사랑은 소통과 교감이다. “잉그리트 버그만의 자서전을 대학원 시절에 읽었는데, 버그만이 첫 남편과 이혼하기 전에 두 번째 남편이 될 사람과 같은 침대에 있었다는데, 그러면서도 자신이 기억하는 최고의 사랑의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있는 시간이었다”라며 이 구절이 너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김경원 겸임교수는 “젊은 시절 연애를 해봐서 인지 사랑에 대한 아쉬움은 크게 없다”고 말한다. 이영희 연구교수는 “불꽃같은 사랑, 운명적인 사랑은 젊을 때 생각하는 사랑이었다면 지금은 대화가 통하고 편하게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이 좋을 것 같다”며 “학교에서 결혼 안 하신 선생님들이 많은데 종종 ‘살림 살아줄 사람 어디 없냐’는 말들을 한다”고 했다.

독신 생활의 고비는 무얼까? 청주대 A 교수는 “우울증”이라고 말한다. “유학 가서 갑자기 우울증을 겪었다”며 “한없이 내 안으로 침잠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자기만의 취미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사람들과 ‘섞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독신 교수들은 충고한다. 강진옥 교수는 “가정이라는 또 하나의 사회의 역할에서 자유롭다보니 독신 교수들이 공존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며 “자기 틀을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틀을 유지하되 틈을 열고 공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다은 교수는 “그런 노력에 더불어 결혼 여부가 ‘정체성’ 판단에 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잣대가 되기보다는 개개인의 독립적 존재가 판단되는 사회문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한 “사회 문화가 저절로 조성되기를 바라기보다는 ‘독신교수’ 스스로 ‘독신 문화’를 만들어나가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수진 기자 namu@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