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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불가리아가 유럽으로 회귀하면 러시아는 가스관을 잠근다
[글로컬 오디세이] 불가리아가 유럽으로 회귀하면 러시아는 가스관을 잠근다
  • 이하얀
  • 승인 2022.09.07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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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이하얀 한국외대 EU연구소 책임연구원
러시아 가스관 대책회의를 하는 불가리아 각료들. 사진=불가리아 대통령 공식 홈페이지

2022년 6월 28일, 키릴 페트코프 불가리아 총리는 성명을 통해 자국 내 러시아 외교관 70명에게 7월 3일 자정까지 출국할 것을 명령했다. 불가리아는 지난 몇 년 간 상호주의에 근거해 모스크바 주재 불가리아 외교관 수와 동등하게 러시아 외교관 규모를 축소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으며,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이들을 추방했다. 2019년 10월에는 군사 기밀 수집 혐의를 가진 러시아 외교관 8명을, 2021년 4월에는 무기고 폭파 사건 혐의로 외교관 1명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 외교상 기피인물)’로 지정했다. 이번 조치는 최근 몇 년간 불가리아가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한 최대 규모이며 발칸 유럽 전체를 통틀어 이례적인 일이다. 

우방에서 대립관계로

역사적으로 불가리아는 ‘아버지와 아들 국가’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소련 최고의 우방국이었다. 소련은 불가리아에 저렴한 가격으로 석유를 수출하며 대소관계의 친밀함을 유지하였다. 고르바쵸프가 등장하기 전까지 불가리아 외교 정책의 기본은 ‘소련과의 우호 협력’ 이었다.

하지만 소련 해체 후 불가리아는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유럽으로의 회귀(Return to Europe)’, 즉 EU 가입을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EU가입 이후에도 보조금을 원활히 받고 솅겐 조약과 유로존에 가입하기 위해 EU의 기조에 그 어떤 회원국보다도 적극적으로 발맞춰 행동하고 있다.

하지만 EU 회원국이 됐다고 해서 러시아를 완전히 등질 수도 없다. 불가리아는 러시아에 대한 천연가스 의존도가 90%에 달한다. 연간 30억 입방미터(bcm)의 가스를 러시아에서 수입하며 이 중 90%는 가스프롬에서, 0.5bcm은 아제르바이잔에서 들여온다.

또 불가리아 의회에 친러 성향의 정치인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러시아와의 강한 문화적·역사적 결속을 하루아침에 끊어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1991년 이후 불가리아 내에서는 친러 세력과 친서방 세력 간 끊임없는 마찰이 있었고 불가리아는 EU와 러시아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페트코프 내각의 개전 이래 유럽연합(EU) 대러 제재 지지, 우크라이나 지원 등 잇따른 대러 강경 기조가 더욱 이례적이다. 그는 2022년 4월 말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를 만나기 위해 키예프를 찾아 우크라이나 전기를 불가리아에 보내는 것, 향후 발칸반도 횡단 가스 파이프라인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문제등을 논의했다. 이는 불가리아의 에너지 공급선 다변화에 대한 해결책으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4월 마지막 주부터 가장 강력하게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대해 천연가스 공급을 차단하였다. 러시아는 불가리아가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지 않은 점을 가스 공급 중단의 이유로 들었다.

페트코프 정부는 가스 공급선을 다변화 중이기 때문에 타격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천연가스 비축량은 한 달 분량뿐이고 아제르바이잔에서 생산되는 가스를 그리스로부터 직접 공급받을 수 있는 인터커넥터가 7월 초 완공된다 하더라도 연간 10억 입방미터의 가스를 확보할 수 있을 뿐이다. 

친러 진영에 무너진 불가리아 총리

페트코프 총리와 라데프 대통령은 러시아 가스프롬의 루블 지불 요구를 거부한 것,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전달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라데프 대통령은 총리의 친우크라이나 행보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총리는 대통령이 포퓰리즘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며 전쟁만큼 위험한 것이 정치적 위기라고 언급하며 이럴 때일수록 러시아의 에너지 패권에 휘둘리지 않고 불가리아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가리아가 앞장서서 유럽연합과 나토의 회원국들과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단일행동을 보일 것을 요구했다. 대통령과 총리간 의견 불일치로 인해 불안한 정세가 이어졌다.

결국, 대러 강경 기조를 유지한 키릴 페트코프 총리는 6월 27일 자신의 연립정부 총사퇴서를 국회에 제출하였다. 중도우파 성향의 야당인 유럽발전시민당(GERB)가 정부가 공공 재정 및 경제 정책에 실패하고 치솟는 물가를 잡지 못하고 있다며 연정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했고 불가리아 의회는 6월 22일 페트코프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찬성 123표, 반대 116표, 기권없음)  

장기화되는 러-우 사태로 인해 흔들리는 불가리아  페트코프 총리는 과반 의석을 다시 확보하지 못할 경우 실각할 위기에 처했다. 만약 원내 제2, 제3 정당의 조각 시도도 실패하면 불가리아는 1년 만에 또다시 총선을 치러야 한다.

첨예한 갈등 양상 속에서 앞으로 불가리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과 북마케도니아와의 분쟁 해결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불가리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 될 가능성을 인지하고 국가 내부 합의와 국제사회의 공조 및 중재를 통해 난국을 타개해야 할 것이다. 

 

이하얀 한국외대 EU연구소 책임연구원
불가리아 국립 소피아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대 EU학과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EU융합전공과 그리스불가리아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다중언어정책과 회원국의 언어 다양성 분석: 불가리아 사례를 중심으로」(2020) 등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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