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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반가사유상’...‘생각하는 사람’과 다른점은?
신라의 ‘반가사유상’...‘생각하는 사람’과 다른점은?
  • 유무수
  • 승인 2022.09.2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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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한국의 반가사유상』 문명대 지음 | 다할미디어 | 280쪽

고뇌에 깊이 빠진 인간을 형성화 한 로댕
고뇌가 해결되는 순간을 보여준 반가사유상

50여 년간 불교미술사를 연구해온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반가사유상 100여점 가운데 세계 최대, 최고(最古)를 자랑하는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 △일본 광륭사 소장 목조반가사유상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사유상 △충주 봉황리 마애반가사유상 △경주 단석산 마애반가사유상 등 6점을 선별하여 이 책에서 서술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은 보살이 돈좌(墩座)에 앉아 왼쪽 다리는 내리고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리고 그 오른쪽 다리 무릎 위에 오른팔의 팔꿈치를 올려놓고 오른쪽 손가락 두 개를 오른쪽 뺨에 살짝 대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로댕의 조각에서 의자에 앉아 몸을 약간 비틀어 오른 팔의 팔꿈치를 왼쪽 다리 무릎 위에 올리고 오른손 손등에 턱을 괴고 있는 「생각하는 사람」은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고뇌 속에 깊이 빠져들어 있는 인간을 형상화했다는 느낌이 스치게 한다. 반면 반가사유상은 눈은 지그시 반만 뜨고 오묘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 사유 중에 어떤 고뇌가 해결되는 순간의 모습이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반가사유형 자세의 불교상은 인도 간다라 조각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국을 거쳐 6세기 중엽에 우리나라에 전파됐으며 대승불교 유가유식파의 미륵보살로 인식돼왔다. 우리나라는 6세기말∼7세기에 유가유식이 성행했으며,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에 가장 널리 신앙되었던 불상이다. 미륵보살은 신라 화랑도의 신앙대상이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인도의 유가유식을 수용하면서 5세기에 유가파가 등장했으며, 인도의 유가유식파는 무착과 세친의 스승인 미륵보살이 창시했다. 유가유식파의 기본적인 관점에 의하면 일체 만유는 오로지 식(識)이 변전(變轉)하여 이루어지며, 내심(內心)으로 외경(外境)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삼계유일심(三界唯一心)이다.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반가사유상의 원조격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반가사유상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미흡하다.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전래지를 백제나 고구려로 보는 논의도 있으나 고신라의 영주 초암사라는 주장이 통설이다. 일본 경도 광륭사의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신라의 반가사유상이 7세기 초 일본에 정식 사절을 통한 문화교류 차원에서 전해진 것이다. 이는 태백산의 적송(赤松)으로 제작한 것이며 국보 83호 금동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도상 특징이 매우 유사하다.

 

국보 83호인 금동반가사유상.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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