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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 수업, 남자들 출입금지의 사연
여성학 수업, 남자들 출입금지의 사연
  • 박수진 기자
  • 승인 2006.03.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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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듀얼 아카데미’ 꿈꾸는 나임윤경 교수

“남성들이 변화시킨 세상이 아니라,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임윤경 연세대 교수(41세, 문화학협동과정·사진)는 여성을 ‘역사쓰기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게 돕는 방법으로 남녀공학 대학 안에서 여학생만 들을 수 있는 수업을 제안한다. 이른바 듀얼 아카데미.

나임 교수는 2004년, 여학생만으로 구성된 ‘여성 커리어와 리더십’ 수업을 진행했다. 그는 이 수업에서 기존 수업에서와는 달리 씩씩하고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 여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고 전한다. 기존 수업에서는 발표를 시키면 꼭 남학생이 먼저 말하고, 토론 시간에도 남학생 참여율이 훨씬 높다. 조 프로젝트를 하게 해도 남학생이 조장을 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모습들이 여학생만으로 구성된 수업에서 바뀐다는 것.

“서로 다르게 사회화됨에 따라 여성과 남성의 가치관, 자신감, 비전, 목표 등이 차이를 보인다면, 대학에서 여학생 남학생을 똑같은 방법으로 교육했을 때 그 차이는 극복되지 않는다”고 나임교수는 주장한다. 그는 ‘예비신부 양성소’로 주류 언론 등에 의해 정형화되어 있는 모 여대 출신 학생들이 ‘물불 안 가리고 일 잘한다’는 평가 또한 많이 받음을 상기시킨다.  “남녀공학 출신 여성들이 대학의 남성중심적 관행과 문화 때문에 자아에 손상을 입는 반면 여대 출신 여성들은 이런 ‘상처’로부터 자유롭게,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어 자기 정체성 확립, 자신감 회복, 자기 긍정에 유리한 측면이 있죠.” 나임 교수가 ‘듀얼 아카데미’를 제안하는 이유다.

실제 ‘듀얼 아카데미’를 경험한 학생들의 반응은 어떨까? 나임 교수가 수업을 들은 학생들을 인터뷰한 결과에 따르면 긍정적이다.

수업에 대해 묻는 질문에 한 학생은 “남학생들이 없으니까 성평등에 대해서도 좀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다”고 답했다. 다른 학생은 “이 수업에서는 내가 어떤 얘기를 해도 남자선배나 동기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졌다”고 답했다.

여학생들만의 수업에 회의적인 학생들도 있다. 바깥의 모든 부정적 요인을 배제하고 다만 여성을 보호하는 ‘온실’ 같다는 것. 이에 대해 나임 교수는 “온실은 따뜻하고 보호받는 곳인 동시에,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 모든 실험을 다 해 볼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한다. 일상의 여러 제약들을 없애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여성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이 어떤 것인지를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듀얼 아카데미가 쉽지만은 않다. 남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어 학교에서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여성학 수업을 개설하면 여학생보다 남학생들이 더 많이 수강신청한다. “이상하긴 하지만, 여학생들이 일상을 계속 성찰하고 회의해야 한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회피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라고 나임 교수는 그 이유를 분석한다. 대학이 점점 연애지상주의로 가는 것에도 나임교수는 문제를 느낀다. ‘연애’라는 관계 속에서 남녀의 권력관계가 낭만적 관계로 포장되면서 여학생들이 연애가 갖고 있는 가부장성을 성찰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 

이렇게 일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나임 교수의 수업에는 ‘소통’이 있다. “토론을 할 때도 앞에 자기 이름을 쓴 ‘이름표’를 놓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얘기합니다.” 대체로 ‘익명’의 공간이기 쉬운 여느 수업과는 다른 것. 또한 매 수업 시간마다 학생들에게 수업에 관해 쪽글을 내게 하고 다음 시간에 늘 ‘댓글’을 달아준다. “여성학에 대한 거부감도 크고, 여성학이 개인에 미치는 임팩트도 크다보니, 학생 개개인과 1대 1로 소통하지 않으면, 지쳐버리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어요. 덕분에 나중에 학생들이 ‘추천서’ 써달라고 오면 학생이 썼던 글, 말귀들이 생각나 상당히 ‘구체적’으로 추천서를 써줄 수가 있죠”라고 나임 교수는 말한다. 일방성이 아닌 쌍방성을 중시하는 ‘여성주의’의 민주적 성격이 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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