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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얼굴 잃은 사람들
대학정론: 얼굴 잃은 사람들
  • 강신익 논설위원
  • 승인 2006.03.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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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익(인제대학교/의철학) ©
진리는 나의 빛!  어느 대학의 상징물에는 이런 뜻의 라틴어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바로 그 대학의 한 교수가 ‘인위적 실수’를 통해 사실을 조작해 그 진리를 심각하게 왜곡한 사건이 발생했다. 진리는 빛을 잃었고 우리 학계의 허위의식이 그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진단과 처방이 쏟아졌고 진실성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제도적 개선방안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빛을 잃은 진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 이상의 전반적인 체질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연구부정행위에는 표절과 조작, 아무런 기여 없이 저자가 되는 경우 등이 있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논문을 팔고 사는 논문 대필의 관행이다. 검찰은 지난 해 3월 학위논문을 대필해 주고 돈을 받은 대학교수 5명을 구속하여 경종을 울린 바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관행이 근절될 것 같은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는다. 지난 해 10월에는 같은 일로 교수 여러 명이 경찰의 수사를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또 들리는 말에 의하면 전면 수사를 계획했던 검찰이 완전히 관행으로 굳어져 죄의식마저 느끼지 못하는 교수사회를 발견하고 수사범위를 축소했다고도 한다.

이번에는 국가청렴위원회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고 한다. 청렴위가 교육부에 권고한  ‘박사학위 과정 비리 소지 제거를 위한 제도개선방안’은 대학별로 부정행위 접수창구를 개설하고 학위논문 표절이나 대필 등을 예방하기 위해 기존논문과 비교·분석할 수 있는 학위·학술지 논문 종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도록 되어 있다. 때늦은 감은 있으나 바람직한 변화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제도개선에 앞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박사학위를 연구자로서의 길을 걷는 데 필요한 단계로 보기보다는 어떤 사람의 경력을 수놓는 장식품쯤으로 여기는 태도다. 이러한 장식품에 대한 수요가 있는 한 이 같은 관행이 근절되기는 어려울 것인데, 그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은 외화내빈의 사회적 병리 현상이다.

논문은 학자의 얼굴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남의 글을 짜깁기 해 버젓이 자기 이름으로 된 과제물을 만들어 제출하는 학생을 나무라고 지도할 수 있으려면 먼저 우리 자신들의 얼굴을 되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잘못된 관행을 바꾸려면 먼저 문제를 문제로 인식할 수 있어야만 한다. 문제의 인식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남의 탓만 해서는 문제가 제대로 드러나기도 어려울뿐더러 공연히 평지풍파만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학계의 과거에 대한 고백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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