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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계가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인문사회계가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 윤희상
  • 승인 2022.09.0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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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윤희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전공 박사과정 

모두 할 말이 많았다. 지사(志士)적 선언이나 간곡한 읍소의 현장으로 치부될 수 없는 자리였다. 각기 다른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인문사회계 연구자들은 위태로운 현실 안에서 지속가능한 연구의 근본 바탕을 찾고자 하는 소박하지만 단단한 믿음으로 모였다. 지난 7월 21일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주최로 고려대에서 개최된 ‘대학원생과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간담회’에 관한 이야기다. 간담회 안팎에서 나는 미래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인문사회계가 맹목적인 ‘기능성’이나 ‘생산성’에의 경도로 인해 얼마나 천대받고 있는지를 몸소 체감했다. 이 글은 인문사회계가 맞닥뜨리고 있는 위험과 위협에 대한 짧은 보고서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가장 먼저 인문사회계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몰이해와 차별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자연스레 대학원생의 노동권 문제와 연계된다. 작년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드러났듯, 이공계가 국가 R&D 표준모델로 자리 잡으면서 인문사회계 연구자들은 마치 ‘유령 노예’인 양 그 존재가 망각되어갔다. 「학술진흥법」 시행규칙에 따른 인문사회 영역의 학생인건비 지급기준을 보면, 학사과정 100만 원, 석사과정 180만 원, 박사과정 250만 원을 기준으로 과학기술 분야는 기준 “이상”을, 인문사회 분야는 기준 “이하”를 지급하게 되어있다.

이 ‘기준 이하’라는 황당한 규정은 노동 시간과 강도를 고려하지 않은 인건비 지급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리하여 인문사회 분야의 실질 학생인건비가 월 3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연구 현장의 대학원생에게만 적용되는, 분야에 따라 ‘최저’가 되었다가 ‘최고’가 되는 인건비 규정은 분명 ‘차이’가 아닌 ‘차별’이며, ‘소외’가 아닌 ‘괄시’다.

연구보조원의 처우 개선과 노동에 대한 제도적 인정 또한 시급하다. 현재 연구보조원은 연구단에서 해야 할 연구실무와 행정업무 모두를 맡는 데다 연구논문까지 요구받고 있다. 구조화된 인력착취 속에서 수많은 연구보조원은 신음하며 보이지 않는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기실 인문사회계 대학원생의 연구노동 환경이랄 것 자체가 열악하고 치사하기 짝이 없다. 이제는 소모되어가는 우리가 푸념만을 반복할 때가 아니라 실질적인 대응을 통한 변화를 마련해야 할 때다. 연구자 기본소득, 간사 표준 임금 등 다양한 구상을 마련해야 하고, 인문사회계와 이공계 간 가공할 예산 격차를 낳는 예산 편성의 틀 자체를 심문해야 한다. 

이 짧은 보고서가 난삽해 보인다면 그건 얼마간 나의 역량 부족 때문이겠지만, 한편으로는 국가(한국연구재단), 대학, 산학협력단이 학회나 연구자와의 비대칭적 관계를 심화시키며 각자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학회의 과도한 양산과 그에 따른 학술지 난립과 부실화의 저변에는 학술지 등재제도와 학술지 평가제도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존재한다.

국가는 연구비를 지원하여 양적 성과만을 요구하고, 대학은 이에 매달려 논문 편수를 통한 차등 평가에 매몰된다. 결과적으로 책을 써내야 할 학자들이 한계를 넘어선 ‘논문 차력쇼’에 가담해야 하는 형국이다. 이 괴이한 관학협동체제의 악순환은 논문의 양적 비대화와 질적 저하뿐 아니라 연구윤리의 붕괴로도 이어진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약탈적인 표절 논문을 은폐하려는 대학의 시도는 상기한 구조적 문제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남은 이야기는 아직도 많다. 대학의 ‘손실’만을 따지며 학술연구교수 B유형 등의 사업에 대한 이해도를 갖추지 못한 산학협력단의 태도나, 가난을 면죄부로 학술주권과 학술공공성에 대한 책임의식을 저버린 학술단체 등에 대해서도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분절화·다극화된 인문사회계 내부를 조직하여 연구자들의 연대 형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인문사회계 연구자들이 언제까지고 위로부터의 교통정리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자정과 쇄신을 강력하게 요청하며 우리의 미래를 도모해야 한다. 가난할지라도 비루하진 않은, 자부심 가진 우리들이고 싶다.

 

윤희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전공 박사과정 

고려대 국문과에서 「전시체제기 피식민 ‘신체’의 구성과 문학적 증언 연구-중독, 장애, 오염의 상황을 중심으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40년대 동아시아에 초점을 맞추어 폭력에 직면한 피식민자의 능동성을 읽어낼 방법론을 생활사·풍속사적 관점에서 모색해보고자 한다. 최근에는 연구와 운동의 접합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며, 늘상의 분노를 재미로 환치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현재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고려대 분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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