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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고전]최재석의 [한국가족제도사연구](1983)
[우리시대의고전]최재석의 [한국가족제도사연구](1983)
  • 김혜경 / 한신대 강사·사회학
  • 승인 2001.07.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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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24 15:39:41
 ◇ 최재석 고려대 명예교수 (기사 말미 약력 참조)

한국가족을 통사적으로 서술한 몇 권의 저술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최재석의 ‘한국가족제도사연구’는 내용적 사실의 중요성이나 방법론적 의의, 그리고 현재적 연구에 주는 함의면에서 단연코 우리의 주목을 끌며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저서라고 생각된다.

흔히 한국사회의 특성으로 강한 가족주의가 지목되며, 그것의 기본적 속성으로 부계적 성격, 직계가족적 규범 등이 거론되고 그것은 또한 한국의 ‘전통’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재석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가족에 있어 부계성, 직계가족의 형태란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미 고전적인 발견이 된 것처럼 그것은 조선조 후기 이래의 현상이라고 한다. 이 책은 상속제도를 중심으로 가족형태, 혼인거주 유형, 친족의 범위, (부계)씨족집단의 존재여부와 같은 가족제도의 다양한 측면들을 신라, 고려, 조선이라는 구획을 넘어서면서 유기적, 총체적으로 파악한다. 그 결과 최재석은 한국의 가족, 친족은 부계적 요소와 비부계적, 非單系的 원리가 공존하던 신라시대로부터 점차 부계적 요소가 강화되는 방향에로의 변화를 거치며, 드디어 조선조 중기 이래 강한 부계중심주의의 가족제도에로의 변화를 기록하여, 재산상속제도에서의 장자우위, 봉제사에서의 장자단독봉사, 양자제의 보편화 등 부계씨족집단의 형성을 초래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조선 前期의 분재기나 호적자료를 통해 발견되는 아들 딸의 (재산)균분상속의 관행은 비부계적 제사상속을 통한 윤회봉사, 처가집에 함께 사는 서류부가혼과 같은 혼인거주유형, 친가와 외가간에 親疎의 차별이 없는 喪禮나 친족범위 등 가족생활 전반의 특성과 일관된 맥락하에 놓인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적지 않은 논쟁의 여지를 가진 것으로서, 예컨대 신라시대 왕위계승은 그 성씨변동에도 불구하고 최재석의 주장과는 달리 근본적으로 부계적 원리에 기반한 것이라고 지적되기도 한다. 고려시대 여성의 지위도 최재석의 연구에서와는 달리 남편에 대한 예속의 흔적 또한 많이 가지고 있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한 연구의 진전은 이후의 역사연구자들이 담당할 몫이겠으나, 여기서 주목을 끄는 부분은 내용 그 자체보다는 이 책의 방법론이다. 최재석은 자신의 독특한 역사연구방법론으로서, 그리고 고대사와 같이 부족한 사료를 보충하는 대안적 방법론으로서 맥락적 해석, 법제와 실제 사이의 괴리, 그리고 이질적 가족원리나 제도들의 공존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실제로 어떠한 시대이건 하나의 가족원리가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계적인 원리와 비부계적인 원리가 공존하며, 가족제도의 다양한 영역들에 대해 각기 차별적인 원리들이 작동할 수도 있다. 또한 법제적인 가족과 현실상의 가족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 속에서 매일 검증되고 있는 문제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처럼 당연히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열려진’ 눈일 것이다. 최재석은 부계중심적 조선후기와는 다른 비부계적 가족현상이 발견되었을 때 전자를 ‘전형’으로, 후자를 ‘변형’으로 취급하여 전자의 원리를 보편화하기보다는, 법제와 현실 사이의 괴리, 모순적인 가족원리의 공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당대의 다른 가족관련 제도들과의 연관성(맥락성) 하에서 특정 역사시기의 가족제도를 정의하고자 했다고 보인다. 바로 이러한 시각이 부계로 단일계보화된 ‘전통적’가족이라는 우리의 ‘전통적’ 시각을 의심할 수 있게 하는 연구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물론 그의 가족제도사 연구에도 부족한 점이 없지는 않았다. 특히 사회학, 역사학이라는 학문경계를 넘나들며 적극적인 의견개진을 하는 그의 작업 스타일은 한편에서는 역사적인 고증의 취약성으로 ‘아마추어 사학자’라는 오해를, 혹은 거시적 변동요인에 대한 설명부족으로 “사회학적이 아닌 연구”라는 등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은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역사분석, 동시에 역사적 기반에 근거한 사회분석을 지향하는 속에서 불가피하게, 과도기적으로 발생한 한계로는 볼 수 없을까.

이제 이 책이 간행된지 거의 20년이 된다. 최근 역사분석에서 탈근대적 패러다임이 확산되면서 소위 역사적 ‘사실’의 확고부동한 지위가 충분히 불안정한 것일 수 있음이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이미 20년전 최재석의 연구는 사회구성의 부계성이라는 당연시된 ‘사실’을 의심할 수 있는 분석적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최재석 (1926 ∼ )
1926년 경북 경산 출생으로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대 교수, 고려대 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사회학회 회장, 농촌사회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 가족에 관한 수편의 논문과 일본 고대사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한국농촌사회연구’ ‘한국고대사회사 연구’ ‘한국가족연구’ ‘일본고대사 연구 비판’ 등이 있으며, 왕성한 저술활동으로 지난해에는 ‘고대 한국과 일본열도’를 펴냈다. 서울시 문화상과 한국사회학회 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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