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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사, ‘남양군도·동남아시아’도 살필 때”
“한국근대사, ‘남양군도·동남아시아’도 살필 때”
  • 김재호
  • 승인 2022.08.31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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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과 식민주의’ 출간, 허영란 울산대 교수
일제의 남진론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강조

“한국의 근대사는 한국, 중국,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범주를 넘어서기 어려웠다.” 최근 『남양과 식민주의』(사회평론아카데미)를 출간한 허영란 울산대 교수(역사문화학과·사진)는 책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일제라는 식민주의가 한국의 역사학계에 일제 식민사학에 반하는 탈식민주의에만 매몰되도록 했다는 지적이다. 허 교수는 “제국주의 시대는 과거가 되었지만 그것이 만들어놓은 학문의 전통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래서 일제의 한반도와 만주, 중국대륙에 대한 북진과 남양군도와 동남아시아 침략인 남진을 동시에 총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허영란 울산대 교수는 일제의 북진론과 더불어 남진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사회평론아카데미

허 교수는 지난 24일 <교수신문>과 서면인터뷰에서 “일본의 서구에 대한 열등감과 아시아에 대한 자기모순적 인식을 파악하려면 근대 일본의 남진론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라며 “식민지 조선은 일제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내건 아시아 연대의 명분을 공유할 것을 요구받았고, 역설적으로 그 명분 아래 또다시 전쟁에 동원되는 피해를 당했다”라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오키나와와 남양군도,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조선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라며 “그런데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그들이 어떤 운명에 처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오늘날 동남아시아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요한 교류 대상이 되었지만, 그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여전히 무지하고, 동남아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의 국내 유입이 늘어나면서 심지어 ‘우월감’조차 갖는다”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허 교수는 “강대국이 아닌 동남아시아 등지의 이웃 국가들에 대해 수평적 태도와 진지한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1919년 당시 남양군도의 일본위임통치 지역. 그림=사회평론아카데미

*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일제의 남진론 연구를 통해 식민주의 담론을 총체적으로 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동남아시아나 남양군도(태평양제도)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에 대한 내용 이외에 무엇을 더 알아가야 하는가.

한국의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심지어 학계조차도 식민주의를 마치 일본제국주의의 전유물인양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에 반해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주의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며, 여전히 자국 중심적이고 일국적인 인식체계와 서구를 ‘보편’으로 설정하는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아마도 ‘반일 민족주의’를 종족주의라며 극단적으로 공격하는 학자들도 그런 사고를 비판할 텐데요, 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그것이 당대의 보편적 세계 질서였기 때문에 잘못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야를 확장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서양사나 일본사의 관점에서 극단적으로 한국사를 해석하는 것이지요.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지만, 저는 국민국가 사이의 갈등이 있고 민족문제가 존재하는 한, 또 그것이 당대 역사를 해석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것은 상대화시켜야 할 인식이지 전적으로 폐기하고 근절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근대 식민주의는 19세기 중반에 형성되어 20세기 중반에야 해체된 침략적 세계질서이며, 일본의 식민주의는 유럽 제국주의가 구축한 세계 체제에 대응하는 근대 일본의 구성물입니다. 일본은 한편으로 서구 열강의 이념을 모방하고 경쟁하며 눈치를 보았고, 다른 한편으로 오랜 역사적 관계 맺어왔던 이웃 국가를 침공하기 위해 담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일본적 식민주의를 구성했습니다. 일본의 남진론은 그런 일본 식민주의의 다면적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일본의 서구에 대한 열등감과 아시아에 대한 자기모순적 인식을 파악하려면 근대 일본의 남진론을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또한 일본의 남양, 남방 인식은 일본 식민주의 안에서 한국의 모순적 위치를 ‘다른’ 각도에서 보여줍니다. 그것은 한국-일본의 이항 대립적 인식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식민지 조선의 위치, 그리고 당대의 조선인들이 경험했던 모순적 식민주의 질서입니다. 일제의 피해자이면서 그들을 따라 또는 그들을 대행하여 남양,남방으로 ‘진출’하거나 ‘동원’되었던 조선인의 역사에 대한 탐색과 성찰이 함께 이루어져야만 일본 식민주의를 근원적으로 비판하고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일본의 직접 식민지였던 조선이나 대만은 일본 제국주의의 이념과 정책이 내포하는 모순과 균열의 지점을 보여줍니다. 식민지 조선은 일제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내건 아시아 연대의 명분을 공유할 것을 요구받았고, 역설적으로 그 명분 아래 또다시 전쟁에 동원되는 피해를 당합니다. 이런 구도를 이해해야만 오늘날 일본 정부나 극우가 보이는 ‘역사부정’이나 ‘역사왜곡’을 뿌리를 알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역사 증언자들이 사라지면서,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침략과 전쟁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생생한 고통과 혹독한 피해는 옅어지고, 그럴듯하게 포장된 이념과 담론이 기억문화를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일제시기 조선인들의 활동 범위는 일본인들의 그것과 겹칩니다. 오키나와와 남양군도,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조선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그들이 어떤 운명에 처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전전(戰前)에 오키나와로 이주했다가 전시기에 간첩으로 몰려서 피살된 조선인들의 역사를 비롯해, 태평양전쟁 이전에 동남아시아와 식민지 조선의 관계, 남양 또는 남방에 대한 조선인의 인식 등을 다각도에서 연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식적으로는 식민주의 질서가 종식되었지만 구 제국들의 인식과 관점이 여전히 지배력을 발휘한다”라고 『남양과 식민주의』에서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계 노력은 무엇인가.

일본이 2차 대전 이후 남양군도나 동남아시아에 대해 정부나 학계 차원에서 쏟은 공력과 비교할 때, 한국은 ‘무관심’ 내지 ‘무지’ 그 자체로 일관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동남아시아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요한 교류 대상이 되었지만, 그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여전히 무지하고, 동남아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의 국내 유입이 늘어나면서 심지어 ‘우월감’ 조차 갖습니다. 이런 인식과 태도는 일정하게는 일본 제국주의 또는 서구 제국주의의 인식과 관점을 의식도 하지 못한채 수용한 결과가 아닌가 의심합니다. 일본 식민주의의 아시아 인식이 혹여 한국 사회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사회는 지금까지 아시아 인식, 아시아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사유하는 데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남양과 식민주의를 쓰면서 제가 가장 촉구하고 싶었던 것 중에는, 이른바 강대국이 아닌 동남아시아 등지의 이웃 국가들에 대해 수평적 태도와 진지한 관심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이 빈번하게 여행을 하고 활발하게 교역을 하면서도 동남아시아에 대해 무관심하고 그것에 별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사실 자체에, ‘제국’이 아니라 ‘식민지’로서 식민주의를 경험했던 한국 사회의 ‘수동성’이나 ‘피동성’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 학계의 극심한 미국 편향은 비밀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동남아시아’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를 전공으로 선택해서 학자로 생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국 편향에서 벗어나 다원주의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져왔습니다. 한국이 세계 속에서 성장한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하려면 전통적 강대국 외에 이웃 국가들에 대해서도 도구적 인식을 넘어선 인문적 접근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베트남 전쟁기 민간인 피해에 대한 진상 규명이나 한국계 현지 아동의 문제 등 그동안 외면해 왔던 여러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그 연장선에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사안들에 대해서도 학계의 적극적인 연구와 참여가 필요할 것입니다.

△일제 식민사학 극복을 위해 대학사회에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근대 제국주의에 대한 총체적 비판과 반성, 세계사적으로 탈식민주의의 비전을 만들어 가는 연구와 실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형식적으로는 탈식민주의 질서를 만들어 왔지만,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는 ‘신식민주의’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서구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 질서의 위계와 모순이 재생산되어 왔습니다. 이처럼 역사적 경험은 다양한 방식으로 현재를 이루는 기초가 되는데, 한국 사회에서도 일제 식민주의는 극복의 대상이자 근대성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현재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일본에 대한 단선적인 찬반 논란은 넘어설 때가 되었습니다. 세계적 ‘선진국’ 가운데 한국처럼 직접 식민지로서 피해 역사를 가진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그동안 은연중에 미봉해두었던 근대 제국주의 질서와 담론을 총체적으로 비판하고 극복하기 위해 서구 지식 사회와는 차별화된 문제제기를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민국가 차원을 넘어서서 호혜적인 공존의 질서를 형성하고, 환경과 에너지 문제, 기후 위기가 상징하는 공동의 위험을 관리하면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전망하는데 대해서도 의미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식민지 경험과 그 이후의 역사적 경험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작업이 세계사적으로도 새로운 문제제기가 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명료하게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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