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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는 사과하지 않는다
오보는 사과하지 않는다
  • 최승우
  • 승인 2022.08.24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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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요나 지음 | &(앤드) | 272쪽

『천 개의 파랑』 『노랜드』 천선란 작가 추천!

예고 없이 내리는 소나기처럼
우리 곁에 찾아온 한국 SF의 새로운 얼굴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상 기후와 유전 공학으로 만들어진 10월의 아이들, 그리고 각자의 고민을 안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안식처 ‘NO-LITER’까지. 제2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서의 첫 발걸음을 내딛은 한요나 작가. 그가 만들어 낸 환상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세계가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국가에 의해 유전자 공학으로 만들어진 10월의 아이들. 그들은 마치 커다란 기계의 부품처럼 제각기 필요한 곳에서 적절하게 배치되어 국가를 위해 성실하게 일한다. 기상관측소 분석실에서 근무하는 김도브 역시 10월의 아이들 2세대이다. 어느 날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찾아와 자신의 임종을 지켜봐 줄 것을 부탁하게 되고 김도브는 난생처음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아버지와 파트너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번번이 빗나가는 기상 예보에 사람들은 걱정과 불만을 품지만 마땅한 대책 없이 그저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갈 뿐이다. 죽은 아버지의 엔-노트에서 발견한 정체불명의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을 가지고 대책 없이 찾아간 술집 ‘NO-LITER’. 그곳에서 김도브는 방랑자를 비롯해 사장과 노원, 소미, 지지 그리고 파와 엠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족이란 무엇인가?’ ‘사람다움은 무엇인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을 갖게 된다.

한편, 어딘가로부터 도망쳐 온 방랑자는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다시 모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자신과 같은 ‘10월의 아이들’인 김도브와 대화를 거듭할수록 그는 자신이 벗어나기 위해 도망친 진실에 한 걸음씩 더 가까워지고, 결국 피할 수 없는 잔인한 진실과 마주하기로 결심한다. 김도브와 방랑자, 그들 앞에 놓인 진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들에게 사과해야 할 존재는 과연 누구인가?

▷ 본문 중에서

“이 정도면 말입니다. 국가에서 무슨 경보라도 울려야 정상 아닙니까? 아, 물론 음모론을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냥 이상하다구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날씨가 미쳐 버린 건지 모르겠는데, 왜 모르겠다고 말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니까요.” (14p)

그때 나는 그가 어디선가 도망쳐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위험한 인물은 아닐까, 내 가게에 용병이나 깡패들이 들이닥치는 것은 아닐까, 뒷골목의 괴한들이라도 들이닥쳐 피를 보는 것은 아닐까. 짧은 순간 여러 가지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다시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상상하기를 멈추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사람이 아니었다. (48p)

아이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은 그런 데서 오지만 어른들은 그런 걸 곤란해한다. 하지만 정말로 곤란하게 여겨야 할 것은 비교와 치졸한 질투다. 아이에서 벗어나 어른이 될 때, 우리는 반드시 비교와 질투를 배운다. (98p)

인간은 너무 멍청해요. 왜 자신이 태어났는지 알 수 없잖아요. 누가 알려 준다고 해도, 그게 진실인지는 알 수 없고요. 믿을 수 있을까요? 끝까지 믿을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나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묻기엔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었어요. 조금만 더 일찍 찾거나 아예 날 찾지 말았어야 했어요. (124p)

“이런 날씨에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평소와는 다른 일이 일어나요.” (194p)

누가 누구에게 미안해야 하는 걸까. 사과해야 할 대상도 없고, 사과해야 할 사람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누구에게 미안해하고 있는 걸까. 시스템은 누구에게 미안해하고, 또 왜 미안한 걸까. (251p)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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