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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만선사 연구, 만주와 조선의 역사 연구에서 끝나는 걸까
일본의 만선사 연구, 만주와 조선의 역사 연구에서 끝나는 걸까
  • 정상우
  • 승인 2022.09.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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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사학을 비판한다 ⑤ 만선사

올해로 광복 77주년을 맞이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된 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식민지 근대화론과 좌우 대립 등 이념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연 한국인은 당파 싸움만 하며 전통만 고수하다가 나라를 빼앗겼을까. 이번에 출간된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시리즈는 그동안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던 일제 식민사학의 실체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대학·언론·박물관·철도주식회사·조선총독부 등은 과연 어떤 식으로 식민사학을 개발해왔는지 알아본다. 

다섯 번째는 20세기 들어 일본인들이 만주와 조선을 합쳐 만들어낸 조어인 ‘만선’의 역사를 다룬 『만선사, 그 형성과 지속』를 집필한 정상우 서울과기대 교수의 글이다. 정 교수는 일본의 만선사가 만선과 중국·몽골 세력의 역학관계를 정리하고 이를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려는 논의였으며, 그 과정에서 조선은 대륙의 영향이 절대적인 반도라는 지형에 갇혀 있는 존재로서만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일본사를 제외한 채 만선사를 사고할 수 있는가? 만선사를 대변하는 이나바의 논의를 중심으로 만선사 연구의 영역 확장을 꾀했다.”

1960년대 이래 한국의 역사가들은 19세기 후반에서 1945년에 이르는 시기 일본인 역사가들의 연구를 식민사학(혹은 식민주의 역사학)이라 칭하며, 특히 저들의 한국사 연구에 많은 관심을 표했다.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이들이 주로 한국사 연구자였던 점을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과거 일본인 역사가들의 시야는 한국에 머물지 않았다. 

 

 

주지하듯이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사회로 서구의 근대적 문물·제도가 유입되는 가운데 서구의 분과학문 체제와 역사학 역시 도입되었다. 대학, 학회가 마련되고, 정부의 주도하에 사료의 수집·편찬이 진행되며 일본에서 근대 역사학이 성립했고, 이러한 토양에서 성장한 이들이 일본은 물론 한국, 중국 등의 역사를 연구했다. 즉 당시 일본인 역사학자들은, 근대화에 진력하면서 주변으로의 침략을 거듭하며 제국으로 변모한 일본의 행보를 역사적으로 합리화함은 물론 과거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부정하고, 중국을 제치고 아시아의 강자로 부상한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공간으로서 ‘동양’을 창출하고, 그 역사를 일본의 관점에서 정리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과거 일본인 연구자들의 역사 연구, 특히 한국사 연구의 의미를 고찰하는 것은 과거 일본인 역사가들의 동아시아 전반에 대한 연구와 인식을 고려하며 그 안에 한국을 어떻게 위치지었는지를 고민해 보아야 하는, 거대한 문제라 하겠다.

20세기 들어 일본인들에 의해 등장한 ‘만선’, ‘만선사’라는 용어는 한국사 연구자로서, 특히 과문한 필자에게 이러한 거대한 문제에 접근하는 좋은 실마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것이 조선을 포함하면서도, 이를 넘어 만주까지 포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식민주의 역사학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일어난 1960년대부터 만선사에 대한 언급은 빈번했고, 2000년대 이후 다수의 연구가 등장하며, 만선사와 대륙침략의 공모관계나 그 과정에서 진행된 한국사에 대한 부정적 서술 등이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만선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어떠한 답을 할 수 있을까? 사실 1945년 이전에도 만선사의 범위나 정의는 없었다. 그저 만선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들, 즉 만주사, 조선사, 한일관계사, 중일관계사 등이 ‘만선사’라는 이름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근래 만선사에 대한 연구가 늘어났지만,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은 일본의 대륙침략을 역사학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해 만주와 조선을 뭉뚱그려 사고한 것이라는 것에서 더 나아가 보이지 않았다.

 

20세기 전반 일본인 역사가들의 과제가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었다면 만선사 역시 이러한 과정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선사 역시 일본을 제외한 채 만선만을 사고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만선사, 그 형성과 지속』은 만선사를 다룬 연구들의 집중적인 관심 대상인 이나바 이와키치(稻葉岩吉)의 논의를 중심으로 만선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본 것이다. 이나바를 중심으로 논의한 것은 전적으로 필자의 한계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이나바는 20세기 전반 한국사를 주제로 한 연구(「光海君時代の滿鮮關係」, 1933, 京都帝大)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유이한 연구자이자,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 편수를 총괄했으며, 만선사의 체계화를 시도한 유일한 인물로서, 스스로 자신의 연구 행로를 ‘만선사 연구과정’이었다고 밝힌, 식민주의 역사학의 전개와 만선사의 확립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연구자 중 하나라 하겠다. 이에 만주사에서 조선사를 거쳐 만선사에 걸쳐진 그의 연구를 중심으로 당시 만주와 조선의 역사를 연구했던 다른 역사가들의 논의를 배치함으로써, 만선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것이 현재 필자의 부족한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나바로 대변되는 당시 연구자들에게 만선사는 만주와 조선만을 담은 것이 아니었다. 만선(또는 만주)의 세력은 물론 중국, 이와 더불어 몽골 방면의 세력들이 만선이라는 공간에서 벌인 일련의 각축이었다. 즉 만선사는 만선은 물론 중국 및 몽골을 포함한 대륙 세력들의 역학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조선은 대륙의 영향이 절대적인 반도라는 지형에 갇혀 있는 존재로만 나타났다. 그렇지만 만선사의 논의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만선사를 논의하며 주목했던 역사적 국면, 예를 들어 한사군의 설치, 고구려와 수의 전쟁, 쿠빌라이의 남송정벌, 왜구, 임진왜란 등은 모두 대륙과 일본의 관계를 설명하고, 일본의 역사적 위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결국 만선사는 만주와 조선은 물론 몽골, 중국 등 대륙 세력들의 역학관계 내지 상관성을 보여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대륙에서 떨어진 섬나라 일본의 역사를 대륙의 역사적 전개에 참여시켜, 만선의 역사를 대륙과 일본의 교섭 과정으로서 서술하며, 대륙에 영향을 미치며 국위를 떨친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만주건국대학의 학생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사회평론아카데미

필자의 한계로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은 이 정도이다. 무엇보다도 이나바 외에 몇몇 연구자의 논의에만 한정된 것은 큰 아쉬움이다. 만선사의 전개 과정에서 부각된 역사적 국면들에 대해 다른 일본인 연구자들의 논의 양상과 거기서 한국사는 어떤 자리에 놓였는지 등은 우선적으로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다. 한편 거칠게 정리하자면 만선사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대륙과 일본의 교섭 과정으로서 그리고자 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동아시아의 중심이었던 중국은 대륙 세력의 하나로 상대화되었던 반면 일본은 동아시아사를 설명하는 한 개의 축으로 부상했다. 그렇다면 1945년 이후에도 동아시아의 역사 전개에서 일본의 위상을 드러내려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위상을 상대화하고자 하는 논의에서라면 만선사적인 논의, 더 넓게는 ‘동양’을 구성하고자 했던 식민주의 역사학의 조망은 공명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속에서 식민주의적 한국사관 역시 되살아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도서명에서 ‘지속’을 언급한 것은 이와 관련된 향후의 연구에 대한 전망이기도 하다.

 

 

정상우
서울과기대 인문사회교양학부 교수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국사학과 대학원에서 한국근대사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총독부의 역사편찬사업과 조선사편수회』, 『제국의 학술기획과 만주』(공저)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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