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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성(城)을 허물어줄 우리들의 신부님
갈등의 성(城)을 허물어줄 우리들의 신부님
  • 김병희
  • 승인 2022.09.23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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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⑦ 조반니노 과레스끼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지금 한국 사회는 용서와 사랑이 너무 부족하다. 내 편은 잘못해도 무조건 감싸주고 반대편은 혼내주는 진영 논리에 따라 갈등과 반목이 칼춤을 추고 있다. 정치권의 여야 갈등, 세대 갈등, 노사 갈등, 젠더 갈등, 빈부 갈등, 상하관계 갈등에 이르기까지 온통 갈등 천지다.

그뿐이랴? 여차하면 ‘갑질’로 매도하니 입도 뻥긋 못하면서도 소통의 중요성만 강조한다. 소통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불통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반증이다. 갈등의 시대에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1979)이란 소설을 읽어봤으면 싶다.

도서출판 백제의 『신부(神父)님 우리들의 신부(神父)님』 광고를 보자(경향신문, 1979. 9. 5.). 책 제목 주위를 등장인물 캐릭터 넷이 둘러싸고 있다. 아래쪽에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돈 카밀로 신부와 페포네 읍장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도서출판 백제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광고 (경향신문, 1979. 9. 5.)

카피라이터는 책 제목 위에 이런 카피를 덧붙였다. “정말 예수를 존경하고, 우리들의 생활을 아끼는 어느 신부 이야기! 진실한 인생 속에 잘 파고든 이탈리아 문학의 정수!” 조반니노 과레스끼의 원작을 김명곤이 번역한 소설인데, 이탈리아 시골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정치(이데올로기)와 종교의 갈등 문제를 그려냈다.

보디카피만 읽어봐도 신부의 성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신부님들은 보통 다정다감한 편인데, 광고에서는 분노 조절을 못하는 열혈 신부로 묘사했으니 독자들의 주목을 끌었을 것이다.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열혈사제」(2019)가 제목만으로도 주목을 끌었듯이 말이다.

보디카피는 이렇다. “신부님 당신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렇게 주먹만 휘두르는 분은 아니시죠? 어떻게 해서 그리도 권투도 잘 하시고 총도 잘 쏘시고 말싸움도 잘 하시고 헤엄도 잘 치시고 거짓말도 잘 하시나요. 신부님은 또 어쩌면 그토록 성질이 급하시고 원하는 것도 급하시고 걷는 것도 급하시고 나무라는 것도 급하시나요.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284쪽에 책값은 1천900원이었다.

초판 표지(1979년)

이탈리아 중북부의 바싸 시골 마을에서 신부와 읍장이 치고받고 싸우고 예수님이 중재하는 것이 소설의 기본 얼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벌어진 정치와 종교의 갈등 문제가 생생히 살아있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돈 카밀로 신부는 성당의 미사 봉헌에만 머무르지 않고 신자들의 고민 해결사를 자처하며 열혈 청년처럼 싸움도 피하지 않는다. 확실한 공산주의자인 주세페 페포네 보타지는 정치적 열정으로 돌진하는 읍장이지만 신앙심이 깊고 우직하다. 예수님은 신부가 고민하는 순간마다 나타나 쉴 새 없이 간섭하고 조언한다. 

공산주의자 페포네는 아들의 세례명으로 ‘레닌’을 희망하지만 돈 카밀로 신부는 이를 막으려 주먹까지 휘두른다. 읽다보면 인간적인 내용 때문에 웃음과 눈물이 함께 터진다. 단문으로 짧게 쓴 경쾌한 문체 때문에 포복절도할 수밖에 없다. 신부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대목들도 재미있다. 신부가 예수님께 지혜를 구하면 속내를 꿰뚫어 본 예수님은 착한 행동을 일깨워 페포네와의 충돌을 막는다. 신부가 예수님께 거짓말을 하면 속아주기도 하고 때로 꾸짖지만 예수님은 늘 사랑으로 대한다.

이 소설은 40여개의 언어로 번역됐으며, 이탈리아 서점협회는 ‘최고 출판상’과 ‘황금바구니 상’을 수여했다. 세계 각국에서 영화와 연극과 만화로 제작됐고, 우리나라의 「열혈사제」(2019)도 발상의 출발점은 이 소설이었다. 

작가 조반니노 과레스끼(Giovannini Guareschi, 1908~1968)는 기자, 카피라이터, 삽화가, 교사, 만돌린 강사 같은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이 소설을 <베르톨도> 신문에 연재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이탈리아의 국민작가로 떠올랐다. 고종석은 소설에 대해 “인간의 얼굴을 한 공산주의자를 우리나라의 일반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인 공적이 있다”고 평가했다(한겨레, 1992. 9. 2.). 공산주의자가 어떤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일 수 있다는 점을 환기했다는 뜻이다.

이 소설에서는 이념적으로는 갈등하면서도 신부와 시장이 화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인간사에서 이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랑이며 갈등을 넘어 화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시대의 표정을 제시했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갈등 양상은 시대를 건너뛰어 마치 한국 사회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안으로 착각할 정도로 흡사하다. 갈등이 아무리 심각할지라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타협점을 반드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소설의 참 주제다. 마치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이탈리아처럼 지금 한국 사회는 갈등의 만리장성을 쌓고 있는 듯하다.

단언컨대, 편을 나눠 더 이상 으르렁대지 말고 사랑과 화해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갈등의 성(城)을 허물기 위해 고민 해결사로 열혈 청년처럼 나서줄,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이 기다려진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편집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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