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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_독일판 황우석 사건, ‘헤르만-브라흐 사건’의 교훈
해외동향_독일판 황우석 사건, ‘헤르만-브라흐 사건’의 교훈
  • 정광진 독일통신원
  • 승인 2006.03.02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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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편 조작 밝혀낸 철저 조사…모든 대학에 옴부즈위원회 설치

▲프리드헬름 헤르만(왼쪽)과 마리온 브라흐 ©

1997년 독일에서 일어났던 ‘헤르만-브라흐 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독일판 ‘황우석 사건’이라고 할만하다. 이 스캔들의 핵심인물인 프리드헬름 헤르만은 유전자치료와 혈액 관련 암 연구 분야에 있어 독일내 최고 과학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동료이자 배우자였던 마리온 브라흐와 함께 1985년에서 1996년 사이에 공저한 논문에서 실험 결과, 사진 등을 조작한 것이 내부고발에 의해 드러난 것이다. 과학사기사건은 미국에서나 일어나는 일로 치부해서 부정행위 고발, 처리에 관한 공식 지침이나 절차를 마련해 놓은 연구기관이 거의 없었던 점도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다. 이런 독일 과학계가 어떻게 이 사건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우리의 상황을 점검하고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한 논의에 도움을 줄 것이다.

독일에서는 1997년 3월 처음 문제가 제기된 이후 이들이 논문을 발표하는 동안 재직했던 모든 관련 기관에 조사위원회가 신속하게 구성됐다. 각 조사위원회의 대표자들 12명은 별도로 ‘합동조사위원회’를 조직해서 1997년 8월에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핵심 내용은 두 사람이 공저한 37편의 논문에서 실험 데이터 조작을 확인 혹은 추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조작을 일부 시인했던 브라흐는 뤼벡대 교수직에서 파면됐고,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며 모든 책임을 브라흐에게 전가했던 헤르만은 1998년 9월에 울름대 교수직을 스스로 사임한 후 개업의로 전향했다. 조사위 활동 중에 이들의 논문조작이 처음 알려진 것보다 더 광범위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더 면밀히 조사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를 위해 1998년 3월 태스크포스팀이 구성됐고, 이들은 2년 이상 치밀하게 조사한 후 2000년 6월 헤르만과 브라흐가 공저자로 포함된 논문 3백47 편 중 최소 94편에 뚜렷한 조작 흔적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대규모 논문 부정 사건을 심각한 위기로 인식한 독일 과학계의 신속한 대응과 철저한 조사가 구겨진 체면을 그나마 살려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이 사건은 독일 내에서 과학 부정행위를 앞으로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과 관련 제도의 변화를 촉발시켰다. 연구 부정행위의 통제는 크게 ‚자율적 내부 통제’와 ‚외부 통제’로 나눌 수 있다. 외부 통제는 이를 감독, 통제할 별도의 기구를 설치하는 경우인데, 이런 기구로는 미국의 ORI(Office of Research Integrity)나 덴마크의 Danish Committee on Scientific Dishonesty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독일 과학계는 시종일관 ‘과학통제의 외부화’에 지극히 부정적인 견해를 유지하면서 자율적 규제를 지향했다. 이는 이 사건 이후 독일연구협회(DFG)가 바람직한 과학활동을 담보하기위한 방안 제시를 목적으로 조직한 국제위원회의 이름이 ‘과학의 자율적 통제’라는 점에서 엿볼 수 있다. DFG는 그 목적이 기초연구 진흥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과학재단, 학술진흥재단을 합친 것과 같지만 학계의 자율적 행정조직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DFG의  국제 위원회는 1998년 1월 16개의 제언을 담고 있는 보고서를 제출하는데 이는 향후 관련 독일 제도를 틀 짓는 근거가 된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과학적 부정직으로 인해 과학자들의 바람직한 과학활동이 침해당할 때 그들을 지원, 자문할 수 있는’ 옴부즈맨이나 옴부즈위원회를 DFG 내에 설치하도록 제안한 것이다. 이를 받아들여 DFG는 1999년 세 명의 과학자로 구성되는 옴부즈위원회를 구성했다. 또한 DFG는 2002년 여름부터는 지원을 받기 위해한 조건으로 지원자가 속한 기관에 과학 부정행위를 감독하고 이를 다루는 규정을 갖추도록 해서 현재 독일 내 거의 모든 대학과 기초연구기관이 옴부즈맨과 조사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DFG 옴부즈위원회는지난해6년간의 경험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이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모두 1백62건의 부정사례가 접수됐다. 하지만 여전히 내부 고발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지배적이고 공개되는 것을 꺼려서 이 제도가 적극적으로 이용되지는 않고 있다고 평가한다.

서구에서 연구 부정을 감독, 통제할 메카니즘이 국가별로 다르게 제도화되는 이유를 과학사회학자 페터 바인가르트는 정치문화의 차이에서 찾는다. 독일의 경우 ‘조합주의적’ 전통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어서 ‘자율적 규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그런 주장이 상대적으로 더 쉽게 수용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문화는 이와는 다르게 ’경쟁적 민주주의’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이런 문화에서는 정치적, 규제적 개입을 가로막는 문턱이 낮은 편이고, 더군다나 공적 재원이 투입되는 연구분야에 대해서는 더 쉽게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ORI는 80년대 초 의회내 논쟁의 결과로 설치된 것이기도 하다.

헤르만-브라흐 사건과 비교할 때 황우석 사건에 대한 한국 과학계의 대응 방식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황우석 사건의 경우에는 조작혐의를 받았던 논문의 범위가 훨씬 좁긴 했지만 그것이 사회에 준 충격은 독일에 비해서 훨씬 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과학계의 위기대처능력은 결과적으로 매우 불만족스러운 것으로 드러났다. 우왕좌왕하다 떠밀리다시피해서 겨우 서울대에만 조사위가 구성되고  그것도 1개월 만에 서둘러 조사를 끝내고 말았다. 그나마 지금은 공을 검찰에 넘긴 채 검찰의 조사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또한 서울대 조사위의 활동과 그 결과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여전하다는 점은 한국 과학계가 내적, 외적으로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자리하고 있는 지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증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정치, 경제 등 다른 사회분야와 비교했을 때 과학체계가 지니는 가장 큰 특징은 그 참여자들의 관계가 대칭적이라는 데 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와 다르게 „과학자의 고객은 (동료) 과학자다“.  과학체계의 생산물인 연구결과가 신뢰할만한지, 얼마나 탁월한 지에 대한 평가는 동료 과학자들이 내리는 것이다. 물론 연구 주제의 선정이나 결과의 왜곡에 이르기까지 과학 외적인 요인들이 개입함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과학활동의 독특함을 이루는 본질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 때문에 과학자들은 여전히 부정 행위에 더 민감하고, 그에 대한 처벌은 다른 사회 분야에 비해서 더 무거운 것이다. 독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자들은 자율적 통제라는 특수성을 보장받기 위해서 부정직한 활동 또한 스스로 관리,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애쓰는 것이다.

황우석 교수 사건은 이미 세계적 차원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한국 과학자들의 연구활동과 국내 과학계의 통제 메카니즘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넓은지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대규모 연구 부정 사건은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지다. 하지만 황우석 사건 같은 국가적 혼란의 재발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비싼 수업료’를 내긴 하지만 어쨌든 잘 배우기만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집안 일 뒷처리마저 남에게 맡긴대서야 꼭 그러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정광진 / 독일통신원·빌레펠트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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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자 2006-03-04 15:01:51
우리가 독일사람보다 머리가 뛰어나다는 증거인가.
아님 그만큼 졸속으로 결론냈다는 증거인가.


지금 검찰에서 나오는 이야기들 보면 서울대조사위가
그만큼 부실했다는 쪽인거 같다.


피츠버그같은 곳도 3개월가까이 조사했던 것으로 안다.
그나마 피츠버그 조사내용이 부실해서 미국 의회하원에서
청문회까지 한다고 한다.


1개월 정도했던 조사를 두고 일각에서는 황교수 죽이기 라고 말한다. 그런 오해받을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프로세스가 어떻게 우리나라 과학의 자정능력 모범이라고 할수 있겠나? 서울대는 너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