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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시간을 깨자…미래는 바꿀 수 있다
‘얼어붙은’ 시간을 깨자…미래는 바꿀 수 있다
  • 강형구
  • 승인 2022.08.31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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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 리 스몰린 지음 | 강형구 옮김 | 김영사 | 492쪽

시간도 공간처럼 기하학적으로 표상되며
과거-현재-미래의 차이가 사라진 듯 보여

우리는 매일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예를 들어 오늘도 나는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오전 7시20분쯤 식사를 하고, 오전 8시40분쯤 세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켰다. 시간보다 더 우리에게 생생하고 분명하게 느껴지는 물리적 실재가 있을까? 그런데 이미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우리가 감각으로 느끼는 변화와 생성은 오류이자 착각이라 주장한 바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불변하는 진리가 오직 이성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고 보았다. 피타고라스, 플라톤 또한 파르메니데스와 같은 관점을 갖고 있었다. 이성에 의해 파악되는 수학적이며 불변하는 진리의 세계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시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인간의 불완전한 감각 때문이다.

이미 파르메니데스의 시대부터 이와는 반대로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었다. 헤라클레이토스에 따르면 모든 것은 변하며 다만 이 변화를 통제하는 로고스가 있을 뿐이다.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비슷한 주장을 했다. 형상은 존재하나 이는 오직 질료 속에서 파악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비로소 사물들 속에 숨어 있는 질서를 파악할 수 있으며, 이와 분리되는 별도의 불변하는 비시간적 진리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과 같은 사고의 두 노선 중 어떤 관점이 옳을까? 과연 시간과는 무관한 불변하는 진리의 세계가 존재할까? 아니면 세계에 대한 진리는 오직 시간 속에서만 파악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변할까, 변하지 않을까

시간의 실재성에 관한 이토록 오래된 사유의 전통은 21세기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리양자중력 이론의 창시자로서 널리 알려진 이론물리학자 리 스몰린의 책 『시간의 물리학』(원제는 Time Reborn)은 시간의 실재성을 강하게 긍정한다. 흥미로운 것은 스몰린과 함께 고리양자중력 이론을 창시한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경우 스몰린과 달리 시간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이 일종의 ‘창발된(emerged)’ 현상이라고 본다. 로벨리에 따르면 물리적 실재를 기술하는 근본적인 수학 방정식 속에서 시간을 찾을 수 없는 까닭에, 시간은 기초적인 수준에서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며 열과 같이 거시적인 규모에서 인간에게 나타나는 경험적 현상일 뿐이다. 동료이면서 친구이기도 한 스몰린과 로벨리 사이의 이와 같은 지적 긴장은 전통적이면서도 흥미롭다.

그렇다면 왜 스몰린은 시간의 실재성을 긍정하는 것일까? 고등학생 시절 아인슈타인의 자서전적 글을 읽은 후 깊은 감명을 받아 세속을 초월하고 싶었던 스몰린은 ‘불변하는 진리를 기술하는 방정식’을 찾고자 물리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가 오랜 물리학 탐구 결과 다다른 결론은 처음에 품었던 뜻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스몰린은 우리가 가진 모든 물리학 이론이 일종의 ‘상자 속 물리학(Physics in a Box)’으로서, 오직 국소적이고 이상화시킨 세계의 일부분에만 적용되는 ‘효과적 이론’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러한 ‘효과적 이론’ 속에서 시간이 공간과 마찬가지로 기하학적으로 표상됨으로써, 과거-현재-미래의 차이가 없어진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수학적 표상 속에서 시간이 ‘얼어붙은’ 것이다.

하지만 스몰린이 볼 때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수학적 표상은 물리적 실재를 표현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임이 분명하지만, 이 도구는 불완전하며 물리적 실재 모두를 온전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스몰린은 현대 우주론이 최근 심각한 난점에 봉착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시간의 실재성’을 제대로 이론 속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스몰린은 로벨리와 더불어 물리학에 관한 ‘관계론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로벨리와 달리 근본적인 수준에서 시간의 실재성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며 물리학의 법칙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진화한다고 본다. 이와 더불어 스몰린은 물리학 이론의 과학성 평가 기준으로서의 반증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표명한다. 스몰린이 볼 때 자신이 틀렸음을 보일 수 있는 예측을 제시하지 않는 물리학 이론은 이론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저자 스몰린은 현대우주론이 시간의 실재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미지=픽사베이

 

 

시간의 실재성이 현재를 충실하게 한다

스몰린은 시간의 실재성을 긍정하면 우리가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 또한 크게 달라질 것이라 주장한다. 만약 불변하는 법칙에 따라 과거-현재-미래가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라 진정 시간이 실재하고 우리가 현재의 행위를 통해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미래를 지금보다 더 나아지게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처럼 시간의 실재성을 바라보는 관점이 갖는 의의는 단지 물리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친숙하게 느끼는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계 속 인간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우리가 갖는 전체적 그림이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의 실재성 문제는 물리학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시간과 관련된 여러 저작이 출판된 바 있다. 카를로 로벨리의 여러 책이 출간되었고, 션 캐롤과 리처드 뮬러의 책 또한 번역되었다. 시간의 실재성에 관한 논쟁은 지금도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므로, 독자들은 여러 저자들의 책들을 두루 읽으며 시간의 실재성과 비실재성을 주장하는 양편의 입장을 천천히 살펴본 후 어느 입장이 더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강형구 
국립대구과학관 선임연구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과학철학을 연구했고, 현재 서울대학교 과학학과에서 논리경험주의 과학철학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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