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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인간을 구원할까…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를 넘어
경제학은 인간을 구원할까…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를 넘어
  • 이민주
  • 승인 2022.09.02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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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창조적 파괴의 힘』 필리프 아기옹·셀린 앙토냉·시몽 뷔넬 지음 | 이민주 옮김 | 에코리브르 | 578쪽

창조적 파괴라는 경제개념을 사회적으로 확장
팬데믹 이후 친환경·친인간적 경제활동 떠올라

>>> 이 책 보러가기 『창조적 파괴의 힘』

19세기말 유럽에 제국이 존재하던 시대 현재 체코 모라비아 지방에 속하는 곳에서 태어나, 두 세계 대전을 겪고 미국 하버드 대학의 교수로서 생애를 마감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널리 알린 연구자로 알려져 있다. 이는 어떻게 보면 형용 모순이 아닌가 싶은 표현이다. 

 

조지프 슘페터 전 미국 하버드대 교수(1883∼1950)와 필리프 아기옹(오른쪽)은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 사진=위키백과, 콜레주 드 프랑스.

창조적 파괴와 밀접히 관계있는 경제주기 이론과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의 이론화에도 크게 기여한 슘페터는 자본주의 체계가 성장하는 데 핵심적인 창조적 파괴가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말로를 이끌 것이라 보았다. 자본주의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파괴적인 세력’인 창조적 파괴와 기업가 정신의 발휘를 필요로 하지만, 바로 이 창조적 파괴의 과정으로 인해 그때까지 만들어 놓은 자본주의 체계 자체가 위협을 받고 결국 제도 차원에서 붕괴하고 말 거라는 게 슘페터의 예상이었다. 

필리프 아기옹 교수가 이끄는 3인의 집필진이 펴낸 『창조적 파괴의 힘』은 바로 이러한 슘페터의 결론을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캐나다 경제학자 피터 호윗과 함께 1990년대 슘페터식 패러다임이라는 이론을 고안한 저자 필리프 아기옹은 프랑스의 신진 경제학자 셀린 앙토냉, 시몽 뷔넬과 함께 코로나 시대 직전에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창조적 파괴’를 보여주는 실례로서 코로나 19 팬데믹 만한 사건이 있을까? 슘페터가 겪었던 사건들보다도 전 세계가 일관되게 경험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 충격을 아직 제대로 헤아릴 수도 없으니 말이다. 개인차원에 그친 게 아니라 기업이나 국가 차원에서도 누군가에게는 ‘파괴’가 더 크게 다가왔고, 누군가에게는 ‘창조적’인 충격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이러한 혼란을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한 기존 체제 뒤흔들기라고 이해한다면 창조적 파괴라는 경제학적 개념을 사회적으로 더욱 확장하는 일도 가능하다.

 

특히나 이 책은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아주 구체적인 사례들과 다양한 분야로의 접목을 통해 창조적 파괴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왔으며 또 앞으로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지나친 자유주의 경제와 과도한 사회보장 정책으로 양분된 경제정책 논리 사이에 대안으로 떠오른 ‘플렉시큐리티(노동의 안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시장 모델)’ 같은 개념만 보더라도 저자들은 11장의 논의를 통해 이 개념이 탄생한 유럽 국가들, 특히 덴마크의 실제 적용 사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최근 사회의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 개인의 행복과 경제활동의 병행이라는 화두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경제학자로서 행복, 복지, 개인의 만족 등과 같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에 대한 논의를 펼치기가 어렵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집필진은 그러한 문제를 성장이나 혁신이라는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우리 시대에서 차치할 수 없는 문제로 보았기 때문에, 경제학에서 가능한 양적 방법론을 통해 이를 논의한 것이다.

이 책은 기존의 정통적인 경제학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국가 경제의 성장과 그 궤도, 전 세계 경제의 자유화, 관세 정책, 혁신에 있어서 연구개발의 중요성 등의 이야기를 심도 있게 논하는 경제서다. 하지만, 이 책의 진가는 팬데믹 전후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세상에 중요하게 대두된 친환경적인 또 친인간적인 경제 혹은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경제학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개인의 행복과 복지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은 어떻게 고민할 수 있는지, 경제 성장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또 이를 위한 창조적 파괴라는 힘은 어떻게 해야 가장 건설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제학자로서의 분석과 제언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탄탄한 경제이론과 성장과 혁신에 대한 연구기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공동운명체가 된 지구 전체의 인간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느껴지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갈 앞으로의 21세기 사회에서 경제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길안내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민주 방송대 강사
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한 후 개발학과 현대 구호활동의 역사로 각각 영국과 프랑스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방송대에서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인문사회분야 서적 번역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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