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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04] 목욕으로 세균을 멸했는데 왜 피곤·따끔한 걸까, 공생미생물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04] 목욕으로 세균을 멸했는데 왜 피곤·따끔한 걸까, 공생미생물
  • 권오길
  • 승인 2022.09.1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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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미생물
미국 카브릴로 대학의 생물학 박사 타샤 스텀은 8살 아들의 손의 세균들을 배양해 SNS에 공개하는 일이 있었다. 사진=타샤스텀

사람의 몸은 많게는 200여 조직(組織, tissue)이 얽히고설켜 여러 가지 기관(器官, organ)들을 만들었다. 총 중에서 살갗(피부, skin)이라는 기관은 여러 자극을 느낄뿐더러 수분 증발, 병원균의 침투를 막는다. 대략 2㎡ 넓이가 되는 사람 살갗에는 1천여 종의 세균(bacteria)이 우글거리고, 부글거리며, 그것을 모두 헤아리면 1012(1조, a trillion) 마리나 될 것이란 한다. 그리고 내장에 사는 세균․곰팡이․원생동물 따위를 모두 합치면 사람 몸 세포(100조 개)의 10배는 너끈히 넘을 것이라고 본다. 또 하나의 생명체(세포)로 보기 어려워서, ‘입자(particle)’라 부르는 바이러스는 몸 안팎에 380조 개가 사는 것으로 추리한다. 

물론 이것들은 거의 사람과 함께 사는 ‘공생미생물’이다. 우리의 살갗 스스로 카텔리시딘(cathelicidin)을 분비하여 해로운 피부 미생물의 번식을 억제하는데, 끈질긴 아토피(atopy)도 바로 이 카텔리시딘이 제대로 합성되지 않아 생긴다. 사실 피부 세균의 90%는 실험실에서 잘 자라지 않기에 연구가 아주 늦었다지만 다행히 근래 와서 DNA를 분석하여 종(種, species)을 감별하기에 그 속도가 아주 빨라졌다 한다.

그때 그 경기고(京畿高) 제자들이 이미 환갑 나이를 훌쩍 넘기고, 퇴임할 나이가 다 됐다. 수업 시간에 “목욕은 몸을 청결하게 할 뿐만 아니라 피돌기를 빠르게 하여 피로회복에 좋다”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학생이 손을 벌떡 치켜들고는 “선생님, 목욕하고 나니 더 피곤하던 데요”하고 뜬금없는(?) 화살을 날린다.

맞는 말이다. 그땐 그럴 만도 했다. ‘때밀이 아저씨’들이 재미를 봤던 시절로, 너 나 할 것 없이 한 달에 한 번쯤 목욕탕에 가서 ‘이태리타월’이라는 까칠까칠한 때수건으로 묵은 때를 한바탕 빡빡 문지르고 나면 맥이 탁 풀리고 힘이 쭉 빠졌지. 그 여린 살갗을 사정없이 문질렀으니 무지몽매(無知蒙昧)하였다. 그래도 그건 우리(필자) 유년기(幼年期)를 비하면 약과(藥果, 그만한 것이 다행임)다. 늦가을에서 이듬해 늦봄까지 목욕은 고사하고 머리 감기도 못 해 두상(頭上)은 온통 ‘까치집(헝클어진 머리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었다. 그리고 엄동설한에 제삿날이나 올라치면 간신히 소죽솥에 물 데워 슬쩍 끼얹어 목욕재계(沐浴齋戒)라고 했지. 서럽고 시리도록 궁색하고 슬픈 어이없는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하자.

그럼 요새 사람들은? 이 고집불통에 미개인(?)인 나는 아직 옛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여름에는 3~4일에, 겨울엔 일주일에 한 번꼴로 머리를 감는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으레 아침마다 머리를 감는다. 이 늙은이가 영 모자란다면 젊은이들은 한참 넘친다. 지나침은 못 미침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을 기억할져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미생물과 더불어 살지 않을 수 없다. “숲은 더불어 이뤄진다.”라고 하듯이, 우리 살갗에는 세균들이 삶의 터전으로 삶고 바글바글, 득실거리니 말해서 ‘열대우림 생태계’를 빼닮은 ‘피부 생태계(skin ecosystem)’이다. 그러나 피부 면역력이 떨어지면 세균은 털구멍(모낭, 毛囊, hair follicle)에 여드름을, 곰팡이는 발과 머리에 무좀(athlete's foot)이나 비듬(dandruff)을 생기게 한다. 

세균들은 피부 중에도 기름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콧구멍․콧등 옆․귓바퀴 아래․등짝과 땀이 나서 늘 습기가 차는 손가락․발가락 사이나 겨드랑이에 많다. 몸에 땀이 나면 어느새 세균들이 염분․아미노산․지방산․젖산이 든 땀을 아미노산이나 프로피온산(propionic acid), 이소발릭산(isovaleric acid) 등으로 분해하면서 번식하니 퀴퀴하고 신 냄새를 풍긴다. 그러나 땀에 든 젖산(lactic acid)이나 이론 세균들 탓에 피부가 약산성(pH 4~4.5)을 띠어 해론 세균이 발을 붙이지 못한다. 

조금 덧붙이면, 피부 미생물들은 피부 건강을 돕는데, 일례로 피부에 사는 Staphylococcus epidermidis라는 세균은 박테리오신(bacteriocin)을 만들어 다른 세균을 죽인다. 한 마디로 피부 생태계의 미생물들도 끼리끼리 밀림생태계처럼 ‘먹이와 공간(food and space)’을 두고 약육강식을 하기에 죽기 살기로 싸운다.

결론이다. 흔히 ‘때’라 부르는 15~20층의 죽은 각질세포가 모인 각질층(角質層, keratin 층)은 중요한 피부보호 장친데, 비누칠로 그만 녹여버린다. 그럴뿐더러 케라틴층을 때수건으로 싹싹 문지르면 세균은 물론이고 까딱 잘못하면 생살까지 벗겨버린다. 하여, 옛날에 목욕탕 다녀오면 가슴팍이나 빗장뼈(쇄골, 鎖骨) 부위를 비롯하여 여기저기가 따끔거렸지. 암튼 늘 있는 토박이 공생세균(共生細菌)을 홀랑 날려버렸으니 다른 병원균이 잽싸게 피부를 공격한다. 그래서 우리는 비누나 수건을 쓰지 않아 결단코 살갗에 사는 세균들을 보살펴 돌봐야 한다.

그러고 보면 목욕은 자주 하지 않고, 몸을 씻더라도 비누를 적게 쓰는 것이 옳다. 아토피 같은 피부병은 살갗을 너무 청결히 한 탓에 생기므로 어릴 때부터 흙도 뒤집어써서 살갗의 저항력(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백번 옳다. 그리하여 나는 학생들에게 늘 “자식을 지저분하게 키우시게나.”하고 신신당부하는 얼간이 선생이었다.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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