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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드라마 속 보통 여자들
영미 드라마 속 보통 여자들
  • 최승우
  • 승인 2022.08.14 2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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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원 지음 | 214쪽 | 도서출판 동인

도전과 타협의 관점으로 바라본 ‘보통’ 여자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과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한국 사회에 공존하게 된 페미니즘 리부트(reboot)와 페미니즘 백래시(backlash) 현상에 힘입어 최근 젠더와 여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학계는 물론 미디어, 출판, 문화 각 측면에서 파격적인 여자, 도전적인 여자, 나쁜 여자, 유명한 여자, 마녀와 같은 극단적인 여성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나 도전적이지도 순종적이지도 않은, 나쁘지도 착하지도 않은, 눈에 뜨이지 않는 여성들, 가부장 사회에서 때로는 저항하며 때로는 타협하며 살아가는 비주류의 보통 여자들에 관한 관심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 책은 이러한 공백을 메우고자 기획되었다. 이 책이 특별히 주목하는 비주류의 보통 여자들은 셰익스피어 시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영미권 희곡(드라마)에 구현된 인물들 중 사회의 중간 혹은 주변부에 위치한 여성 인물들이다. 저자는 17세기 이후 현대까지 영국, 아일랜드, 미국 각 시대의 가부장적 제약을 뚫고 스스로 자신의 입지를 찾아 나선 중간 혹은 주변부의 다양한 여성 인물들, 가령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꾀하거나 생존의 길을 찾는 중하층 여성들(고용 운전수나 의사의 딸, 하녀), 마녀로 지목당하지만 저항하는 여성, 도발적인 부르주아 여성, 내면에서 자신을 찾는 장애 여성, 현실을 직시하는 흑인 가정주부에 관심을 갖고, 이들이 각각 침범과 타협, 도전과 공존 사이를 왕래하는 제 양상들을 살펴본다.

이 책은 난해한 페미니즘 이론에 의존하는 철학적/이론적 접근도,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분석에 치중하는 사회학적 진단도 지양한다. 이 책은 ‘꼼꼼하게 텍스트 읽기’라는 전통 문학비평의 방식을 취해 희곡과 영화 속에 재현된 여성인물들을 분석한다. 이런 문학적 방법론을 활용하여 여성 인물들이 각 시대와 문화권의 ‘비주류’의 ‘보통’ 여자로서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타협하며 살아가는 행동뿐만 아니라,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는 들리지 않았던 내면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나아가 각기 다른 시대와 문화권의 여성 인물들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과 그 한계를 확인하고, 그들이 제한된 조건 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연출하는 주체가 되었는지를 각 시대와 문화권의 복합적인 상황과 함께 분석한다. 

도전과 타협의 관점에서 여성 인물들을 다룬 이 책은 ‘비주류 보통 여성들’의 주체성과 함께 도전과 타협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삶의 복합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 자리에서 파격적으로 도전적이거나 극단적으로 희생당하지 않고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 ‘보통’ 독자들이 작품 속 ‘보통’ 여성들의 저항과 협상 과정에 공명하며 현재 자신들이 서 있는 위치를 정확히 맥락화하고 미래를 노정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이 책이 현재 한국의 젠더 갈등을 둘러싼 제 문제들을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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