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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03] 귀가 스스로 청소한 흔적, 귀지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03] 귀가 스스로 청소한 흔적, 귀지
  • 권오길
  • 승인 2022.08.30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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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지
귀지는 딱딱하게 마른 건성 귀지와 지방 기가 많으며 눅진눅진한 습성 귀지로 나뉜다. 동양인이나 인디언들은 건성이 많고, 백인이나 흑인은 습성이 더 흔하다고 한다. 사진=위키미디어

까마득한, 반세기도 훨씬 더 지난 대학생 때의 일이다. 연식(年食)이 지긋한 여승(女僧) 한 분이 자상한 얼굴로 한참 날 뜯어보더니만 “학생은 귀만 좀 컸으면 나무랄 데가 없는데…”하고 스쳐 지나가는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왜 그 말이 이렇게 오래 남아 내 귓가를 맴도는 것일까? 

스님이 말한 ‘귀’는 이각(耳殼)이라고도 부르는 바깥귀(외이, 外耳), 즉 ‘귓바퀴’를 말한다. “내 귀는 하나의 조개껍데기 그리운 바다의 물결 소리여!”. 귓바퀴는 살짝 안으로 말리면서, 안쪽은 쪼글쪼글 구겨진 주름이 잡혀 음파 모음에 중요하다. 그래서 밀랍(wax)으로 주름 새를 말끔하게 메꿔보면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가끔 귓바퀴에 주름이 없는, 조개 모양으로 밋밋한 경우 수술까지 한다.

그리고 숫제 귓바퀴가 없이 태어나는 소이증(小耳症, 귀의 흔적만 있음)이나 무이증(無耳症, 귀의 형성이 전연 안 됨)도 있다. 그리고 개나 당나귀 따위는 귓바퀴를 쫑긋 세워서 이리저리 소리가 오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귓바퀴를 움직이는 동이근(動耳筋, 세 인대와 여섯 근육으로 됨)이 퇴화하여 흔적기관으로 남았지만 더러는 그것을 좀 움직이는 이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귓밥(귓불, 이수, 耳垂)이 두툼하고 길게 늘어진 귀를 ‘복귀’, ‘부처님 귀’라 하여 한결 좋게 보지만 서양인들은 그런 귀를 ‘당나귀 귀(donkey ears)'라 불러 ‘바보’로 취급한다. 서양 만화에 그려진 당나귀는 얼간이, 고집통을 비꼬는 것이다. 하여, 필자의 작되 작은 귀는 서양에서는 오히려 복귀로 톡톡히 대접받는다!

그런데 남자만 귓구멍 어귀에 굵은 털이 나는데, 이렇게 남녀 한쪽에서만 생기는 유전적인 특징을 從性遺傳(sex-linked inheritance)이라 하며, 대머리, 적록색맹, 혈우병들도 모조리 남자에 많이 생기는 유전이다.

음파는 귀의 입구에서 고막에 이르는 외이도(外耳道, 겉귀길)를 타고 들어가 고막(鼓膜 귀청, eardrum/tympanum)을 진동한다. 겉귀길(귓구멍)은 길이 2.5cm, 지름 0.6cm로 단면은 난원형이면서 S-자형의 관으로, 거기에는 가는 털(이모, 耳毛)과 이도선(耳道腺), 피지선(皮脂腺)들이 있으며, 외이도의 바깥쪽 3분의 1은 물렁뼈이고, 안쪽 3분의 2는 딱딱한 뼈다. 이도선은 땀샘이 변형된 것으로서 끈적거리며 회갈색에 가까운 귀지(earwax)를 만들고, 피지선은 반드르르한 기름기를 분비하여 외이도를 마르지 않게 한다. 외이도는 전체적으로 보아 모래시계(hourglass/sand glass)를 닮아서, 고막 근방은 약간 잘록해지면서 아래로 처진다. 

강에서 첨벙첨벙, 한참 멱을 감고 나면(쑥을 손바닥으로 싹싹 문질러 꼭꼭 끼었지만) 물이 새 들어 외이도에 흥건히 고여 꿀렁꿀렁, 멍멍하여서, 머리를 젖히고 방방/길길이 뛰거나 툭툭 치며 버둥버둥 호들갑을 떨어보지만 끄떡 않다가 뒤늦게 저절로 뜨끈한 물이 주르르 홀랑 빠지는 것을 다들 경험했으리라. 어~~~시원하다, 이제 살았다.

본론으로 귀지 이야기다. 귀지는 귓구멍 속에 낀 때다. 외이도의 땀샘이나 이도선의 분비물과 떨어져 나온 고막의 일부 따위가 만든 때자국이다. 귀지는 외이도의 피부를 보호하고, 먼지를 닦아내며, 물이나 곤충 같은 것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세균과 곰팡이를 죽인다. 그러나 귀지가 너무 커지면 고막을 누르거나 외이도를 틀어막아 청각을 방해한다. 그런데 귀지를 빼내거나 물을 닦을 요량으로 부득부득 귀이개나 면봉(綿棒)을 잘 못 써서 까딱 잘못하면 고막에 구멍을 낼 수 있다. 또 상처가 나는 날이면 지독하게 낫지 않는, 세상에서 제일 가렵다는 외이도염이나 귀진균증(~眞菌症) 같은 고질병에 걸린다. 한 번은 집사람이 귓병으로 하도 애를 먹기에, 서울대학병원 이비인후과의 제자 교수에게 전화했더니만, 퉁명스럽게도 “자기 팔뚝보다 작은 것은 귀에 넣지 말라”는 막말을 한다. 

귀지는 딱딱하게 마른 건성 귀지와 지방 기가 많으며 눅진눅진한 습성 귀지로 나뉜다. 동양인이나 인디언들은 건성이 많고, 백인이나 흑인은 습성이 더 흔하다고 한다. 귀지는 외이도의 바깥 3분의 1 자리의 피지선에서 만들어지며, 그 60%가 케라틴, 12~20%는 지방산과 라이소자임, 6~9%는 콜레스테롤 성분으로 귀지 특유의 냄새가 난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비듬이 늘듯이 귀지도 많아진다고 한다. 

참으로 사람 몸은 들여다볼수록 신비스럽다! 외이도가 스스로 청소한다니 말이다. 다시 말해서 귀지는 항상 밖으로 밀려 나오게 되어있단다. 입을 놀려 턱이 움직이면 귀지가 “컨베이어 벨트(conveyor belt)를 타고, 손톱이 자라는 속도”로, 바깥으로 밀려 나온다고 한다. 모름지기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하니 내일 죽을 것처럼 억지로 귀지를 후벼 파내지 말 것이다.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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