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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평화의 시대
차가운 평화의 시대
  • 최승우
  • 승인 2022.08.14 2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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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영 지음 | 인문공간 | 320쪽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3나노 양산에 성공했다. 3나노 양산은 반도체 제조공정 가운데 가장 앞선 기술로, 삼성은 2022년 6월 30일 공식 발표했다.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의 ‘기술 경영’에 본격 시동을 건 신호탄인 셈이다. 이를 계기로 파운드리 공정 기반의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의 목덜미를 삼성이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본문 147~150쪽). 삼성의 ‘3나노’가 반도체 시장의 ‘게임체인지’ 품목이 될지, 또 ‘3나노 상용화 계기’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의 기술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자못 궁금하다.
대만 언론들은 “TSMC의 믿음에 흔들림이 없다.”며 삼성의 3나노 공정 가동은 실체가 없는 ‘숫자 마케팅’에 불과하고, TSMC가 양산 중인 4나노 공정에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을 당시 내놓았다. 삼성의 고질병인 낮은 수율(收率ㆍ불량 없는 완성품 비율)을 타박하며 공격했지만, 삼성으로서는 여전히 뼈아픈 대목의 과제이다.

세계는 미국과 중국 간 기술패권 시대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 5월 한국 방문 중 윤석열 한국 대통령과 첫 만남의 장소로 삼성전자 평택반도체 공장을 선택했다. ‘기술패권 시대’ 현주소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동안 강대국 간 잠잠하던 지정학적 갈등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폭발로 드러났고, 연장선상에서 강대국 간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이 본격화된 지 4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패권 경쟁의 의미와 전망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은 막연하다. 구체적으로 잘 모른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 굴기(屈起)’ 싹을 자르며, 기술 강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전략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공격에 맞서, 숨고르기 전략으로 내수(內需) 강화의 방어적 지구전을 힘겹게 버티고 있다. 기술전쟁은 강자들 간에 약자를 죽여 시장을 나눠먹는 약육강식 세계다. 정글의 최전선에 반도체 산업이 똬리를 틀고 있고, 그 주변에 인공지능(AI), 컴퓨팅 스텍(stack) 등 4차 산업혁명을 좌우하는 연결 고리들이 촘촘하게 엮여 있다. 기술패권을 둘러싼 각축으로 세계는 경제와 군사ㆍ안보 전쟁을 넘어, 체제를 달리하는 강대국간 차가운 평화(Cold Peace) 시대로 진입 중이다. 기술패권 경쟁은 기술냉전(Technology Cold War)으로 표현된다.

기술패권 경쟁은 압도적인 기술 우위와 상대국으로의 지식과 기술 흐름 배제를 결합하여 경쟁 진영의 장기성장 모델을 공격하면서, 민간과 군(軍)의 이중용도(dual-use) 기술로 군사적 우위를 갖는 것이 최종 목표다. 기술패권의 무서움은 국가의 체제와 가치, 기능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기술패권은 디지털 가상공간 경쟁으로 옮겨져, 체제 간 분리를 가속화시키는 예측불가능의 공포감과 적대감을 불러온다. 미래의 세계 간 분리는 네트워크나 반도체 산업의 분리 차원을 넘어선다. 기술패권은 정보, 미디어, 데이터, 인터넷 서비스, 디지털 전환 제조업 등 전방위적으로 확대되는 특징을 갖는다. ‘차가운 평화’는 기술패권의 연결고리를 먹이사슬로 성장한다. 무엇보다 국가 간 바라보는 시각이나 세계관, 체제간의 이질성은 기술 블록간의 분리로 더욱 강화된다.

기술패권의 시대,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저자는 한국과 미국 간 기술동맹을 가장 강조한다. 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멜로스의 비극(중립약소국의 비애)’을 맞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한미 간 기술동맹의 고리를 느슨하게 할수록, 한국이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낀 멜로스의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는 무서운 통찰력이다. 아테네는 오직 힘으로 멜로스 사람들을 가혹하게 응징했다. 현재 한국의 반도체 기술력이 멜로스 정도의 ‘약자’는 아니어서 행운이란다.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 인재 양성에 목숨을 걸자’고 했다. 한국은 21세기 전략 물자이자 코어 테크인 반도체와 컴퓨팅 스텍의 기술 강국을 향해 국가 전략을 재정립할 시점이다. 한미간 기술동맹 강화와 인재양성, 입법경쟁 등 국가 역량을 총동원할 시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세계 12위 경제 규모인 한국이 반도체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는 순간, 국제사회 기술 강국 운명은 장담할 수 없다며 긴장감을 높여 주장한다.

“We go together.”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 5월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식 만찬사 마지막 대목이다. ‘같이 갑시다.’라는 뜻의 이 말은 한국전쟁에서 함께 피 흘린 혈맹이자 이에 기반한 한미 동맹을 상징한다. 이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안보를 굳히고 경제와 미래를 챙겼고, 한미동맹의 판을 새롭게 바꿨다는 평가가 당시에 흘러 나왔다. 양국 간 전략적 경제ㆍ기술 파트너십을 밝힌 것도, 기술패권 경쟁시대의 필연성을 강조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후 6월 국무회의에서 “교육부는 반도체 인재양성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밝혔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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